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조정위원은 "좋은 추억으로 남도록 합의해야" 2차 가해
데이트폭력 관련 자료사진 (CG) |
(부산=연합뉴스) 박성제 기자 = 남자친구에게 데이트 폭력을 당한 피해 여성이 검찰 형사조정 과정에서 가해자와 단둘이 대면하고 합의를 종용받는 등 2차 피해를 당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대학원생 윤모(22)씨는 지난해부터 남자친구 A씨에게 수차례 맞는 등 데이트 폭력을 당했다.
이 충격으로 윤씨는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
참다못한 윤씨는 지난 3월 경찰에 폭행죄로 A씨를 신고했고, 사건은 부산지검 동부지청으로 넘어갔다.
윤씨는 수사 과정에서 형사조정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는데도 동부지청은 조정을 진행했고, 어쩔 수 없이 지난 5월 조정에 참여했다.
형사조정 당일 동부지청 담당 수사관은 '둘이서 만나 이야기를 해봐라'며 폭행 트라우마를 겪는 윤씨에게 가해자와 대면할 것을 수차례 제안했다.
동부지청 측의 계속되는 권고에 윤씨는 할 수 없이 피해자 대기실에서 가해자와 단둘이 30분가량 만났다.
가해자는 사과는커녕 오히려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며 화를 내고 대기실을 나가버렸다.
윤씨는 "폐쇄된 공간에 가해자와 단둘이 있으니 매우 두려웠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에 대해 남자친구 A씨는 "과거 윤씨에게 폭행을 당한 적이 있으며 이번 일도 연인 간 벌어진 쌍방 폭행이 발단"이라며 "피해자 대기실에 있을 당시 윤씨에게 사과도 했다"고 주장했다.
면담 이후에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동부지청 측은 가해자와 만나볼 것을 다시 제안하기도 했다.
게다가 형사조정 과정에서 조정위원은 "한때 연인이었는데 좋았던 추억으로 남길 수 있도록 가해자와 합의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취지로 말해 윤씨를 충격에 빠트렸다.
이 조정위원은 이어 "가해자가 재판에 가도 어차피 벌금형을 선고받을 건데 본인(윤씨)에게 이득 될 게 없다", "불면증이 생겼다면서 이 사건이 빨리 끝나야 편하게 잘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는 것이 윤씨 말이다.
이에 동부지청 측은 "피해자 입장에 반해 형사조정 절차를 진행할 수 없다"며 "양 당사자의 의사를 물어 만나게 했을 뿐 강제성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해당 조정위원은 "'연애 기간 좋았던 감정을 떠올려 원만히 이야기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식으로 이야기했다"며 "결코 나쁜 의도는 없었으며, 합의를 위해 양쪽을 조금씩 양보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현재 가해자 A씨는 피해자의 합의 거부로 약식 기소돼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형사 조정제는 일반인을 조정위원으로 임명해 형사 사건 당사자 간 원만한 화해와 합의를 유도하자는 취지의 제도다.
하지만 성범죄 사건에 성 인지 감수성이 떨어지는 조정위원과 수사관이 배정돼 피해자가 2차 피해를 당하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지적이다.
이수연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는 "성 인지 감수성을 키울 수 있도록 조정위원을 대상으로 한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변정희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 상임대표는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위압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검찰이 조정이라는 미명 하에 성폭력 피해자에게 합의를 종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psj1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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