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19 (목)

이슈 존 볼턴 회고록 파장

靑, 볼턴 회고록 정면 반박…논란만 확대 재생산될 뿐…南·北·美 정세엔 실익 없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청와대, '볼턴 회고록' 정부 차원 공식 입장 아닌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입장문 형태 빌려 대응 / 한미 외교당국 간 공론화할 사안 아니라는 판단 우선 담긴 듯

세계일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시절 트럼프 대통령을 응실하는 존 볼턴(오른쪽). 트위터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청와대가 22일 존 볼턴 전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의 회고록과 관련해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의 입장을 중심으로 밝힌 것은 사안을 정교하게 분리·대응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볼턴 전 보좌관이 현재 백악관을 떠나 일반인 신분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청와대 차원의 공식 대응이 부적절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카운터파트였던 정 실장을 통한 개별적 대응이 더 나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 실장은 이날 오전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이 춘추관 브리핑에서 대독한 입장문을 통해 볼턴 전 보좌관의 회고록에 관해 "한국과 미국 그리고 북한 정상들 간의 협의 내용과 관련한 상황을 자신의 관점에서 본 것을 밝힌 것"이라며 "정확한 사실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 상당 부분 사실을 크게 왜곡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 간 상호 신뢰에 기초해 협의한 내용을 일방적으로 공개한 것은 외교의 기본 원칙을 위반한 것으로, 향후 협상의 신의를 매우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며 "미국 정부가 이러한 위험한 사례를 방지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기대한다"고 전했다.

또 "이러한 부적절 행위는 앞으로 한미 동맹 관계에서 공동의 전략을 유지 발전시키고 양국의 안보 이익을 강화하는 노력을 심각하게 저해할 수 있다"고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볼턴 전 보좌관 회고록에 대한 정 실장의 이러한 입장은 전날인 21일 미국 백악관 NSC측에 별도로 전달했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볼턴 전 보좌관이 회고록에서 서술한 내용이 실체적 진실과는 차이가 있으며, 주관이 개입돼 있어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있다는 게 정 실장이 밝힌 입장의 요지다. 한때 자신과 함께 한미 NSC 간 소통을 담당했던 볼턴 전 보좌관이 미국은 물론, 한국을 향해 무분별한 폭로전을 벌이는 행태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정부 차원의 공식 입장이 아닌 정 실장의 입장문 형태를 빌려 대응한 것은 한미 외교당국 간 공론화할 사안이 아니라는 판단이 우선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뿐만 아니라 백악관 역시 회고록으로 인해 곤욕을 치르고 있는 상황에서 볼턴 전 보좌관의 주장에 정면 반박할 경우 논란만 확대 재생산될 뿐, 남북미를 둘러싼 한반도 정세 변화에 아무런 실익이 없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볼턴 전 보좌관이 정 실장 본인이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사실관계와는 다른 얘기를 주장하면서, 논란의 중심으로 끌어들이자 개인적 차원의 대응을 결심한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자칫 무대응으로 일관할 경우 회고록에서 주장한 내용이 기정사실로 굳어질 것을 우려해 카운트파트였던 정 실장 개인적 차원의 대응이 여러모로 격에 맞다는 판단에 따라 입장 표명의 주체와 메시지 톤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정 실장은 회고록에 표현된 각종 주장에 관한 신뢰성 평가를, 청와대는 정 실장의 입장 위에서 볼턴 전 보좌관의 부적절한 행위만을 지적하는 식의 역할 분담을 일종의 방침으로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윤 수석이 이날 회고록과 관련한 정 실장의 입장과 별개로 청와대의 입장을 낸 것은 이러한 맥락 위에서 풀이된다.

윤 수석은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한미 정상 간의 진솔하고 건설적인 협의 내용을 자신의 편견과 선입견을 바탕으로 왜곡한 것은 기본을 갖추지 못한 부적절한 행태"라고만 했다.

이와 같은 청와대의 절제된 분리·대응 기조는 한미 외교당국 간 긴밀한 공조에 필요한 신뢰 회복을 위해 기본적인 문제는 제기하되, 사실관계 여부를 일일이 따지는 '진실게임' 양상으로 끌고 가는 것이 양측 모두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정상간 대화 또는 외교 관계에 있어서 협의 과정을 밝히지 않는 것이 기본"이라면서 "하나하나 사실관계를 다투는 것조차 부적절한 것으로 판단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회고록으로 인한) 일종의 허위 사실과 관련된 부분은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니 미국에서 판단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회고록 자체가 미국에서 출간된 것인 만큼, 사실관계에 따른 책임 소명의 과정도 미국 내 법적 테두리 안에서 이뤄질 것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뒤집어 말해 청와대가 굳이 나서서 민감한 외교 상황을 적극적으로 해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볼턴 전 보좌관은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The room where it happened)'에서 2018년 4·27 판문점 제1차 남북 정상회담과 6·12 싱가포르 제1차 북미 정상회담의 성사 과정, 지난해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의 2차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 과정을 비교적 상세히 전달하고 있다.

오사카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에 이은 청와대에서의 한미 정상회담,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함께했던 역사적인 6·30 판문점 남북미 3자 정상회동 과정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특히 볼턴 전 보좌관은 미국은 판문점 3자 회동과 관련해 기본적으로 동의하지 않았고,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비무장지대(DMZ)에 동행하는 것도 반대했다고 주장했다.

또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단둘이 만나고 싶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거부 의사와 김 위원장이 함께 만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의견 전달에도 동행 의사를 굽히지 않았고, "판문점 인근 오울렌 초소까지 가서 결정하자"는 제안으로 관철했다고 볼턴 전 보좌관은 주장했다.

이외에도 문 대통령은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따른 상응조치 일환으로 미국이 종전선언 카드를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고 회고록에 적었다. 또 "김 위원장이 북측 핫라인 전화기가 있는 곳에 간 적이 없다고 고백했다"고 주장했다.

문 대통령의 한반도 비핵화 구상을 '조현병 환자 같은 생각(Schizophrenic idea)'이라는 원색적인 표현으로 비난하기도 했으며, 1차 북미 정상회담이 김 위원장의 제안이 아닌 정의용 안보실장의 아이디어로 성사됐다는 내용을 정 실장의 발언을 직접 인용해 소개하기도 했다.

이 가운데 청와대는 볼턴 전 보좌관이 판문점 남북미 3자 회동에 관해 서술한 부분을 사실 왜곡의 대표적 사례로 평가하고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작년 판문점 회동 당시 상황을 화면을 통해, 보도를 통해 살펴보면 볼턴 전 보좌관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는 저희가 말씀드리지 않아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 자리에 배석했던 볼턴 보좌관은 공동기자회견 직후 두 정상이 판문점으로 향할 때 몽골로 이동 중이었다.

볼턴 전 보좌관은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다바슈렌 몽골 금융위원장과 함께 찍은 사진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올리면서 판문점 3자 회동 일정을 소화하지 않았다는 점을 스스로 입증한 셈이다.

그런데도 마치 끝까지 판문점 3자 회동 일정을 소화한 듯이, 문 대통령이 세 차례나 트럼프 대통령의 거절에도 동행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는 식으로 묘사했던 볼턴 전 보좌관의 회고록 내용을 신뢰할 수 없다고 청와대는 보고 있다. 정 실장이 "사실을 크게 왜곡하고 있다"고 반박 입장을 낸 것도 이러한 판단 위에서 이뤄진 것으로 풀이된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