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원로배우 이순재 전 매니저 사건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갑질’, ‘머슴살이’라는 자극적인 단어가 등장했지만, 이건 본질이 가려질 가능성이 있다.
이순재는 아내가 매니저에게 쓰레기 분리수거 등 허드렛일을 시키데 대해 여러 번 사과를 했고, 지금까지 거쳐간 많은 매니저들도 사적인 일을 해줬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머슴살이 운운은 지나치다고 본다.
사안은 두 가지다. 하나는 매니저의 업무영역에 관한 문제이고 또 하나는 매니저의 처우에 관한 문제다. 후자는 이순재가 논의의 파트너가 아니다. 이건 매니저가 소속사 사장과 논의해야 하고, 4대보험과 계약서 작성 등 작업조건이 안맞으면 회사를 떠나거나 고용노동부에 신고해버려야 한다.
전자를 살펴보기 위해 선배 매니저들의 여건과 상황을 조금 살펴보자. 매니저라는 직업도 '갑툭튀'가 아니라 역사성을 가지고 현재까지 왔다.
2000년대 초반 연예인의 매니저 월급이 너무 적어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매니저에게 물었다. 월 50만원은 너무 적지 않아요? 돌아오는 답변은 ‘일을 배워야 하니까’ 또는 ‘...’이었다. 매니저라는 직업이 연예인도 만나고 방송국이나 공연장에도 갈 수 있어 젊은이들에게는 ‘재밌는 직업’으로 비쳐질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아 매니저를 고용하는 몇몇 기획사 사장에게 왜 적게 주냐고 물어봤다. “다른 데도 적게 주니까.” “앞으로 사장을 할 경험과 발판을 제공해주는데, 매니저에게 굳이 월급 많이 줄 필요 있나요. 월급 안줘도 일할지도 몰라요”
어이가 없었지만 궁금증이 조금은 해소됐다. 지금도 매니저가 근무시간과 환경이 다른 직업군에 비해 좋은 조건이 아님에도 급여가 적은 건 이런 인식의 역사성과도 관계가 있을 듯하다.
그 다음은 로드매니저의 업무 영역이다.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의 구분이 돼있지 않다. 이순재 사건이 터진 다음날 20년 정도 경력의 매니저 두 명과 대화를 나눴다.
“우리 때는 머슴살이보다 더한 것도 했는데, 고작 두 달 하고 녹취록이 나오고...”
굳이 오랜 경력의 매니저 이야기를 듣지 않더라도, MBC ‘전지적 참견 시점’을 통해 매니저의 업무가 사적 영역에 들어와 선을 넘어섰음을 알 수 있다. 가수 선미의 여자 매니저는 아침부터 선미 집에 가서 10여분간 선미를 깨운다. 엄마도 딸을 그렇게 못깨운다. ‘전참시’를 보면 선미가 매니저에게 허드렛을 시킨 것이다.
사적 영역의 심부름 정도가 아니라 매니저가 수모를 당해 모멸감에 느끼게 하는 연예인도 간혹 있다. 이건 연예인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다. 해당 연예인만 버텨내면 모든 매니저 업무를 감당할 수 있는 매니저 유격훈련장이라고 부른다.
심지어 몇몇 스타는 매니저를 개인비서처럼 부려먹기도 한다. 여기서 비서라는 단어는 비서의 전문성이 확보되기 전의 이미지다. 이런 매니저들은 매니저 본연의 업무를 보기 힘들다.
이 같이 다소 극단적인 매니저 사례 외에도 보편적인 연예인들도 사적인 일을 매니저가 해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순재 씨 말처럼 ‘매니저는 가족이니까’라는 인식이 퍼져있다.
지금 연예인들중 상당수는 매니저가 문제를 삼는다면 갑질이나, 허드렛일, 머슴살이 시킨 연예인이 된다. 걸면 걸린다. 그래서 연예인들은 “매니저의 업무 영역을 분명하게 정해달라”고 한다. 촬영장에서 스태프들에게 아이스크림 사와 돌리라고 매니저에게 시킨 것도 허드렛일이나 갑질이 될 수도 있겠다고 한다. 이러다 ‘매니저too’도 계속 나오지 않을까 걱정한다.
매니지먼트협회나 가수협회, 방송연기자협회가 매니저 중에서도 연예인의 사적 영역의 일을 할 수도 있는 로드매니저의 업무 영역을 명확하게 정하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완벽한 해결책은 못된다.
매니저를 가족관계가 아닌 비지니스 관계로 봐야 하지만, 인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직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연예인의 사적 비밀과 공간까지 공유하는 로드매니저의 속성상 양 자간의 신뢰 없이 업무와 관계가 지속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결론은 지금보다 좀 더 상세한 로드매니저 업무 영역의 중요한 줄기는 민들어야 하고, 양자간 그런 업무 구분 인식하에 서로의 영역 지키기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우선 연예인은 누가 봐도 명벽한 사적 업무는 매니저에게 시키지 말아야 한다.
또 하나인 매니저의 처우에 관한 문제는 매니저 업무영역의 이론과 현실과 달리, 이미 정해져 있다. 이와 병행해 매니저들도 자신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매니저들도 연예산업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축이자 중요한 영역이라는 점에서 열악한 조건을 개선해주려는 공공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wp@heraldcorp.com
- Copyrights ⓒ 헤럴드경제 & heraldbiz.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