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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 인도네시아의의 ‘킹덤 시즌2’ 리뷰 기사 /사진=CNN 인도네시아 홈페이지 캡처 |
[우리가 몰랐던 아시아-58] 처음 인도네시아 생활을 시작했던 2013년 12월 무렵의 일이다. 인도네시아 제3의 도시 반둥에서 머무르던 아파트 맞은편에 위치한 대형 슈퍼마켓을 방문했을 때였다. 주말을 맞아 생필품과 먹거리를 고르고 있던 필자 곁으로 직원들이 다가왔다. 20살쯤으로 짐작되는 남자 직원 1명과 여자 직원 3명은 'film(영화)' 'mirakel(기적)' 등 현지어를 꺼내면서 함께 사진을 찍자고 부탁했다. "무슨 일이지? 아마 한국 영화 얘기를 하는 것 같은데". 갑작스러운 제안에 머뭇거리는 필자에게 남자 직원이 스마트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여줬다. 그러면서 필자가 사진 속 인물이 맞는지 기대에 가득 찬 표정으로 물었다. 스마트폰 속의 주인공은 바로 배우 류승룡 씨였다. 직원들은 필자가 2013년 초에 개봉했던 영화 '7번방의 선물(Miracle in Cell No. 7)'의 주연 배우인 류승룡 씨인 줄 알았던 것이다. 영화 속 주인공을 만났다고 펄쩍 뛰는 직원들을 실망시키고 싶지는 않았지만,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Maaf. Saya bukan orang ini(미안하지만 저는 이 사람이 아니에요)"를 되풀이하며 진실(?)을 털어놨다. 4명 모두, 특히 유난히 류승룡 씨를 좋아했던 남자 직원의 얼굴에 진한 아쉬움이 스쳐갔다. 하지만 필자 역시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같이 사진을 촬영한 뒤 유쾌하게 작별 인사를 나눴다.
6년이 훌쩍 지난 에피소드를 새삼 언급한 것은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드라마 한류 얘기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최근 '사랑의 불시착' '이태원 클라쓰' '하이바이, 마마!' 등 K드라마가 태국과 베트남, 필리핀 등 아세안 대부분 국가들에서 상종가를 달리며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오죽하면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불륜 연기를 선보였던 배우 한소희 씨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게시물에 인도네시아 팬들이 댓글 세례를 퍼부었을 정도이다. 아세안 젊은 세대가 한국형 좀비 드라마의 전성 시대를 가져왔다는 찬사가 쏟아진 '킹덤 시즌2'에 열광하는 사이 현지 언론에서는 K드라마의 성공 요인을 다각도로 분석한 기사들을 잇달아 내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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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전자상거래업체 토코피디아의 브랜드 홍보 대사인 방탄소년단의 자카르타 옥외 광고물 |
사실 아세안에서 드라마를 포함한 한국 대중문화가 인기몰이를 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TV에서는 이미 몇 년 전에 막을 내린 한국 드라마가 반복해 방영됐고, 친구들 혹은 연인끼리 카페 등에 자리를 잡고 한국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박장대소하는 광경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필자 또한 인도네시아 젊은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배우 이민호 씨와 송중기 씨 등의 굿즈를 구해 달라는 요청을 일일이 기억하기 어려울 만큼 많이 받았다. K팝을 대표하는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과 영화 '기생충'은 문화 한류 열풍을 힘껏 부채질했다. 유튜브 등에 방탄소년단의 뮤직비디오를 감상한 모습이 생생하게 담긴 젊은 층의 리액션 영상이 넘쳐나는 한편, 기생충의 2020 아카데미 시상식 4관왕 수상 쾌거는 한류에 큰 관심이 없던 현지인들에게까지 한국 문화 콘텐츠의 위상을 드높였다.
올해 상반기 아세안 사회를 강타한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는 역설적으로 K드라마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 전 세계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외부 활동이 제약되고 '언택트(Untact·비대면)' 소비가 증가하면서 K드라마를 시청하는 아세안 인구가 빠르게 늘어난 덕분이다. 여기에는 역내 인터넷 환경이 개선되고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의 보급이 확산되면서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의 접근성이 대폭 향상된 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넷플릭스와 같은 플랫폼을 통해 매력적인 캐릭터와 수준 높은 완성도를 갖춘 K드라마를 실시간으로 접함으로써 아세안 시청자들이 한국 프로그램에 즉각적으로 열광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는 분석이다. 이를 증명하듯 한국 작품들은 코로나19가 위세를 떨친 올해 3~4월 넷플릭스의 동남아시아 인기 톱10 콘텐츠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 제작에 더욱 속도를 내겠다는 방침을 밝힌 가운데, 탄력을 받은 아세안 드라마 한류가 어디까지 뻗어 나갈지 흥미진진해진다.
[방정환 YTeams 파트너/'왜 세계는 인도네시아에 주목하는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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