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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끝없는 부동산 전쟁

[ㅈㅂㅈㅇ] 90년대 안정적이던 서울 집값, 00년대 들어 왜 오르기 시작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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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ㅈㅂㅈㅇ(정보좀요)

[ㅈㅂㅈㅇ]는 시사 이슈를 접하다가 드는 의문점을 알기 쉽게 풀어주는 '지식형 영상' 시리즈입니다. 'ㅈㅂㅈㅇ'는 '정보좀요' 초성을 연결해 만들어진 신조어로 정보를 알려달라고 할 때 댓글란에 다는 표현입니다.



정부가 22번의 부동산 대책을 내놨지만, 서울 집값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 평균 8억 4200만원(25평 기준)이었던 서울 아파트값은 올해 5월 12억 9200만원으로, 3년 만에 4억 5000만원이 올랐다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21일 밝혔습니다. 이는 상승액 기준으로 김영삼 정부 이후 역대 정부 중 최대치라고 합니다.

그런데 비단 이번 정부에서뿐 아니라, 최근 몇 년 동안 ‘서울 집값 너무 비싸다’는 뉴스를 지겹도록 들은 것 같지 않으신가요? 이쯤 되면 ‘서울 집값은 원래 오르기만 하는 거 아니냐’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하지만 시야를 30년으로 넓혀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1986년부터 2018년까지의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지수 추이(2012년 11월 지수=100)를 보면, 1990년대에 꽤 긴 시간 동안 서울 아파트 가격이 안정됐던 시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2000년 이후부터 본격적인 상승세가 시작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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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지수 1986년~2018년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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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서울 아파트값은 왜 2000년대 들어서부터 오른 걸까요? 1990년대엔 대체 뭐가 어떻게 달랐기에 집값이 안정적일 수 있었던 걸까요?



80년대 후반 집값 폭등 잡은 ‘200만호 건설’



집값은 수많은 변수에 영향을 받지만, 큰 흐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수요와 공급’ 그리고 ‘금리’라는 두 개의 주요 변수에 집중해보겠습니다. 1990년대 집값 안정기가 있기 전, 1980년대 말 서울 집값은 폭등하고 있었습니다. 이때의 폭등은 수요에 비해 부족한 공급 탓이 컸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개최하기 위해 각종 인프라는 늘어났지만, 정작 사람이 들어가서 살 주택 공급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거죠.

게다가 1986년부터 1988년까지는 ‘3저 호황’(저달러·저유가·저금리)으로 금리가 낮은 시기였습니다. 보통 금리가 내려가면 집값은 오르는데, 돈이 은행에 묶여 있는 대신 부동산 등으로 흐르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 말에는 부족한 공급과 저금리가 맞물려 집값이 폭등한 거죠.

폭등한 서울 집값이 안정을 찾은 건 1991년도입니다. 노태우 정부는 ‘주택 200만호 공급’ 정책으로 집값을 잡고자 했습니다. 분당, 일산, 평촌 등 유명한 1기 신도시들이 만들어진 것도 바로 이때입니다. 이렇게 대대적인 공급 계획에 따라 1990년부터 1996년까지 거의 매년 10만호 이상씩 주택이 건설됐고, 공급이 늘자 부동산 가격은 안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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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정부의 '주택 200만호 건설 계획'을 보도한 1988년 5월 26일자 지면. 중앙일보 기사DB



안정된 서울 아파트 가격 흐름은 김영삼 정부까지 이어졌습니다. 90년대 중반만 해도 우리나라 주택 보급률은 86%(95년)로 공급이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공급이 대폭 확대되자 집값이 안정될 수 있었던 거죠. 이와 더불어 김영삼 정부가 실시한 ‘부동산실명제’도 시장 안정에 기여했습니다. 부동산 거래에서 차명, 즉 남의 이름을 빌려 쓰는 행위를 통해 탈세와 부동산 투기가 이뤄지곤 했는데, 이게 금지되면서 투기 수요가 억제된 거죠.



2000년대 들어 시작된 부동산 시장 과열



잠잠했던 서울 아파트값은 1997년 말,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폭락했습니다. 실업자가 늘고 가계 소득이 감소하니 집을 사려는 수요도 줄어 집값은 가파르게 내려갔습니다. 이때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에 따라 시행된 고금리 정책 때문에 시중에 유동자금도 말랐고, 이 여파로 부동산 시장은 더욱 침체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락세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부동산 시장은 다시 과열되기 시작했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침체된 건설경기를 살리기 위해 김대중 정부가 '규제 완화' 중심의 부동산정책을 펼쳤기 때문입니다. 양도소득세 면제, 분양가 전면 자율화 등 부동산 시장을 살리기 위한 조치에 투기가 급증했습니다.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도 다시 낮아졌는데, 이런 저금리 기조 또한 집값 상승을 유발했습니다. 보통 금리를 낮추면 기업들이 낮은 이자에 돈을 빌려 투자에 나설 거라 기대하지만, 무분별하게 돈을 빌려 차입경영을 하다가 IMF 사태를 맞은 아픈 기억이 있는 기업들은 저금리에도 투자를 늘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시중에 풀린 돈은 부동산으로 쏠렸고 서울 아파트값은 치솟았습니다.

2003년에 정권을 이어받은 노무현 정부는 집값을 잡기 위해 수요 억제에 집중했습니다. 분양권 전매 제한, 투기과열지구 확대, 종합부동산세 도입 등을 포함한 굵직한 부동산 대책만 10여 차례 발표했죠. 하지만 공급은 늘리지 않고 수요만 억누르려는 규제는 도리어 가격 폭등을 초래했습니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 임기 동안 서울 아파트 가격은 56.6% 상승했습니다. 서울 아파트 34개 단지의 시세 자료를 활용한 경실련은 이 시기의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을 무려 94%로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하락…이후 ‘빚내서 집 사라’ 시대



그러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집값은 다시 하락했습니다. 경제위기가 덮치면 부동산 수요가 줄어 집값이 내려가는 흐름이 반복된 겁니다. 위축된 부동산 시장을 살리기 위해 이명박 정부는 주변 시세보다 싼 아파트인 ‘보금자리주택’ 150만호 공급을 서울 및 수도권에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줄어든 수요에 대한 고려 없이 공급만 늘린 탓에 이명박 정부 4년 동안 서울 아파트 가격은 하락세를 탔습니다.

바통을 이어받은 박근혜 정부 때부터 요즘 우리에게 익숙한 서울 아파트값 상승기가 시작됩니다. 2013년 시작된 박근혜 정부는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통해 경기를 부양하고자 했습니다. 집권 초기 2.75%였던 기준금리를 1.25%까지 인하해 ‘빚내서 집 사라’는 정책 기조를 내세웠고 대출·세금 관련 각종 규제를 풀어 부동산 수요를 늘리고자 했죠. 그 결과 박근혜 정부 4년 동안 가계부채는 963조8000억에서 1344조원까지 늘었고 서울 아파트 가격도 상승세를 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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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구 63스퀘어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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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정권 초기부터 집값을 잡겠다고 공언했습니다. 투기과열지구 확대와 세금, 금융 규제책을 총망라한 8·2 부동산 대책을 필두로 현재까지 벌써 22번의 대책을 내놨습니다. 하지만 서울 집값은 잡히기는커녕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문재인 정부 3년 동안 서울 아파트값이 무려 53% 오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집값이 이렇게 폭등한 이유는 정권 초에 공급 확대보다 수요 억제에 집중한 데다 초저금리로 인한 과도한 유동성이 생산적인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부동산으로 쏠렸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을 해야 가격이 안정되는데, 현 정부 들어서는 서울 내 공급을 늘리지 않았다”며 “특히 신규 물량이 거의 없는데, 이러면 다음 정부에서 집값이 또 폭등할 수 있어서 위험하다”고 말했습니다. 권 교수는 또 요즘 집값 상승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유동성을 꼽으며 “부동산 투자가 고수익이기 때문에 시중 자금이 몰리는데, 부동산을 안전 자산이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여기까지 수요와 공급, 그리고 금리를 키워드로 서울 아파트 가격 30년사(史)를 훑어봤는데요. 그동안의 흐름을 보니, 서울 아파트 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선 시기는 주요 경제 위기 때나 주택 보급률이 높지 않던 90년대에 공급량을 대폭 늘렸을 때뿐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연이은 부동산 대책에도 멈출 줄 모르고 오르는 서울 집값. 과연 잔잔했던 90년대 서울 아파트 가격 그래프를 다시 볼 수 있는 날이 올까요?

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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