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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 (수)

이슈 'N번방의 시초' 손정우 사건

손정우 판결, 미국 여성단체는 어떻게 봤을까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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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전세계 회원수 128만 명. 아동 성착취 영상 20만 건. 누적 다운로드 횟수 100만 건. 지난해 10월 미국 법무부가 발표한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 웹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W2V)’의 수사 결과 일부다. 전세계 38개 국이 공조 수사에 참여했고 총 349명의 이용자를 검거했다. 영국, 스페인 등에서 이 웹사이트와 관계돼 성학대를 당하고 있던 미성년자 23명이 구조됐다. 당시 사이트 운영자인 손정우(24)가 한국 법원에서 징역 18개월의 솜방망이 처벌만 받고 복역 중이라는 사실도 함께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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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를 운영한 손정우가 지난달 6일 법원의 미국 송환 불허 결정 이후 의정부 구치소를 빠져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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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비디오를 통한 성착취는 국경을 넘나들며 이뤄졌다. 하지만 손씨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한국 사법관할권을 넘지 못했다. 서울고등법원이 지난달 6일 미국 정부의 범죄인 인도 청구를 기각하면서, 손씨가 강력한 처벌을 받을 마지막 가능성까지 차단됐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지난달 6일 형기를 채우고 출소한 손씨는 현재 불구속 상태에서 ‘범죄수익은닉’ 혐의에 대한 추가 조사를 받고 있다. 범죄수익은닉죄의 법정 최고형은 징역 5년에 불과하다.

미국의 여성단체는 이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경향신문은 전세계에서 성착취·성매매 반대 활동을 벌이고 있는 반성착취연합(CATW)의 공보담당자 마리아나 배닌과 지난달 31일 e메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CATW는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세계적인 반성착취 운동단체로, 한국 법원의 손씨의 미국 인도 불허 이후 여성의당과 국제연대를 추진 중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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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시위팀 회원들이 지난달 7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아동 성착취 사이트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손모씨의 미국 인도 불허 결정을 비판하는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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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우에 대한 한국 정부의 판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손정우에 대한 징역 18개월형은 범죄의 심각성과 비례하지 않았다. 아동 성학대 영상 제작과 배포를 가능하게 한 혐의에 대해서는 합당한 책임을 지지 않았다.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더 높은 처벌이 나왔어야 한다.”

-한국 법원은 미국 정부의 범죄인 인도 청구도 기각했다.

“우리는 한국 시민단체와의 교류 과정에서 손정우에 대한 범죄인 인도 요청 기각이 상당히 이례적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법원이 이같이 판단한 근거도 손정우 사건의 특성과는 부합하지 않다고 들었다. (※서울고등법원 강영수 부장판사는 손씨의 미국 송환을 불허하며 ‘W2V 국내 회원들의 수사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등의 이유를 들었지만, 국내 회원에 대한 경찰 수사는 2018년 이미 마무리한 상태였다. 경찰은 38개국 공조수사로 한국인 회원 235명을 검거했고, 이 중 43명은 재판에서 형이 확정됐다.) 그렇다면 우리는 손정우가 왜 이렇게 끔찍한 범죄를, 국경을 넘나들며 저질렀음에도 처벌을 피할 수 있었는지 따져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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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씨의 미국 송환 여부를 결정하는 범죄인 인도심사 세 번째 심문이 열린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 마련된 중계 법정에서 취재진이 스크린을 통해 중계되는 재판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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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비디오’ 사건의 자세한 경위는 지난해 10월 미국 법무부의 국제공조수사 브리핑을 통해 알려졌다. 당시 미국에서 이 사건에 대한 반응은 어땠나. 미국 내 반성폭력단체들 사이에서 대응 움직임도 있었나.

“미국 법무부가 웰컴 투 비디오를 폐쇄하고 손정우를 추가 기소했다고 발표했을 때까지만 해도 언론 보도와 논의가 일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신매매(휴먼트래피킹) 반대 단체이자 우리와 협력 관계에 있는 ECPAT 인터내셔널의 미국 본부도 ‘사이트 폐쇄는 더 큰 퍼즐을 맞추기 위한 작은 승리에 불과하다’는 논평을 냈다. 하지만 다른 성착취·성매매 사건이 그러하듯이, 단순히 분노를 쏟아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불행하게도 최근 이 사건이나 손씨의 미국 인도 불허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다. 미국 인도 불허 소식은 한국계 미국인 페미니스트 단체와 언론 보도를 통해 접했다. 이 소식은 지난달 6일 전해졌는데, 독립기념일 연휴 직후라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미성년 성착취 혐의를 받는 제프리 엡스타인의 공범 길레인 맥스웰이 체포됐다는 뉴스들도 쏟아지던 상황이었다. 이 두 가지 요인으로 인해 미국 내 대중들의 관심이 부족하지 않았나 추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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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손모씨가 운영한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다크웹 ‘웰컴 투 비디오(W2V)’ 화면이 세계 수사기관에 의해 폐쇄돼 있다. 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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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의 특이점은 피해자에 대한 정보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혹시 미국 정부나 시민단체들에 의해 확인되거나 구조된 추가 피해자가 있나.

“지난해 10월 미국 법무부는 32개 국과의 공조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미국과 스페인, 영국에 거주하면서 사이트 운영자에게 학대당하고 있던 최소 23명의 미성년 피해자를 구출했다’는 내용을 강조했다. 이후 미국 연방정부나 서비스 제공자들이 웰컴 투 비디오와 관련된 다른 피해자를 확인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한국 여성의당이 제안한 국제연대에 참여하기로 했다고 들었다. 연대를 결심하게 된 이유는.

“우리는 전세계 여성을 대상으로 한 인신매매와 성착취를 근절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제적인 페미니스트 단체다. 이를 위해 법과 제도 강화를 촉구하는 한편, 피해 생존자나 타국 시민단체와 협력해 인식을 제고하는 활동을 한다. 아동 폭력과 학대, 성착취에 맞서 정의를 추구하는 한국 여성들의 목소리를 알리는 것은 우리의 활동 방향과 정확하게 부합한다. 우리는 이 사건, 그리고 한국 여성들이 맞서 싸우고 있는 것들이 이 곳 미국에서 그리고 전세계에서 더 많이 공론화되길 바란다.”

-한국에서는 디지털 성착취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미국의 상황은 어떤가.

“인터넷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온라인 성착취도 증가하고 있다. 미국 연방 당국에 의해 폐쇄된 백페이지닷컴(Backpage.com)이나 ‘슈가데이팅 사이트’(나이가 많은 성인이 젊은이들과 돈을 주고 만남을 갖는 것)에는 성구매자들이 물건처럼 구매한 어린 여성들에 대한 노골적인 후기들이 올라오곤 한다. 우리는 이러한 사이트를 통해 성적으로 거래된 피해생존자들과 연대해 활동하고 있다.

아동 성착취 영상을 포함한 이른바 ‘음란물’에 대한 진입 장벽은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 우리와 협력 관계에 있는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들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유명 소셜미디어가 어린 소녀들을 성착취로 유인하고 길들이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성착취물 수요는 증가했고, 이 수요를 맞추기 위한 웹캐밍(웹카메라를 이용한 실시간 촬영)이나 포르노그래피의 수는 그보다 훨씬 많이 늘어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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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에서 성착취·성매매 반대 활동을 벌이고 있는 CATW(The Coalition Against Trafficking in Women·반성착취연합) 메인화면. CATW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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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는 이러한 온라인 성착취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미국 시민단체들의 지속적인 요구로 2018년 4월 ‘온라인성매매방지법(FOSTA-SESTA)’이 통과됐다. 이 법안은 그 동안 온라인 사이트들이 성매매나 성착취를 조장해 이익을 얻는 것을 가능하도록 한 미국 법의 허점을 해결했다. 이에 따라 백페이지닷컴같이 성착취와 성매매를 용이하게 한 것으로 알려진 사이트들이 폐쇄됐다. (※온라인성매매방지법은 제3자가 올린 성매매 광고에 대해 온라인 플랫폼의 책임을 묻지 않도록 한 미국 통신품위법 230조 면책 조항을 개정해 플랫폼 운영자의 관리 책임을 강화했다.)

현재 미국 의회가 검토 중인 또다른 법으로는 ‘언잇법(EARN IT)’법이 있다. 의회 내에 ‘온라인아동성착취예방위원회’를 신설하고, 이 위원회에서 온라인 플랫폼들이 아동 성착취 영상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반드시 따라야 할 모범 실무(best practice) 기준을 만들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손정우 사건 이후 한국에서는 디지털 성범죄에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솜방망이 판결은 여성과 아동을 대상으로 한 학대와 착취를 사소한 것으로 만들고, 이러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는 ‘문화’를 만든다. 가해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강력한 국가 법과 정책이 시행되어야 하는 이유다. 이는 단순히 피해자들에게 정의가 구현되는 것을 보여주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리게 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성폭력에 대한 문화 전반을 바꾸는 일이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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