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타항공 "인수·합병 속도 내라"…제주항공 "공문 오면 검토하겠다"
최종구 이스타항공 대표(오른쪽)가 29일 서울 강서구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스타항공의 창업주인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참석하지 않았다. 왼쪽은 김유상 경영본부장. 연합뉴스 |
이스타항공의 창업주인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지분 헌납' 발표 이후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 간 갈등의 골이 한층 더 깊어지는 모습이다.
이스타항공은 제주항공에 공을 넘긴 만큼 인수·합병(M&A)에 속도를 내라고 압박하고 있지만, 제주항공은 "공문이 오면 검토하겠다"며 꿈쩍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1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이상직 의원의 '지분 헌납' 발표에 따른 후속 조치 논의를 놓고 이스타항공과 제주항공의 입장차가 전혀 좁혀지지 못하고 있다.
이스타항공은 아직 이 의원의 지분에 대한 구체적인 헌납 방법이나 방식 등이 정해지지 않았고 지분 헌납으로 계약 주체가 이스타홀딩스에서 이스타항공으로 변경돼야 하는 문제가 있지만, 이 모든 것이 양사의 협상을 통해 해결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스타항공 관계자는 "협상 의지만 있다면 주식으로 하냐 돈으로 하냐가 뭐가 문제냐"며 "이를 문제 삼는 것은 '발목잡기'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제주항공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 측이 사전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사실상 계약 변경과 같은" 내용을 발표한 데다 기자회견만으로는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우리에게 공문을 보내거나 공식적으로 요청해온 바가 전혀 없다"며 "공문이 오면 법무법인과 상의해서 검토하겠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이스타항공 측은 "만나자고 연락해도 서면으로 달라고 하는데 우리가 서면에 담을 수 있는 내용은 후속 방법과 방식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으니 하루라도 빨리 보자 밖에 없다"며 "작년 9월부터 줄곧 만나서 협상을 해왔는데 이제 와서 무슨 공문 타령이냐"고 반문했다.
이처럼 상대방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핑퐁게임'을 하는 가운데 양사의 M&A 작업은 여전히 '난기류'에 빠져 있다.
최종구 이스타항공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지금 회사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제주항공의 인수뿐"이라고 호소했다.
당초 최 대표는 "이스타홀딩스가 결단했으니 이제는 제주항공이 답할 차례다. 빨리 협상장에 나오거나 인수를 할지 말지 확실하게 밝힐 것을 촉구한다"라고 강하게 입장을 밝히려다 혹시라도 M&A가 깨질 것을 우려해 "금명간 인수에 대한 확실한 의사 표명을 해주길 간곡하게 요청한다"로 '톤다운'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을 인수한 이후 1천700억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달 29일 국회 국토위 전체회의에서 "M&A가 종결돼야 정책금융 지원이 될 것"이라며 "체불 임금 문제가 해결돼야 M&A가 종결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것들이 종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책 금융이 지원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양사는 이스타항공 직원들의 생사가 달린 체불 임금 해결은 고사하고 M&A 성사를 위한 선결 조건 이행을 놓고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타이이스타젯 지급 보증 문제 외에도 선행 조건이 몇 개 더 있다"며 "세부 내용은 계약상 비밀 유지 의무 때문에 밝힐 수 없지만, 이 선행 조건들을 해결해달라고 6월 중순에 공문을 보냈지만 아직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반면 이스타항공은 타이이스타젯 지급 보증 문제와 해외 결합심사 승인 외에 선결 조건은 사실상 없다는 입장이다.
이스타항공 관계자는 "인수가 마무리될 때까지 노사분규가 있으면 안 된다와 같은 조항이 더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사소한 내용"이라며 "노사분규도 궁극적으로 따지면 셧다운과 구조조정을 유발한 제주항공에 책임이 있기 때문에 결국 협상으로 풀어야 할 문제"라고 주장했다.
3월부터 이어진 셧다운과 인력 조정에 대한 책임 소재에 대해서도 양측의 입장차는 크다.
이런 가운데 노노 갈등도 확산하며 이스타항공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지난달 29일 기자회견에서도 근로자 대표가 "이스타홀딩스의 경영권 포기와 지분 헌납이라는 통 큰 결정에 감사하다"며 "조종사노조도 회사를 살리는 노력을 함께 해달라"고 입장문을 낭독하자 기자회견을 지켜보던 조종사노조 측에서는 "부끄러운 줄 알아라"며 고성과 욕설을 내뱉기도 했다.
이스타항공은 지난 3월 말 직원 1천600여명이 각각의 부문에서 투표를 통해 선출한 근로자 대표단 5명이 사측과 협의를 진행해왔다. 현재 강경 투쟁을 이어가는 조종사노조에는 220여명이 속해 있다.
앞서 근로자 대표단은 "대다수 직원은 (조종사 노조 집행부와 달리) 당장의 강경한 투쟁보다 정상적이고 빠른 인수 성사로 인한 안정적인 미래를 원한다"며 선 긋기에 나서기도 했다.
반면 조종사노조는 이 의원의 책임을 끝까지 묻기 위해 계속 투쟁을 할 방침이다.
노조는 이번주 내로 이상직 의원과 이 의원의 딸인 이수지 이스타홀딩스 대표를 업무상 배임과 횡령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할 예정이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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