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편견, 일상화된 노인 폭력 다뤄
임선애 감독 섬세한 연출, 예수정 호연 눈길
“인간 존엄에 대한 이야기”… 20일 개봉
영화 ‘69세’에서 가해자를 대면한 주인공 심효정(오른쪽·예수정). 효정은 공권력 외면에 좌절하지 않고 ‘미투’에 나서 가해자를 응징한다. 엣나인필름 제공 |
성범죄 피해자 하면 흔히 20∼30대 여성을 떠올린다. 우리가 간과하는 건 60대 이상 여성을 노린 성범죄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강간·유사강간·강제추행을 당한 60세 초과 여성은 669명에 달한다.
20일 개봉하는 영화 ‘69세’는 이 같은 현실을 비추며 우리 안의 편견, 사회에 일상화된 노인 폭력을 돌아보게 한다.
이 영화가 장편 데뷔작인 임선애 감독은 섬세한 연출로 69세 여성 심효정의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효정으로 분한 배우 예수정의 연기가 빛을 발한다.
초반엔 몇 분간 까만 스크린에 소리만 흘러나온다. 범죄 장면을 자극적이지 않게 다루려는 감독의 섬세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시각적 자극 없이 청각만으로 짐작되는 장면은 오히려 더 생생하다.
효정은 용기를 내 가해자인 29세 남성 이중호(김준경)를 고소한다. 경찰도 법원도 피해자 편이 아니다. 범죄 사실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며 “합의 하에 했다”는 가해자를 두둔한다.
영화 ‘69세’ 주연을 맡은 배우 예수정. 엣나인필름 제공 |
우리가 무심코 쓰는 “나이에 맞지 않게”란 말은 때에 따라선 칭찬이 아닌 언어 폭력이 될 수 있다. “몸매가 처녀 같이 늘씬하시다”는 말 한마디에 효정은 그날이 떠올라 몸서리친다. 그의 버팀목이 돼 주는 선생님 남동인(기주봉)이 경찰에게 들은 “아직도 기운이 팔팔하시네요”란 말도 따지고 보면 노인 차별이다.
효정은 자책하는 듯하지만 끝내 좌절하지 않는다. 그만의 방식으로 가해자를 응징한다.
임 감독은 여성 노인 대상 범죄와 관련된 칼럼을 읽고 각본을 썼다. 그는 “노년의 삶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인간 존엄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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