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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들 공중으로 치솟아…“전쟁 후 처음 느낀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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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서 질산암모늄 보관 창고 폭발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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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무너져 내리고 잔해만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항구에서 4일(현지시간) 발생한 대규모 폭발 사고 현장을 5일 드론으로 촬영한 모습. 저장창고가 완전히 무너져 내려 잔해만 남아 있다. 레바논 당국은 “폭발이 일어난 창고에 인화성 물질 질산암모늄이 다량 보관돼 있었다”고 밝혔다. 이 폭발로 수천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베이루트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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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 4.5 지진 맞먹는 충격
사망 100여명, 부상 4000여명
도시 절반 피해 이재민 30만명
총리 “2주간 긴급사태” 선언

4일 오후 6시쯤(현지시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항구에서 굉음과 함께 검붉은 연기가 치솟았다. 인화성 물질 질산암모늄을 보관한 것으로 추정되는 창고에서 대규모 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5일 오전 6시 현재 이번 폭발로 인한 사망자는 100여명, 부상자는 4000여명으로 파악됐다. 도시 절반이 피해를 입어 30만명이 갈 곳을 잃었다. 피해액은 30억달러(3조5700억원)를 넘을 것으로 추산됐다. 당국은 폭발 원인을 두고 조사에 들어갔다.

■“혼돈과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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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들에 따르면 해당 창고에선 먼저 폭죽 같은 것에 의한 불이 났고, 곧 두 차례 폭발로 이어졌다. 요르단 지진관측소는 규모 4.5의 지진과 맞먹는 충격이라고 추정했다. 베이루트 시민 왈리드 아브도는 AP통신에 “그것은 핵폭발과 같았다”고 말했다. 폭발 규모가 매우 커서 자동차들이 공중으로 치솟았고, 컨테이너와 화물용 철로도 구부러졌으며 항구 가까이에 있던 대형 선박이 찌그러질 정도였다. 항구에서 약 500m 거리에 있던 마완 라마단은 “전쟁 이후로 한 번도 느끼지 못한 공포였다”고 말했다. 레바논에서는 1975년부터 15년간 내전이, 2000년대 들어서도 크고 작은 무력분쟁이 이어졌다.

‘전쟁’인지 ‘지진’인지 알 수 없는 공포에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항구 주변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매캐한 냄새와 연기 사이로 사고 수습을 위한 구급대와 보안군, 피 흘리며 구조를 기다리는 부상자들,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달려와 울부짖는 사람들이 뒤섞였다. 특히 인근 대형 병원 3곳도 폭발로 건물 일부가 무너지고 전기가 끊기면서 응급환자를 수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연락이 두절된 가족의 사진과 함께 연락해달라고 호소하는 글이 속속 올라왔고, 레바논 국영라디오에서도 실종자와 부상자 명단이 계속 흘러나왔다.

레바논인들은 참담한 심정을 털어놨다. 시민 나다 함자는 알자지라방송에 “내가 있던 건물도 무너졌다. 살아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군인 출신인 칼리드 하마드는 “길가엔 유리 파편이 쌓여 있고 거리엔 다친 사람들이 많았다. 내전의 마지막 날이 기억났다”고 했다. 전직 보건장관인 모하메드 칼리페는 “경제 상황도 좋지 않고 의료품을 비롯해 모든 게 부족하다. 베이루트는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황폐화했다”고 말했다.

레바논은 기독교·이슬람 수니파·시아파 등으로 나뉜 다종교 국가로, 종파 간 갈등이 종종 유혈사태로 번지곤 했다. 1975~1990년 기독교·이슬람 세력 간 내전이 있었고 2006년엔 이스라엘과 무장단체 헤즈볼라가 베이루트에서 무력분쟁을 벌였다.

최근엔 막대한 국가부채와 파운드화 가치 하락, 높은 실업률 등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10월 이후 반정부 시위가 계속됐으며 코로나19까지 겹쳐 경제난도 심해졌다. 이번에 폭발이 일어난 항구는 생필품 수급난을 겪는 레바논에 수입 물품이 들어오는 통로였다.

■트럼프는 “폭발 공격”

레바논 당국은 이번 폭발이 창고 안에 있던 질산암모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하산 디아브 총리는 4일 기자회견에서 “폭발이 발생한 베이루트 항구 창고에는 약 2750t의 질산암모늄이 안전조치 없이 6년간 보관돼 있었다”고 말했다. 또 2014년 폭발성이 강한 물질이 베이루트에 안전조치 없이 저장돼 있어 위험하다는 보고서를 받았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레바논 당국이 부실 관리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농업용 비료인 질산암모늄은 가연성 물질과 닿으면 폭발한다. 2004년 4월 북한 용천역 폭발사고도 질산암모늄이 유출되면서 일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질산암모늄은 피부·눈·호흡기계에 자극을 일으키는 유해물질로 분류된다.

이번 폭발이 테러 등 의도적인 공격에 따른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레바논 남부 이스라엘과의 국경 지역에선 최근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적대감이 높아진 상태였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모두 이번 폭발과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즉시 이 폭발을 ‘끔찍한 공격’으로 규정하며 미군은 일종의 폭탄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주장은 레바논 당국이 발표한 사고 원인이나 정황과는 크게 차이가 난다. 레바논 당국은 아직까지 폭탄 공격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밝힌 바 없다. 미군 당국자조차 공격이라는 정보를 “들은 바 없다”고 했다.

미셸 아운 레바논 대통령은 긴급 국무회의를 소집하고 2주간 긴급사태를 선언했다. 정부는 이번 폭발사고 원인을 규명할 조사위원회를 꾸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5일 오전 국민 피해 여부에 대해 “오전 8시 현재까지 접수된 인명피해는 없다”고 밝혔다. 현재 레바논에는 유엔 평화유지 활동을 위해 파견된 동명부대 280여명과 국민 140여명이 체류 중이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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