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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취재파일] 주택 공급 부족이 부른 '나비효과'…'홍콩'이란 반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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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10년 뒤 경제 상황이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두고 설문조사를 한 것입니다. 대상은 전직 재무장관과 다국적 기업 회장, 영국 옥스퍼드대 경제학과 학생, 환경미화원 이렇게 네 집단이었습니다. 그리고 10년 뒤, 각 집단의 전망이 얼마나 맞았는지 비교해봤습니다. 결과는 흥미로웠습니다. 1등은 다국적 기업 회장과 환경미화원이 공동으로 차지했습니다. 옥스퍼드대 경제학과 학생들은 이에 한참 못 미쳤고, '영광의 꼴찌'는 전직 재무장관 몫이었습니다.

이처럼 경제 상황 예측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실험은 사실 제법 많습니다. '1월 1일, 정확히 1년 뒤 미국·영국 증시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두고, 경제학자와 침팬지가 예측 대결(?)을 벌였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수식을 사용했고, 침팬지들은 다트를 던져 예측했습니다. 결과는 대부분이 침팬지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경제학자들은 할머니들과도 대결했는데, 이번에도 승리는 할머니들 차지였습니다. 이처럼 전문가들의 경제 예측이 빗나간 사례들은 생각보다 참 많습니다. (※ 나머지 사례는 ARMSTRONG, J. Scott. The seer-sucker theory: The value of experts in forecasting. Technology Review, 1980, 16-24. 참고)

이처럼 미래의 경제 현상을 예측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경제가 이른바 '복합계'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시스템을 구성하는 각 요소가 서로 밀접하고 강력하게 영향을 주고받아 예측이 쉽지 않은 것입니다. 한마디로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들이 너무 많다는 것인데, 실제로 당장 오늘 우리가 겪는 '코로나19'라는 돌발변수를 예측한 전문가는 사실상 없었습니다.

● 정부의 주택 공급 확대방안, 성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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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위한 주택 공급 확대방안 당정 협의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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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난 4일 발표한 수도권 주택 공급 확대방안을 보며, 국토교통부를 출입하는 기자로서 저는 앞서 말씀드린 경제 예측 실험들이 떠올랐습니다. 과연 정부가 예측하는 대로 주택 공급은 순조롭게 이뤄지고, 주택 시장은 안정될 것인가? 예상하시는 것처럼 아직은 '미지의 세계'에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주택이란 재화는 공산품처럼 바로 만들어 매장에 올려둘 수 있는 것도 아닌 데다, 나이·지역·경제적 조건이 제각각인 수요자들, 거기에 공급에 관여할 기업 등의 기대수익, 금리·대출·세금 등 금융제도, 대학입시와 같은 교육제도에 코로나19 등 공중보건학적 변수까지, 주택 공급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고려할 요소가 참 많습니다.

그렇다 보니, 당장 시장에서는 이번 주택 공급 확대안의 실현 가능성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리고 그 의문의 핵심은 '공공재건축'에 맞춰집니다. 정부는 공공재건축을 통해, 재건축 조합에 용적률을 500%까지 완화해주는 등의 인센티브를 주는 대신 늘어난 용적률의 50~70%에 해당하는 주택을 무주택자·신혼부부·청년들에게 공급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혔습니다. 이 안의 전제 조건은 재건축 조합들의 동의인데, 과연 정부안에 응할 조합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입니다.

실제로 한 재건축조합 관계자는 "세대 수가 늘어나면 인구 밀도가 늘어나 교육과 교통, 생활 환경 변화에 따른 문제점도 생긴다. 거기에 기부채납 비율까지 높아지면 더 받아들이기 어렵다"라고 전했습니다. 여기에, 서울시도 도시 경관 훼손과 도심 과밀화 등 부작용을 우려해 층수 제한 확대에선 조심스러운 의견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심지어 일부 여당 의원들마저 "지역구 여론이 반영되지 않았다"라며 반대 의견을 밝혔습니다. 아직은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가 적지 않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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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택 공급 부족이 낳은 '비극'

그럼에도, 공급을 최대로 늘려 집값을 안정화하겠다는 의도, 적어도 그 취지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습니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도시·부동산 경제학연구실)도 "이번에는 주택 수요자가 아닌 정부가 이른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했다. 실질적인 효과까지는 시간이 한참 더 걸리겠지만, 적어도 공급이 충분하지 않다는 시장의 심리적 불안을 잠재우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주택 공급이 중요한 이유는 명확합니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사려는 사람은 많은데 물건이 부족하면 집값이 오르기 때문입니다. 이런 부작용이 심화하면 어떤 모습이 되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홍콩'입니다. 홍콩의 '살인적인 집값'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으로 악명 높습니다. 홍콩 정부가 발표한 공식 통계를 보면, 평균 주택 가격은 3.3㎡당 1억 원에 달하고, 주요 지역의 고급 주택(130㎡ 이상) 평균 거래 금액은 690만 달러, 우리 돈으로 무려 82억 원에 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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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언덕에서 내려다본 홍콩의 아파트촌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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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금융그룹 UBS가 2018년 9월 발표한 세계부동산거품지수(GREBI)에서도 홍콩은 2.03을 기록해 조사 대상 20개 도시 가운데 유일하게 2.0을 넘기며,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습니다. 지수가 1.5보다 높을 때는 거품 리스크(위험), 0.5∼1.5는 고평가, -0.5∼0.5는 적정 수준, -1.5∼-0.5는 저평가로 분류하니, 홍콩의 집값의 거품이 어느 정도 비정상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높은 집값으로 유명한 독일 뮌헨(1.99), 캐나다 토론토(1.95), 밴쿠버(1.92), 네덜란드 암스테르담(1.65), 영국 런던(1.61) 등도 홍콩의 악명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홍콩의 주택 가격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홍콩 집값이 비정상적인 수준으로 올라간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요인은 '만성적인 공급 부족'입니다. 박준석 외교부 주홍콩총영사관 선임연구원은 지난해 KDI 한국개발연구원 연구보고서를 통해 "홍콩은 기본적으로 주택을 지을 수 있는 땅이 부족하다. 면적은 1천106㎢로 서울의 1.8배이지만, 가용 토지 비율은 전체의 51%에 불과하다. 여기에 더해 홍콩 정부는 주권 반환(1997년) 이후 줄곧 공급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며 주택 상황을 악화시킨 측면이 크다"라고 분석했습니다.

또 "홍콩 정부는 2000년대 들어 민간 주택 19만 호를 포함해 총 48만 호를 시장에 공급할 계획이었지만, 2017년 상반기까지 실제 공급량은 계획의 60% 수준에 불과했다. 이러한 환경적·정책적 문제로 인한 만성적인 공급 부족이 결국 주택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박 선임연구원은 "홍콩에서 근무하며 만난 현지 정부 관계자, 정치인, 학계 인사, 기업인들에게 홍콩 부동산 시장의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물어봤는데, 매번 이들의 답변은 단명했다. '공불응구(供不應求)', 즉 공급이 수요를 제때 따라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홍콩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가 크게 한몫했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라고 진단했습니다.

● 주택 공급 부족이 부른 '나비효과'

더 큰 문제는 부동산 정책의 악영향이 단순히 주거 문제로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2000년대 이후 홍콩에선 높은 주택 가격과 근로자들 평균소득 사이에 큰 괴리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문에, 중산층 이하 계층에서는 '내 집 장만'은 더는 개인의 능력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대상이 됐습니다. 평범한 직장인들은 급여 소득만으로는 주택을 구매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는 뜻입니다. 금융권의 주택담보대출을 신청하더라도 상환 부담이 너무 커서, 다른 소비 여력을 상쇄하는 또 다른 문제로 이어집니다. 그렇다 보니, 결론적으로 홍콩인들에게 주택 구매는 자신의 능력이 아닌 '부모의 재력'에 따라 결정되는 대상이 돼버렸습니다.

실제로 홍콩통계청이 2018년 발표한 중위임금은 1만 7천500홍콩달러(약 270만 원)이고,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초년생들이 받는 급여 수준은 1만~1만 3천 홍콩달러(약 150~200만 원), 법정 최저임금은 시간당 37.5홍콩달러(약 5천700원, 2019년 5월 기준)입니다. 홍콩 주택 시세와 임금근로자의 실질소득 사이에 큰 괴리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홍콩 유력 언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홍콩의 평균 아파트 가격은 임금근로자 평균 연봉의 18.1배로 나타났다. 일반 직장인들은 연봉을 한 푼도 안 쓰고 20년 가까이 모아야 10평대 주택이라도 한 채 마련할 수 있다"라고 전했습니다.

박 선임연구원은 "주택 상황이 이렇게 심각하다 보니, 홍콩에선 결혼 시기를 기약 없이 미루거나 결혼 뒤에도 일정 기간 각자 부모의 집에서 떨어져 지내며 저축하는 웃지 못할 상황도 일어난다. 이런 현상은 결정적으로 사회 전반적으로 젊은 층의 근로 의욕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종국에는 결혼 문제와 출산율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사회의 활력을 회복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떨어뜨린다"라고 우려했습니다.

아울러 "살인적인 주택 가격을 견디지 못한 홍콩 청년들은 같은 한자 문화권이면서도 상대적으로 물가가 저렴한 타이완 등으로 이민 가거나, 이마저도 마땅치 않으면 주택난을 방치한 정부에 대한 불만을 급진적 방식으로 표출하는 사례도 터져 나오고 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 뒤늦은 각성 그리고 반면교사

이처럼 상황이 심각해지자, 2017년 7월 출범한 홍콩 정부의 캐리 람 행정부는 비정상적인 주택 가격을 심각한 사회 문제로 규정했습니다. 늦었지만 앞으로 10년 동안 총 46만 호 신규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또한 매립지를 확대하고 재개발 부지와 항만시설 주변 유휴지를 활용해 공공주택을 추가 공급하기 위한 연구용역에 착수했습니다.

박 선임연구원은 "인구 740만 명, GDP 3천600억 달러 규모의 홍콩 경제에서 발생한 부동산 시장 사례를 인구 규모 약 7배, 경제 규모 약 5배나 더 큰 우리나라 상황과 직접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홍콩 정부의 뼈아픈 부동산 정책의 실패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정책적으로 피해야 할 지점을 찾아보는 노력은 필요해 보인다"라고 조언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서울 아파트 3.3㎡당 평균 가격이 지난 2017년 5월 1천731만 원에서 올해 7월 2천678만 원으로 54.7%나 오른(한국감정원 통계) 현실을 우리도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대다수 젊은이는 '취업 전쟁'을 뚫고 어렵게 직장을 가져도, 벌어들이는 수입으로 집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점차 낮아진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고, 시쳇말로 영혼까지 끌어모아 아파트 매매에 나서는 것은 경제 주체로서 지극히 상식적이고 또 합리적인 판단입니다. 과연 누가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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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확실한 미래를 돌파할 '실력'을 보여줄 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수십 가지 방법론과 각종 데이터로 무장하고 있더라도 미래의 경제 상황을 예측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정확히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정부의 이번 주택 공급안이 성공할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고 있다"라는 장밋빛 자신감과 기대는 자칫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전 세계를 단일 통신망으로 연결하고자 했던 '이리듐 프로젝트'는 3조 5천억 원을 들여 위성 66개를 쏴 올렸지만, 결론적으로 실패했습니다. 기술적으로는 완벽에 가까웠지만 저렴하고 편리한 휴대전화 해외 로밍 서비스의 출현을 예측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1인용 전기 이동수단인 '세그웨이'는 2001년 처음 출시됐을 때 도시 출·퇴근 문제를 해결할 혁명적 기술로 주목받았지만, 마찬가지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결국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확신에 찬 예언은 아닐 것입니다. 그보단, 우연성과 역동성을 고려하며 변화에 제때 대응하려는 겸손한 마음가짐이 필요해 보입니다. 어쨌든 주택 공급이라는 숙제를 풀어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어쨌든 '첫발'도 내디뎠습니다. 닥쳐올 역경을 슬기롭고 현명하게 해결하며, 불확실한 미래를 안정된 현실로 바꿔갈 일만 남았습니다. 이제는 정부가 '실력'을 보여주길 기대합니다. 주택 문제는 단순한 거주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생존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 취재 과정에서 박준석 외교부 주홍콩총영사관 선임연구원 연구보고서, '미래는 오지 않는다(과학기술은 어떻게 미래를 독점하는가, 전치형·홍성욱 저)'를 참고했습니다.
한세현 기자(vetma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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