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떠나 경기도 고양시에 살며 크게 불편한 건 없다. 어머니 요양병원도 내 집 근처로 옮겼고, 동네에 오랜 친구도 살고 선배언니네 집도 가깝다. |
나 혼자 처치할 수 없는 음식 선물이 들어오면 같이 나눠 먹기도 하고, 차가 필요할 땐 차 있는 친구의 도움도 받으며 나름 적응해 살고 있다. 다만 불면증이 도져 고생하고 있다.
이사한 아파트에 방이 두 개인데, 서울의 원룸에서 살 때보다 잠을 더 못 자니 이게 왠 조화인지. ‘나도 방이 두개’라는 사실에 뿌듯해하며 작은방에 손님용 싱글침대를 하나 사놓고 양쪽 방을 오가며 생활했다. 베개를 들고 두 방과 두 침대를 분주히 오가며 깨달은 사실. 집이 아무리 커도 자는 방은 하나다. 침실이 많아도 잘 때는 한 침대에서 잔다.
어제도 잠이 오지 않아 이방 저방 들락거리며 새벽 두 시까지 뒤척였다. 늦게까지 책상에 앉아 곧 나올 장편소설 ‘청동정원’ 개정판의 교정지를 들여다보느라 흥분해서인지, 저녁에 마신 홍차 때문인지 피곤한데도 잠이 오지 않아 베개를 들고 작은방과 안방을 들락날락하다 어느 방에선가 선잠이 들었다.
‘불면증으로 고생한다’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의사인 친구는 대뜸 코로나 때문이라고 했다.
“활동량이 부족해서 그래. 몸을 많이 움직여.” 엄마한테 도시락을 가져다주느라 거의 매일 요양병원을 걸어서 다니는데, 하루에 40분은 걷는데도 운동량이 부족하나? 하긴 올해 2월부터 코로나 때문에 외출을 자제했다. 지방 강의를 다니느라 5월에만 반짝 바빴지, 6월 이후엔 한가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생각도 많아져서 지난 생애를 돌아보느라 잠을 못 이룬 게 아닌가.
다른 친구들도 사정은 비슷해, 사업하는 Y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매출이 격감해 오랜만에 쉬노라고, 혼자 지난 세월 생각하느라 심란해 잠을 못 이룬다며, 그래서 주식을 시작했다고 했다.
좀 물러난 듯하더니 바이러스가 다시 돌고 있다. 한국 사람들은 마스크는 비교적 잘 쓰는데 거리는 잘 지키지 않는다. 몰려다니기를 좋아하는 데다 성질이 급해서다. 마트 계산대에서 내 뒤에 바짝 붙은 사람들을 째려보느라 내 인격이 망가지고 있다.
코로나는 우리에게 말한다. 거리를 지키며 개인으로 존재하라고, 그만 돌아다니라고, 비행기도 기차도 타지 말고 가만히 앉아서 자신에게 정말로 필요한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라고. 깊이깊이 자신을 들여다보라고. 정말 소중한 사람만 만나라고. 지금은 힘들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코로나는 인류에게 자기반성의 기회를 제공한 ‘선물’일 수도 있으리라.
예전엔 축구나 야구 테니스 등 스포츠 중계방송을 보거나 외국 방송 BBC를 틀어놓으면 잠이 잘 왔는데, 요새는 영어가 너무 잘(?) 들려 프랑스어 채널 TV5Monde가 나의 새로운 수면제가 됐다.
한국어 자막이 나오는 영화나 다큐멘터리도 너무 재미있으면 집중해보느라 잠이 달아나니 역시 제일 좋은 건 지루한 스포츠 중계.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월요일 새벽인데 휘슬이 울릴 때까지 자지 않고 버티다 전반전이 끝나기 전에 스르르 잠의 구렁텅이에 빠지면 좋겠는데….
바이에른뮌헨 대 파리생제르맹, 독일과 프랑스 팀이 맞붙으니 전쟁 같은 승부가 펼쳐질 터. 잠들기는 글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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