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직 지분헌납 이후에도 멀어지는 이스타항공 매각

제주항공 “기존 계약이나 성실히 이행해라”업계 “코로나19로, 인수합병 시 양사 모두 위기 처할 것”

이스타항공 여객기가 김포공항 국내선 계류장에 서 있다.뉴스1

“창업주가 지분까지 헌납하기로 했으면 할 만큼 한 것 아닌가. 협상장으로 나와 나머지 인수합병 절차 진행하자.”(이스타항공)

“말 바꾸기 하지 말고 추가 협상할 내용이 있다면 공문으로 보내라.”(제주항공)

이스타항공의 창업주인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지분헌납 선언 이후에도 이스타항공과 제주항공 간 인수합병 문제는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스타항공은 이젠 인수만 결정만 하면 된다고 압박하고 있지만, 제주항공은 변한 게 없다며 핑퐁게임을 벌이는 양상이다.

1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이스타항공은 이 의원 가족이 보유한 이스타홀딩스 지분(질권 설정 등으로 1% 제외한 38.6%)에 대해 제주항공과 협상을 통해 구체적인 이행 절차에 들어가겠다는 입장이다. 이 의원의 지분에 대한 헌납방법 등이 양사간 구체화되지 않았고, 지분 헌납으로 인수합병 계약 주체가 기존 이스타홀딩스에서 이스타항공으로 변경해야 할 문제를 협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사다.

이 의원은 지난달 29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스타홀딩스가 보유한 이스타항공 지분을 이스타항공에게 무상으로 넘기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약 410억원에 달하는 금액으로, 오너 일가는 완전히 손을 떼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스타항공 관계자는 “협상 의지만 있다면 이 의원에 대한 지분을 주식 또는 돈으로 받는 사항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인수 의사가 있다면 조속히 협상 테이블에 나와 남은 절차를 마무리하면 된다”고 말했다.

최종구(왼쪽에서 두번째) 이스타항공 대표가 지난달 29일 강서구 본사에서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의 인수·합병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제주항공 측은 계약 변경 사항을 사전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했다며 더 이상 이스타항공을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계약자가 바뀌는 중요한 협상 내용을 일방적인 기자회견 통해 인지하게 된 것”이라며 “거래가 성사되려면 기존 계약을 성실하게 이행하는 게 우선이며 협의할 사안은 정식 공문으로 보내오면 법적 판단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측은 이번 이 의원 건 외에도 이미 인수합병과 관련된 구체적인 사안에서 갈등을 빚고 있는 상태다. 250억원에 달하는 직원 임금체불 문제만 해도 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 대주주가 해결해야 한다고 했고, 이스타항공 측은 인수자가 해결하는 게 관행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원들이 지난달 29일 최종구 이스타항공 대표가 서울 강서구 본사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을 지켜보고 있다. 뉴시스

이처럼 협상이 진행되지 않는 속내는 승자의 저주 우려도 한 몫을 한다. “이스타항공 인수 시 제주항공만이 아니라 애경그룹까지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업계 분석이 나올 정도로, 제주항공 내에서는 부정적인 기류가 강하다.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운항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직원 임금, 항공기 리스비, 임대료, 통신비 등을 모두 부담해야 해 동반 부실이 우려되고 있어서다. 실제 제주항공 역시 1분기 당기순손실이 995억원에 이르는 등 경영난을 겪는 중이다. 이 의원이 헌납키로 한 지분조차도, 현재 이스타항공이 완전자본잠식 상태(1분기기준 부채 2,200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직원 체불임금보다도 가치가 없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기도 하다.

매각이 불발되면 이스타항공은 정부 지원조차 기댈 수 없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달 29일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협상이 종결되지 않으면 정책금융을 지원할 일이 없다”고 밝혔다.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을 인수한 이후 약속한 1,700억원을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이스타항공은 자력회복은 어려운 상태로, 조속히 새로운 인수자를 찾지 않으면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관규 기자 ace@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