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백악관 근무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일정에 배석한 모습. 워싱턴=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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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화제를 대선으로 돌리더니 넌지시 중국의 경제력을 치켜세우며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암시했다. 그러더니 시진핑(習近平)에게 ‘내가 반드시 승리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번엔 ‘차이나 스캔들’에 휘말렸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농산물 추가수입으로 농민 표심 잡기를 도와달라는 등 재선에 도움을 요청했다는 폭로가 나오면서다. 홍콩 문제를 포함한 대중 정책 전반의 초점이 재선 유불리에 맞춰졌다는 비난이 보태졌다. 특히나 폭로 주체가 한 때 최측근이었던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다. 2016년 대선 당시 러시아 유착 의혹 이상의 파장이 예상되는 이유다.
‘그것이 일어난 방: 백악관 회고록’ 출간을 두고 백악관과 마찰을 빚고 있는 볼턴 전 보좌관은 1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스캔들을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그는 ‘트럼프 중국 정책의 스캔들’이라는 제목의 저서 발췌록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대중 정책이 “정치적 이해에 따라 갈팡질팡했다”고 비판하며 “민주당이 우크라이나 문제에만 국한하지 않고 시간을 갖고 대외정책 전반을 체계적으로 조사했다면 탄핵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발췌록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당시 시 주석에게 “민주당은 중국에 대해 큰 적의를 갖고 있다”고 주장한 뒤 “내가 선거에서 이기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농부들의 지지가 중요함을 강조하며 중국의 대두ㆍ밀 수입이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볼턴 전 보좌관은 “정부의 사전검열 때문에 트럼프의 정확한 언급을 싣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이 미국산 농산물 추가수입 의사를 밝히자 “당신은 300년래 가장 위대한 중국 지도자”라고 치켜세웠다가 몇 분 뒤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라고 수위를 더 높였다고 한다. 볼턴 전 보좌관은 “트럼프의 마음 속에 자신의 정치적 이익과 미국의 국익이 섞여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라며 “나는 백악관 재임 시절 트럼프의 중요한 결정들 가운데 재선을 위한 계산과 무관한 게 하나라도 있는지를 찾는 데 애를 먹었다”고 꼬집었다.
볼턴 전 보좌관은 또 2018년 12월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트럼프는 농업지역 표만 의식해 시 주석에게 농산물 구매 확대만 요구했다”면서 “그렇게 합의됐다면 미국의 모든 (대중) 관세는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에서 앞으로 6년간 함께 일하고 싶다는 시 주석의 ‘립서비스’에 “사람들이 나를 위해 헌법의 2연임 제한 폐지를 얘기한다”고 우쭐해했다고 한다. 볼턴 전 보좌관은 “시진핑은 트럼프를 띄우는 과장된 말을 하면서도 준비된 원고를 읽었지만, 트럼프는 주변 누구도 무슨 말을 할 지 모르는 상태에서 즉흥적으로 대응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와 ZTE를 다룰 때도 정책 이슈가 아닌 개인적 이익을 취하는 기회로 삼았다고 볼턴 전 보좌관은 주장했다. 또 지난해 6월 홍콩 민주화시위 때는 “우리도 인권문제를 갖고 있다”며 개입을 거부했고, 오사카 G20 정상회의 만찬 때는 시 주석이 중국의 수용소 설치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하자 이를 그대로 수용했다고 한다.
볼턴 전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중국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데 대해 “그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지 지켜볼 일”이라며 “트럼프 정부는 중국의 홍콩 탄압이 대가를 치를 것이라면서도 실질적인 조치는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8일 오전 트위터에서 “끔찍한 평을 받은 볼턴의 책은 순전히 허구”라고 일축했다. 볼턴의 신간을 두고 미 법무부가 출간 금지 소송을 제기한 터라 정치적 공방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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