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1000만명 서울시의 수장이 성추행 의혹 속 파국적인 선택을 했다. 탁월한 '시대의 디자이너'였지만 그의 마지막은 남겨진 이들의 가슴을 짓누른다. 문재인 대통령도 그중 한 명이다.
고인의 선택과 그 이유를 결코 미화해선 안 된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상실감은 그것대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
[서울=뉴시스홍효식 기자 = 13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차려진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민분향소가 철거되고 있다. 2020.07.13. yesphoto@newsis.com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
조영래·박원순과 노무현·문재인
━
문 대통령은 1980년 사법고시에 합격, 사법연수원 생활을 시작한다. 141명의 합격 동기중 세 살 아래인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1956~2020)도 있다. 시대를 앞서갔던 고 조영래 변호사(1947~1990)까지 가세했다.
조 변호사는 1971년 사시에 합격했다. 하지만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 받는 등 연수원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1980년 수배해제, 복권됐고 연수원에 재입학했다. 문 대통령은 "작고한 조영래 변호사도 한참 선배였는데, 연수원 동기였다. 내게 많은 영향을 줬다"('운명')고 기록했다.
셋은 1982년 제12기로 사법연수원을 함께 수료하고 각자의 길로 간다. 조 변호사는 굵직한 시국 사건, 산업재해 소송 등의 변론을 맡으며 시대변화의 길을 개척했다. 박 시장은 1년여 짧은 검사생활 후 인권변호사의 길로 나섰다.
문 대통령은 이른바 '중앙무대'에서는 두 사람보다 덜 알려졌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동지로 부산·경남 인권·노동사건 변호사의 길을 묵묵히 걸었다.
박 시장은 '시민사회'라는 영역을 일궜다. 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 희망제작소를 잇따라 설립하며 시민사회의 개념과 영역을 끊임없이 확장했다. 진보진영의 성장은 그 성과에 기댄 측면이 있다. 심지어 박 시장 본인의 2011년 서울시장 도전, 문 대통령의 정치입문까지도 그렇다.
이해찬 공동장례위원장은 13일 "박 시장은 넓게 보면 한국사회 시민운동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그랬던 박 시장의 마지막 모습은 남은 이들에게 가늠할 수 없는 충격이다.
[서울=뉴시스]박영태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 보좌관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0.06.29. since1999@newsis.com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
'문재인만 남았다'
━
40여년간 따로 또 같이 시대변화를 이끈 문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노영민 실장이 10일 빈소에서 "너무 충격적"이라고 전한 문 대통령의 표현에서 짐작할 수 있다.
우선 박 시장의 부재 자체가 주는 상실감이다. 조영래 변호사는 폐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9년 비극적으로 삶을 마쳤다. '문재인과 박원순'만 남았는데 박원순도 사라졌다. 시대변화의 주역 4명 중 문 대통령만 남았다.
게다가 박 시장은 성희롱 피해자의 변호인에서 성추행 피고소인이라는 급전직하의 모습이 됐다. 박 시장은 성인지 감수성이나 성평등 의식이 동년배 다른 정치인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았는데도 그랬다.
1980년대 인권변호사 시절, 박 시장은 조 변호사와 함께 여성피해자들을 보호한 주역이었다. 박 시장은 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과 1990년대 서울대 모 교수의 성희롱 사건(우 조교 사건)에 변호인이었다. 그랬던 그가 자신의 행동이 무엇인지를 진작 깨닫고 멈추지 않은 게 사실이라면 부끄러워 해야 할 일이다.
고소인은 13일 변호인 등을 통해 공개한 심경에서 "공정하고 평등한 법의 보호를 받고 싶었다"고 호소했다. '공소권 없음'으로 끝날 게 아니라 진실규명이 필요할 것이다. 시민사회의 변질 또한 숙제다.
그럼에도 남은 사람들이 고인의 부재를 슬퍼할 여지는 있지 않을까. 백낙청 공동장례위원장은 13일 영결식에서 "애도가 성찰을 배제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김성휘 기자 sunnykim@mt.co.kr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