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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장비에 ‘월북’ 찍혔는데도 軍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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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조망 벌리고 구명조끼로 도강… 軍 “배수로 녹화영상 정밀분석 중”

여야, 경계실패 한목소리로 질타… 정경두 “무한책임… 국민들께 송구”

세계일보

北 배수로 초소 군 당국은 최근 월북한 탈북민 김모씨가 인천 강화도 월미곳에 있는 정자 ‘연미정’ 인근 배수로를 통해서 구명조끼를 입은 채로 한강을 건넌 것으로 보고 있다고 28일 밝혔다. 사진은 이날 오후 인천 강화군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북한 개풍군의 한 배수로 초소에서 북한군(원 안)이 근무하는 모습. 강화=하상윤 기자


최근 월북한 탈북민 김모(24)씨는 인천 강화군 월곳리의 배수로 장애물을 빠져나간 뒤 구명조끼를 입고 한강을 건넌 것으로 28일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김씨의 행적이 군 감시장비에 포착된 것으로 알려져 군의 ‘경계 실패’ 비판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여야 정치권은 군의 경계 실패를 한목소리로 질타했고,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송구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연미정 인근 배수로 이용… 감시장비에 찍혔지만 인지 못한 듯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군은 김씨가 강화군 강화읍 월곳리에 있는 정자인 연미정 인근 배수로를 통해 월북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연미정 맞은편에 있는 이 배수로는 철책 밑을 가로질러 한강으로 물이 흘러나가도록 설치됐다.

내부에는 쇠창살 형태의 철근 구조물과 윤형 철조망이 있다. 하지만 철근은 낡고 틈새가 벌어졌으며, 철조망도 노후화한 상태다. 김씨가 만조를 활용해 구명조끼를 입고 도강한 것으로 추정됐다.

박한기 합참의장은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장애물이 오래돼서 많이 노후화한 부분이 식별됐다. 장애물을 벌리고 나갈 여지를 확인했다”며 “월북 시점이 만조 때라서 (배수로 탈출 후) 부유물이 떠오른 상황에서 월북자가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머리만 내놓고 떠서 갔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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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숙인 정경두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28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업무보고를 하기 전 인사하고 있다. 정 장관은 이날 탈북민 김모(24)씨의 월북 사건에 대해 ”모든 부분의 무한 책임을 국방 장관이 지고 있다”고 사과했다. 남정탁 기자


합참 김준락 공보실장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군 감시장비에 포착된 영상을 정밀 분석 중”이라고 말해, 김씨의 월북 전후 행적이 군 감시장비에 찍혔음을 시사했다.

군은 김씨가 한강에 들어갔다면 그 모습이 녹화 영상에 남아 있을 것으로 보고 지난 18∼19일 해당 지역에 설치된 군 폐쇄회로(CC) TV와 열상감시장비(TOD) 녹화 영상을 조사 중이다. 영상에서는 물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는 부유물이 식별돼 정밀 분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상에서 김씨의 모습이 포착됐다면, 군이 모니터링 과정에서 이를 놓쳤다는 의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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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김씨의 월북 경로로 추정되는 강화군 월곶리 인근의 한 배수로의 내부 모습. 군 당국은 김씨가 배수로 내 쇠창살 형태의 철근 구조물과 철조망을 뚫고 헤엄쳐 월북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뉴스1


군 당국은 영상 외에도 당시 경계 체계에 문제가 없었는지도 조사하고 있다. 해당 지역 경계와 지휘체계는 해병 2사단→육군 수도군단→지상작전사령부로 구성돼 있다. 조사 결과에 따라 해병대와 육군에 대한 큰 폭의 징계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여야, 군 경계 실패 질타… 고개 숙인 수뇌부

여야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군의 경계 실패를 한목소리로 질타하고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의원은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진상조사를 철저히 하고 명명백백하게 밝혀 군 기강 차원에서 신상필벌하고 전·후방 경계태세를 보강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당 설훈 의원도 “일부러라도 들어가서 확인했더라면 쉽게 뚫리지 않았을 텐데 안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전체적으로 점검을 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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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김씨의 월북 경로로 추정되는 강화군 월곶리 인근의 한 배수로 앞 초소가 인적 없이 조용하다. 해병2사단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초소는 야간에 경계근무를 서고 오후2시까지는 비어 있다. 전방에는 (왼쪽)북한과 김포가 동시에 보인다. 뉴스1


미래통합당 강대식 의원은 “이렇게 허술한 군사대비태세에 간첩이 우리 영토에 침투해서 첩보 활동 등 마음껏 활보하다가 탈출하지 않았다고 누가 확신할 수 있겠냐”고 비판했다. 같은 당 신원식 의원도 “경계작전 실패는 장병의 성실성, 정신전력이 해이해졌다는 소리”라며 “경계작전 실패는 표피적 원인이 있겠지만 본질은 장병 정신 전력에 있다는 것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라”고 쏘아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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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군 수뇌부는 “송구스럽다”며 거듭 사과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국방과 관련된 모든 책임의 끝은 국방부 장관에게 있다”며 “저는 무한책임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국민들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한기 합참의장도 “사안의 엄중함을 인식하고 있고 책임을 깊이 통감하고 있다”며 “향후 어떤 우발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는 확고한 대비 태세를 유지해나가도록 근원적인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답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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