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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 (수)

이슈 '종교적·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뉴스AS] 여호와의 증인 ‘종교적 신념 병역거부’ 대법원서 막힌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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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의 내면화, 객관적 자료로 증명돼야”

‘모태신앙’만으로 병역 거부할 수 없어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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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법원에서 병역 거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호와의 증인 신도 2명에 대해 상반된 판결이 나왔습니다. 김아무개씨와 이아무개씨 모두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입영하지 않아 병역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았는데, 대법원이 지난 6월25일 김씨에게는 “병역법에서 정한 정당한 (입영 거부) 사유에 해당한다”며 무죄를 선고했지만, 지난 9일 이씨에게는 “절박한 양심에 따른 것인지 의문이 든다”며 원심의 무죄 판결을 뒤집었습니다. 2018년 11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양심적 병역거부는 정당하다’고 판단한 뒤 원심의 무죄 판결을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최초의 판결이기도 합니다. 대법원은 왜 이씨의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았을까요?

‘모태신앙’만으로 증명 안 돼

김씨와 이씨는 모두 태어나면서부터 여호와의 증인이 됐고 병역법 위반으로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김씨는 항소심과 대법원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이씨의 사건을 맡은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이씨가 병역거부를 주장할 때부터 파기환송심이 끝날 때까지 ‘침례’를 받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침례는 여호와의 증인 공적 모임에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다른 신도들로부터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절차입니다. 김씨는 2009년 이 절차를 밟았지만 이씨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모태신앙으로 이미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됐다”는 이씨의 주장에 대법원은 “종교적인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하고 있는 이 사건의 특성상 침례 여부는 이씨가 밝히는 양심과 종교적 신념이 얼마만큼 내면화됐는지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단초로 삼기에 충분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대법원은 또 “이씨는 침례를 아직까지 받지 않은 경위와 이유는 물론 향후의 계획도 구체적으로 밝히거나 이를 뒷받침할 자료를 제시하지 않았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런 판결이 나온 배경에는 2018년 11월 전원합의체 심리 당시 대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면서 제시한 판단 기준이 있습니다.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은 (병역 거부자의) 양심이 과연 진실한 것인지 가려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병역 거부자는 그 양심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것이라는 구체적인 소명자료를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의 ‘침례’ 여부가 이들이 품고 있는 종교적 신념의 진실성을 판가름할 수 있는 잣대라고 본 것입니다.

“양심의 내면화…충실한 심리 이뤄져야”

대법원은 침례를 받았는지 외에 이씨가 법원에 제출한 여러 소명자료도 부실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원심은 이씨가 침례를 받진 않았지만 △정기적으로 집회에 참석하고 △신앙생활과 관련된 각종 활동에 매진하고 △입영 통지를 받은 뒤 병무청장에게 ‘대체복무를 하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점 등을 들며 무죄를 선고했는데, 대법원은 “원심이 충분한 심리를 거치지 않은 채 이씨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씨는 재판 과정에서 학창 시절 생활기록부와 봉사활동이 담긴 사진을 제출하며 여호와의 증인 신도로 활동했다고 주장했는데, 대법원은 “이씨의 이러한 종교적 활동은 종교적 신념이 내면의 양심으로까지 자리잡게 된 상태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이뤄질 수 있다”며 “신앙 기간이나 실제 종교적 활동이 어땠는지 보여주는 다른 자료들을 제출하지 않아 어떠한 종교적 신념을 가졌는지, 어떠한 종교적 활동을 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대법원은 또 이씨의 활동을 증명할 사실확인서 등 객관적인 자료가 제출되지 않은 점을 들며 “이씨의 ‘양심’이 과연 그 주장에 상응하는 만큼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것인지, 종교적 신념에 의한 것이라는 이씨의 병역거부가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에 따른 것인지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고 덧붙였습니다.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 사건과 관련해 원심의 무죄 판단이 대법원에서 처음으로 뒤집히면서 앞으로는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종교적 신념이 명확함’을 증명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대법원 관계자는 “병역거부가 받아들여지기 위해선 종교를 신봉하게 된 동기와 경위, 신앙 기간과 실제 종교적 활동 등을 중심으로 충실한 심리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 하급심에 분명하게 전달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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