크루그먼 “방역과 상충 안 해…맞춤형 경제활동 재개 가능”
장하준 “정부 부채가 경제 살려…고소득자는 세금 더 내야”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왼쪽)와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석좌교수(오른쪽)가 25일 열린 <2020 경향포럼>에서 영상을 통해 대담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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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석좌교수와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25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포스트 코로나19 - 대전환 시대 길을 묻다’ 주제로 열린 <2020 경향포럼> 대담에서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에 각기 다른 대처법을 내놓았다.
크루그먼 교수는 “미국의 경우 실업급여가 상당히 효과가 있었다”면서 전통적 복지의 효과에 주목했다. 장 교수는 “정부 부채가 우리 경제를 살릴 수 있다. 재난지원금은 모든 사람에게 나눠주고 고소득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거둬야 한다”며 정부 재정 역할을 중시했다. 두 사람 모두 복지를 강조했지만 방점이 다른 것이다.
경제위기 지속을 두고도 크루그먼 교수는 “바이러스만 해결하면 근본적 침체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으나 장 교수는 “장기적으로 상처가 남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경제 살리기와 방역이 상충하지 않는다”며 “맞춤형 경제활동 재개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대담은 이우진 고려대 교수의 사회로 서울과 크루그먼 교수가 있는 미국 뉴욕, 장 교수가 거주하는 영국 케임브리지를 화상으로 연결해 1시간가량 진행됐다.
이우진 = 이번 경기침체 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1920~30년대 대공황 위기가 어떻게 다른가.
크루그먼 = 바이러스 문제를 해결한다면 대공황이나 2008년만큼 근본적 침체는 오지 않을 것이다. 바이러스라는 외생변수가 문제다. 이 악재만 사라지면 상당히 빠른 속도로 반등할 것이다. 경제활동을 얼마나 위축시켰는지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영향은 영구적이지 않다.
장하준 = 과거처럼 거시적 위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동의한다. 그러나 거시경제 이상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가 수년 동안 지속되면 일하는 방식 등에서 아주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이번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타이밍이 굉장히 중요하다. 대공황과 금융위기는 경기호황 뒤에 왔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장기간 경기침체 후에 왔다. 장기간 최저 금리가 유지됐고, 엄청난 유동성이 시장에 공급됐다. 과거 위기의 근본 원인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여서 이번 팬데믹이 장기적이고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다.
이우진 = 코로나19 사태 이후 각국 정부가 봉쇄령을 내렸다.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와 경제는 어떻게 조화를 이룰까.
크루그먼 = 3~4월 각국이 전면 봉쇄령을 내렸다. 당시만 해도 바이러스 대처법을 알 수 없었으나 이제는 전면 셧다운(봉쇄)하지 않아도 방역할 수 있다는 걸 안다. 마스크 착용과 주점 일시 폐쇄만으로도 효과가 있었다. 지금은 맞춤형 경제활동을 재개할 수 있다. 뉴욕시가 좋은 사례다. 방역에도 성공했고 경제활동도 정상 수준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경제 살리기와 방역 사이에 상충 관계가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우진 = 장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제조산업과 고용이 어떻게 변할 것이라고 보나.
장하준 = 제조업 내에서도 비접촉식 사회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산업은 성장하겠지만 식품가공산업 등 근로자 간 거리 두기가 어려운 산업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오랫동안 실업이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면 전체적으로 시장이 활력을 잃게 된다. 정부는 앞으로 2~3년간 노동시장에 진출하는 젊은 세대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우진 = 크루그먼 교수에게 코로나 이후 국제교역을 전망해달라는 참석자 질문이 들어왔다.
크루그먼 = 국제교역이 큰 폭으로 줄고 탈세계화가 나타날 것이다. 상품 자체는 바이러스를 전파하지 않지만 대면 접촉이 어려워지면 문제가 될 수 있다. 국제무역 시스템의 운영 책임을 맡아온 미국의 국제적 위신이 떨어졌다는 점도 문제다.
이우진 =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정부가 돈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보편적 기본소득이 효과가 있을까. 전통적 복지 중 코로나19 대응에 효과적이었던 것은.
크루그먼 = 기본소득은 적어도 지금 위기의 해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국은 코로나로 2200만명이 실업자가 됐다. 1억2000만명은 고용이 유지됐다. 타격이 집집마다 다른데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는 (돌아가는 몫이) 부족할 것이다. 미국은 주당 600달러(약 71만원)를 실업자들에게 지원했다. 이게 효과가 더 컸다. 보편 기본소득은 사회복지를 옹호하는 입장에서도 너무 부담스러운 규모다. 전통 복지 정책 중 실업급여가 가장 강력한 정책 도구가 아니었나 싶다. 직접 피해를 입은 분들에게 제공했기 때문에 구매력을 유지했고 상당한 승수효과가 발생했다. 2008년보다 효과가 컸다. 의료보험 등 사회안전망의 중요성도 드러났다. 복지는 재난과 경제위기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우진 = 한국에선 2차 재난지원금 이야기가 나온다. 보수주의자들은 재정적 부담을 걱정한다. 취약계층에게만 주는 것이 바람직한가.
장하준 = 한국이 제대로 된 복지국가였다면 재난지원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재난기금을 모든 국민에게 지급한 미국과 한국은 복지체계가 취약한 나라들이다. 위기 시 사람들을 도와줄 체계가 없어 인위적인 조치로 일시적 도움을 줄 수밖에 없었다. 한국 입장에서 한 가지 교훈은 위기를 통해 복지국가가 왜 필요한지 깨닫게 됐다는 것이다. 문제 있을 때마다 재난기금을 지급하기보다 집단적인 보험 시스템을 갖추는 게 효과적이다. 누구에게 줄지 토론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기보다 모든 사람에게 나눠주고 고소득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거둬들여야 한다. 취약한 사람을 고를 시간이 없다.
이우진 = 재정대책으로 과세 또는 대출(정부 부채)이 거론된다.
장하준 = 정부가 돈을 빌리지 않으면 개인이나 중소기업이 돈을 빌려야 한다. 정부가 개인과 기업보다 파산할 가능성이 훨씬 적기 때문에 정부가 돈을 빌리는 게 바람직하다. 한국의 공공부채 문제는 심각하지 않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43%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공공부채에 대한 우려는 공공복지를 거부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정부 부채가 경제를 살릴 수 있다. 기업들은 부채를 내서 투자하고 개인은 자동차를 사기 위해, 대학교에 가기 위해 대출도 한다. 부채에 대한 시각을 바꿔야 한다.
임지선·김지혜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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