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구윤성 기자 = n번방에분노한사람들, 모두의페미니즘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8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다크웹 아동성착취물 유통사이트 운영자 손정우의 미국 송환 기각 결정을 한 사법부를 규탄하고 있다. 2020.7.8/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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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서 집행유예…'우리는 왜 그때 분노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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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손씨에 대한 재판부의 결정은 양형과는 별개의 문제다. 하지만 손씨의 불송환결정을 계기로 1·2심 양형이 뒤늦게 다시 한번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손씨는 2018년 9월 7일, 1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받는데 그쳤다. 당시엔 신상정보 등록 및 제출의무도 없다고 봤고 취업제한 명령도 선고되지 않았다.
판결문에 적힌 손씨의 범죄사실에는 회원들이 어떠한 종류의 동영상들을 업로드했는지 나와 있는데 일일이 설명이 불가능할정도로 비윤리적인 내용들이 많다. 미국 연방대배심에서 손씨를 기소하면서 범죄 행위를 열거했는데, 피해 아동중에는 태어난지 6개월된 아동도 있었다. 손씨는 해당 사이트에 '성인물은 올리지 말라'는 공지까지 했다.
1심 재판부는 "아동·청소년에 대한 인식을 성적으로 왜곡해 사회에 미치는 해악이 크다"고 했지만 "피고인 나이가 어리고 별다른 범죄전력이 없으며 회원들이 업로드한 음란물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내렸다.
지난해 5월 2일에 내려진 항소심 재판부의 선고 형량은 징역 1년6개월이었다. 5년간 아동·청소년 관련기관에 대한 취업제한 명령도 그제서야 내려졌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취급하는 것이 성인물보다 경제적으로 이득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면서 "장기간 큰 규모로 영리를 목적으로 아동청소년음란물을 판매·배포·전시한 행위는 사회적 해악이 매우 커서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손씨 사건이 다시 주목받게 된 계기는 'n번방' 사건이었다.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등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보다 강화된 디지털성 범죄 양형기준을 연말까지 내놓겠다고 했고, 손씨의 미국 불송환 결정이 나자 처벌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여론이 정점에 달했다.
한편 법조계에서는 손씨의 미국 불송환 결정과 관련해 개인 판사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재판에 대한 독립성이 보장돼야만 판사가 소신을 갖고 판결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평가가 엇갈릴 경우, 비슷한 방식으로 법원을 압박하는 방식이 되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반면 법원이 과한 경계심을 갖기 보다는 사법정의가 무엇인지, 국민 법감정가 왜 괴리가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웰컴투비디오 사건은 4개국 공조수사와 31개국 수사협력을 통해 검거한 세계 최대의 아동 성착취물 사건"이라며 "손씨가 저지른 범죄의 피해는 한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법정의에 대한 비난은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질타했다.
(서울=뉴스1) 박지혜 기자 = 텔레그램 성착취 문제를 알린 여성 활동가들이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손정우의 미국 송환을 불허한 사법당국을 비판하고 있다.edn(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시위)는 기자회견을 통해 "손정우의 '미국 송환 불허' 결정을 내린 재판부의 판단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2020.7.7/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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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우 불송환결정, 법조계에서도 의견 '분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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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에서는 재판부의 불송환 결정이 '처음부터 끝까지 틀린 것'은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사법주권과 자국민보호가 해당 재판부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고, 무엇보다 일사부재리 원칙에 충실한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재판부의 사법주권과 자국민 보호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은 "손씨가 국적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이 주권국가로서 손씨에 대해 주도적으로 형사처벌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는 부분이다. 손씨가 미국으로 송환된다면 손씨에 대한 처벌의 주도권을 미국이 갖게 되며 우리나라는 미국 사법 공조 요청을 받아 지원하게 된다.
일단 판결이 확정되면 같은 사건에 관해 다시 공소제기가 어렵다는 점도 재판부가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손씨는 미국에서 범죄수익은닉 혐의로 기소가 돼 있다. 손씨는 이미 국내에서 성범죄 관련 혐의로 1·2심 판결이 나온 상황인데, 미국에 송환되면 성범죄 관련 수사 및 재판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손씨가 미국으로 송환됐다면 현실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여기서 끝'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손씨를 국내에 남겨둠으로써 여론을 계속 환기하면서 검찰 추가 수사 및 디지털 성범죄 관련 입법화 등 오히려 쓸 수 있는 카드가 다양하다는 의견도 있다. 재판부가 "손씨 외의 회원들에 대한 추가 수사를 염두해 손씨 신병을 대한민국에서 확보하는 것이 오히려 이익"이라고 강조한 측면과 일맥상통한다.
법조계의 한 인사는 "형사 피고인의 일사부재리 원칙에 충실한 판결로 해석해 볼 수 있는 측면도 있다"면서 "재판부 입장에서도 손씨를 미국으로 보냈다면 여론의 비판을 덜 받지 않았겠냐. 예외적으로 불송환 결정을 한 것은 이 사건의 심각성을 중대하게 보고 검찰에 수사 여지를 더 부여한 셈"이라고 말했다.
반면 '피해자 구제' 보다는 '가해자 처벌'에만 중점을 두고 있는 사법부의 형사처리 방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법조계 관계자는 "피해자들 중에는 외국 아동들도 있다. 피해자 구제의 측면에서 보면 미국으로 송환하고 국제 사법공조를 지원하는게 더 타당했다고 본다"면서 "재판부가 우리나라 피해자에만 국한해 국내 범죄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는 생각도 든다. 결국 디지털성범죄의 특성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데서 비롯된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한국여성변호사회도 성명을 내고 "웰컴투비디오 사건 특성상 국제 사법공조가 필요한 사안으로 손씨의 신병이 국내에 있어야만 수사가 속도를 낼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법원이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부족한 인식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미호 기자 best@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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