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자 100명 넘어, 4000여명 부상
건물 잔해 깔린 시민 많아, 사상자 더 늘 듯
병원 파괴, 코로나 겹쳐 의료시스템 마비
레바논 "질산암모늄 2750톤 6년간 보관"
이란‧사우디, 서로 다른 배후 주장
"레바논에 내전 버금가는 혼란 올것"
대형 폭발이 발생한 레바논 베이루트 현장에서 헬리콥터가 물을 뿌리며 진화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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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통신과 CNN 등 외신에 따르면 현지시간 4일 오후 6시(한국시간 5일 0시) 베이루트항 선착장에 있는 한 창고에서 두 차례 폭발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아 일대가 초토화됐다. 핵폭발이 만들어낸 듯한 버섯구름이 하늘로 치솟으면서 사고 현장 주민들은 “원자폭탄이 터진 줄 알았다”고 전하기도 했다.
폭발로 건물이 무너져 내리고, 차량이 뒤집어지는 등 일대는 순식간에 폐허로 변했다. 거리 곳곳에는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이 쓰러진 채 울부짖었다. 현장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건물의 발코니 창문이 산산조각나고, 베이루트항에서 240km 떨어진 지중해의 섬나라 키프로스까지 폭발음이 들릴 정도로 폭발은 강력했다. 레바논은 5일을 애도일로 선포하고, 2주간의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4일 레바논 베이루트항에서 발생한 대형 폭발.[SNS 캡처] |
레바논 당국은 항구에 오랫동안 보관돼 있던 인화성 물질인 질산암모늄이 폭발을 일으켰다고 밝혔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군은 베이루트 폭발을 일종의 폭탄 공격으로 생각한다”면서 테러 가능성도 제기했다. 폭발 원인을 놓고 한동안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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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 겹쳐 의료 시스템 마비
폭발 현장은 생지옥이 됐다. 마르완 아부드 베이루트 시장은 스카이뉴스 아라비아 채널과의 생방송 인터뷰에서 “히로시마에서 일어난 폭발 같았다. 어떻게 복구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레바논 베이루트의 폭발 피해자를 사람들이 옮기고 있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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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폭발이 발생해 초토화된 레바논 베이루트 현장.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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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NYT) 따르면 폭발은 두번에 걸쳐 일어났다. 첫 번째 폭발은 상대적으로 작았지만 이어 6시 8분쯤 터진 두 번째 폭발의 규모가 컸다. AFP는 “폭발 사고현장 인근 모든 상점의 유리창이 산산조각이 났고 차량이 장난감처럼 뒤집히는 등 현장이 완전히 폐허로 변했다”고 전했다. 현지 프랑스어 일간지 로리엔트 르주르는 1면에 참상을 전하면서 '세상의 종말'이란 제목을 달았다.
폭발 충격에 상당수 도심 병원들마저 파괴되면서 현장에선 부상자 치료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NYT는 베이루트 도심에서 가장 큰 대학 병원인 세인트조지 병원도 심각하게 파괴됐다고 전했다. 코로나19 사태에다 폭발 사상자까지 쏟아지면서 현지 의료 시스템은 사실상 마비 상태라고 외신은 전했다. 폭발 이후 독성 가스가 방출돼 인근 주민들에게는 외출 자제령이 내려졌다.
레바논 베이루트 대형 폭발 사고.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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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창고에 대량의 질산암모늄" …트럼프 "테러 공격"
폭발 원인과 관련해 하산 디아브 레바논 총리는 “폭발이 발생한 베이루트 창고에 약 2750톤의 질산암모늄이 6년간 보관돼 있었다”고 밝혔다. 디아브 총리는 “책임자들은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엄벌을 예고했다.
폭발 후 폐허가 된 레바논 베이루트항. [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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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폭발이) 끔찍한 공격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그는 이날 코로나19 태스크포스 브리핑에서 “미군은 베이루트 폭발이 일종의 폭탄 공격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린 레바논과 매우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레바논을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 우리가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 국방 당국자들은 "아직 공격의 징후는 없다"고 말하고 있어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어떤 근거에서 나왔는지는 불확실하다고 CNN은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은 레바논 헤즈볼라를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시아파 민병대 헤즈볼라는 무장단체이지만, 레바논에선 합법 정당으로 인정받아 의회까지 진출했고 내각엔 장관을 지명하기도 했다. 디아브 총리 역시 헤즈볼라의 지지로 지명됐다. 하지만 미국은 헤즈볼라를 테러 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의 숙적인 이란 군부와 가깝게 지내면서 미국과 적대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레바논 루이벨트항에서 대형 폭발이 발생하는 장면들. 폭발은 1‧2차에 걸쳐 발생했고, 폭발 당시 강렬한 불빛과 함께 버섯구름 모양의 연기가 하늘로 치솟았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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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선 이번 폭발이 1‧2차에 걸쳐 발생했고, 처음 붉은 섬광이 보였으며 폭발 범위의 직경이 짧다는 점에서 누군가 일부러 폭발물을 설치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질산암모늄은 테러 공격에 활용돼 왔다. 168명의 목숨을 앗아간 1995년 미국 오클라호마 연방정부 건물 폭파 사건에도 질산암모늄이 쓰였다.
더욱이 이번 폭발은 헤즈볼라 테러로 숨진 라피크 하라리 전 레바논 총리 암살 사건 판결을 불과 사흘 앞두고 일어나 주목받고 있다. 유엔 특별재판소는 7일 하라리 전 총리에 대한 암살을 주도한 혐의로 헤즈볼라 대원 4명에 대한 판결 내릴 예정이다. 친서방 정책을 폈던 하라리 전 총리는 2005년 2월 14일 베이루트의 지중해변 도로에서 폭탄 테러로 사망했다.
하지만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특훈교수는 "사고 초기여서 짐작조차 어렵지만, 만약 고의적인 폭발일 경우 헤즈볼라가 그 배후란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면서 "헤즈볼라가 레바논의 정치 권력을 장악한 상태에서 이런 엄청난 혼란을 자초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폭발 직후 이스라엘이 배후로 지목되기도 했으나 이스라엘은 이번 폭발과 관련이 없다고 부인했다. 이스라엘은 최근까지도 헤즈볼라와 무력 충돌을 벌일 정도로 긴장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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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수 년 내전에 버금가는 혼란 닥칠 것"
전문가들은 이번 폭발 참사가 레바논의 경제·정치·외교적 혼란을 가중시킬 것으로 전망한다.
레바논은 1975년부터 1990년까지 이어진 장기간의 내전으로 경제도 황폐해져 있다. 레바논은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170%에 이르는 국가 부채와 레바논 파운드화 가치 하락, 높은 실업률에 시달려왔다. 내전을 피해 시리아에서 난민들이 넘어오면서 경제 상황은 더욱 악화했다. 여기에 코로나 사태까지 터지면서 관광산업까지 직격탄을 맞았다.
대규모 폭발이 발생한 레바논 루이벨트 현장에서 구조대원들이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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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적으로 이스라엘과 시리아 사이에 있는 레바논은 이슬람 시아파, 수니파, 기독교계 등 종파 간 갈등이 심하다. 이번 참사가 레바논 국내는 물론이고, 대립 관계에 있는 국가 간에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희수 교수는 "이번 폭발로 헤즈볼라의 국가 통제 능력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면서 "반대 진영은 이를 부추기려 할 것이고, 헤즈볼라와 가까운 나라들은 반대 진영에 적대 행위를 하고 나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이란 반관영 메흐르통신은 자국 레이더 영상을 토대로 레바논과 시리아 해안선에 배치된 미국 해군 정찰기 4대가 베이루트항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한 직후 전례 없는 정찰 활동을 벌였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고의적 파괴 행위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반대로 미국과 가깝고 이란과 사이가 나쁜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란 연루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희수 교수는 "레바논에 과거 내전에 버금가는 위기 찾아올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한편, 미국을 비롯한 영국·프랑스·이탈리아·독일·이란 등 세계 각국은 베이루트 참사 수습에 대한 지원 의사를 밝혔다. 특히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6일 베이루트를 직접 방문할 예정이라고 외신은 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베이루트 폭발 참사 희생자들에 대해 깊은 애도의 뜻을 표했다. 교황은 5일 "어제 베이루트 항구 지역에서 발생한 강력한 폭발로 수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다"면서 "모든 희생자와 유족을 위해 기도하자"고 전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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