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에 하나 같이 ‘함구’, 당 대표는 ‘버럭’
11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 마련된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조문을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
전직 비서에게 성추행 등 혐의로 고소를 당한 다음날 숨진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이유와 관련해 여권 일각에서 “(고소인의 주장과) 전혀 다른 얘기가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여권 인사들이 박 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 함구하고 있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취재진의 관련 질문에 격노하는 모습도 보였다. 여당이 박 시장의 사망 이유 ‘뒤집기’에 나선 것 아니냔 분석도 있다.
11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 허윤정 대변인은 전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박 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 묻는 질문에 “(당에도) 정보가 없다”면서 “보도되고 있진 않지만 전혀 다른 얘기도 있다, 양쪽 끝 스펙트럼을 모두 듣고 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과 여권 인사들은 박 시장의 죽음에 “자신에게 엄격했던 분”, “맑은 분”이라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참여정부 출범 때부터 뵀고, 맑은 분이기 때문에 세상을 하직할 수밖에 없지 않았나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페이스북 글에서 “삶을 포기할 정도로 자신에 대해 가혹하고 엄격한 그대가 원망스럽기만 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박 시장의 빈소를 찾은 민주당 인사들은 성추행 의혹에 대해 하나 같이 침묵을 지켰다.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는 전날 조문 당시 해당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차기 유력 대선주자로 꼽히는 이낙연 의원도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이해식 의원은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만 했다. 다른 의원들도 “전혀 모른다”거나 “묻지 말라”는 등의 답변으로 질문을 회피하는 모습이었다.
일부 인사는 ‘예의’를 내세우기도 했다. 민주당 김진표 의원은 “고인을 위해 오늘은 아무 말도 안 하는 게 예의다”라고 했고, 같은 당 권칠승 의원은 “잘못하면 돌아가신 분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 될 수도 있기에 최소한의 예의는 차려야 하지 않겠냐”고 되물었다. 나아가 이해찬 대표는 고인의 성추행 의혹에 대한 당 차원의 대응 계획을 물은 기자에게 “그런 걸 이 자리에서 예의라고 하는 것인가, 최소한 가릴 게 있고”라며 격분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의원이 지난 10일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뉴시스 |
이 대표는 혼잣말로 “XX자식 같으니라고”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허 대변인은 “(이 대표가 발언 당시) 굉장히 침통하고 (감정이) 격했던 것 같다, 심리적으로 충격이 큰 것 같다”고 수습했다.
박 시장의 최측근이자 상주 역할을 맡은 민주당 박홍근 의원은 해당 의혹 제기를 중단할 것을 요청했다. 박 의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악의적이고 출처 불명의 글이 퍼지고 있어 고인의 명예가 심각히 훼손되고 있다”며 “부디 무책임한 행위를 멈춰달라”고 했다. 박 시장의 유족들도 입장문에서 “고인에 대해 일방의 주장에 불과하거나 근거 없는 내용을 유포하는 일을 삼가해주시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지난 10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조문을 마친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
그러나 야권에서는 민주당 인사들의 이 같은 태도가 오히려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야권 관계자는 언론에 “전직 비서가 박 시장 사망 직전 ‘장기간 성폭력을 당했다’며 경찰에 고소한 정황과는 전혀 상반되는 얘기”라며 “박 시장의 사망 이유에 대해 여권이 뒤집기에 나서려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는 “가해자를 미화하는 과정에서 ‘성폭력 은폐’와 2차 가해도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경찰 등에 따르면 2017년부터 박 시장의 비서로 일했던 A(여)씨는 지난 8일 변호사와 함께 서울경찰청을 찾아 박 시장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했다. A씨는 당시 새벽까지 고소인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비서 일을 시작한 2017년 이후 성추행이 이어져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또 ‘신체 접촉 외에 박 시장이 휴대전화 메신저(텔레그램)를 통해 개인적인 사진을 여러 차례 보내왔다’고도 주장했다고 한다. ‘피해자가 본인 외에 더 많으며, 박 시장이 두려워 아무도 신고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고도 덧붙였다는 전언이다. 이 사건은 피고소인인 박 시장의 사망에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될 예정이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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