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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시선집중] 공익법인 투명성·공정성 검증이 기부문화의 활성화로 이어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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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정형석 밀알복지재단 상임대표

중앙일보

정형석밀알복지재단 상임대표


1983년부터 장애인 전문 비영리 자선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내가 몸담은 밀알복지재단은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통합을 목표로, 장애인 관련 생애주기별 지원사업과 장애인 관련 복지시설을 주로 운영하고 있다. 발달장애인 특수학교인 밀알학교, 장애인 직업재활 시설인 굿윌스토어, 사회적경제사업인 기빙플러스 등이 대표적이다. 지속 가능한 국제개발협력사업도 14개국에서 실천하고 있다.

38년간 일을 하면서 느낀 보람은 우리의 도움으로 장애인들이 밝고 긍정적 모습으로 변화되고, 이런 모습을 보고 부모님들이 위로받고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최근 들어 기관이 성장해 더 큰 일을 감당할 수 있게 되고, 그 일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킬 때도 큰 보람을 느낀다.

애환도 적지 않았다. 활동 초기에는 월급이 너무 적어서 경제적으로 매우 힘들었다. 조금씩 인식이 개선되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이 시민단체나 자선단체에서 일하는 사람은 무료봉사나 교통비, 활동비만 받고 일하길 원하는 것 같다. 물론 기부금으로 일해야 하니 월급을 많이 받을 수 없고 검소한 생활을 해야 한다. 하지만 평생직장으로 사회복지 전문성을 키워나가려면 일정 수준의 급여는 당연하다는 인식이 확대됐으면 좋겠다.

일과 관련해서는 모금이 가장 힘들었다. 사람들을 만나 모금 요청을 하는데 대부분 거절 당했고, 그럴 때마다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다. 비영리법인은 운영구조가 복잡하기 때문에 인간관계도 힘든 부분이다.

최근 비영리 자선단체의 투명성이 사회이슈로 떠올랐다. 이는 대상자 최우선과 대상자 최대 이익의 원칙 즉, 설립목적의 진정성을 지켜야 하는데 그것을 지키지 못해 발생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비영리 자선단체 사업은 대부분 후원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투명하게 관리하고 후원자의 뜻에 맞게 기부금을 진정성 있게 사용해야 한다. 원칙이 흔들리면 후원자의 신뢰를 잃게 된다.

우리 기관도 많은 후원을 받아보았지만, 거액의 후원금은 신뢰가 없으면 받을 수 없다. 평생 모은 재산이나 유산을 기부할 때 자선단체의 평판이 중요한 것 같다. 임의단체였던 우리 기관이 법인을 설립할 때 어떤 분이 평생 모은 재산을 기부해 주셨는데, 주변 사람들을 통해 우리 기관에 대한 신뢰도를 검증했다.

밀알학교를 건축할 때도 한 교회가 자신들의 예배당을 건축하는 대신에 땅을 사주고 건축비도 기부했는데 우리 법인의 이사장을 신뢰해 그렇게 결정했다고 들었다. 최근에 장애 자녀를 둔 아버지가 재산 기부 의사를 밝혀 만났더니, 장애 자녀가 밀알에서 일하는 동안 가까이서 지켜보니 믿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어 자녀 몫의 재산과 유산을 기부할 결심을 했다고 했다. 대신에 자신이 죽은 다음에 부모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요즘 들어 단체의 투명성 검증 방법에 대한 문의가 많은데, 회계자료를 얼마나 상세하게 공개하느냐를 보는 게 좋다. 홈페이지와 소식지, 연간보고서 등의 채널을 통해 모든 회계 내역을 공시하는지, 내부감사 및 회계법인의 외부감사를 통해 검증받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매년 국세청 데이터를 기반으로 국내 공익법인의 책무성 및 투명성과 재무안정성을 평가하는 한국가이드스타 자료도 도움이 된다.

다만 아쉬운 점은 정부에 비영리 자선단체를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별도 조직이 없다는 거다. 전문가로 구성된 조직을 통해 공익법인 운영에 대한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합리적으로 관리·감독하면 좋겠다. 이렇게 되면 공익법인의 투명성 및 공정성 검증 강화로 비영리 자선단체의 신뢰가 높아지고, 기부문화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주무관청과 단체 모두에게 업무진행의 합리성 및 효율성 면에서 좋을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많은 사람이 어렵고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런 시기에 고통이 더욱 커지는 사람이 장애인·독거노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다. 약자들을 지원하는 자선단체의 역할이 더욱 중요한 시기인 만큼 더 큰 관심과 사랑으로 지지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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