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G 특허 3000건 넘는 선두 화웨이, 입맛대로 표준 만들 우려 탓
‘특허 무기화’ 않겠다던 화웨이 "제재하면 미국은 특허사용료 내야" 목소리도
SA 보고서 "화웨이 제재로 美 반도체 업계 리더십 흔들리고 70억불 손실 예측"
미국 기업들이 중국 통신장비·스마트폰 업체 화웨이가 주도하고 있는 5G(5세대) 이동통신 표준 제정 작업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미국 정부가 화웨이와의 거래제한 조치는 강행 의지를 보이고 있는 반면 5G 표준 제정에서만큼은 기업들이 참여할 길을 터준 것이다. 화웨이를 빼고는 5G 표준을 만들기 힘든 현실을 미국도 인정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화웨이가 이런 역량을 무기화해 미국 제재에 보복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15일(현지 시각) 미국 기업들이 화웨이와 5G 기술 표준을 만드는 데 참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 기업들이 5G 중요 기술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좌우하는 규격·규칙인 표준 제정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의미가 크다고 업계는 해석하고 있다.
미국은 자국 기업들이 화웨이와 함께 5G 표준을 만들어나갈 수 있게 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
미국은 지난해 5월 화웨이를 수출 규제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자국 또는 미국 기술을 사용하는 해외 업체가 화웨이에 제품을 수출하는 것을 막았다. 기업들이 화웨이와 거래하기 위해서는 정부 허가가 필요했다. 그러나 이런 제재는 미국 기업들이 화웨이가 주도하고 있는 5G 표준기구에 참여해도 되는지에 대한 혼란을 야기했다.
미국 상무부는 규정 수정을 자국 기업들이 표준 설정 기구에서 화웨이와 협력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윌버 로스 미 상무부 장관은 성명에서 "미국은 글로벌 혁신에서 리더십을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번 규정 수정안은 미국의 독창성이 우리 경제·국가 안보를 발전시키고 보호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한 결과물"이라고 강조했다.
◇ 5G 표준이 뭐길래…美 한발 물러섰나
현재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무선 인터넷(와이파이)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데는 산업체들이 이에 대한 기술 표준을 마련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표준은 기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 다른 디바이스(기기)나 시스템이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핵심 기제다. 현재 LTE(4세대 이동통신)의 경우 미국·유럽 기술회사들이 표준 제정을 주도해 왔지만, 5G로 알려진 차세대 모바일 인터넷 기술에서는 누가 전면에 나서게 될지가 아직 불분명한 상황이다.
중국은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자국 내 표준뿐 아니라 국제적인 기준마저 좌지우지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 핵심에는 통신표준 설정 기구에 참여하고 있는 화웨이가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화웨이를 제재하는 가장 큰 이유가 자율주행차, 인공지능(AI) 등 미래 기술의 핵심 인프라인 5G에 대한 패권을 잡지 못하게 하는 데 있는 만큼 기술 표준을 만드는 데 미국기업이 불이익을 받게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5G 관련 특허를 가장 많이 보유한 화웨이가 이 특허를 활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표준 설정을 주도할 경우 향후 화웨이가 쓸 수 있는 ‘보복 카드’가 될 수 있어 이같이 전략적으로 결정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래픽=박길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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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시장조사업체 아이플리틱스(IPlytics)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5G 표준특허 건수는 화웨이가 3325건(특허선언 기준)을 기록해 전 세계 1위에 올라 있다. 특허선언은 표준특허와 관련된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표준화 기구에 신고하는 절차를 말한다. 특허 선언만으로 표준필수특허의 법적 근거를 갖췄다고 볼 수는 없지만, 기업들의 시장 잠재력을 파악하는 데 용이하다고 아이플리틱스는 설명했다.
◇5G 표준 선점 화웨이의 카드... "화웨이 제재 미국 반도체업계 70억불 손실"
지난달 화웨이가 개최한 ‘글로벌 애널리스트 서밋 2020’에서 회사 측은 5G 관련 특허를 갖고 있지만, 과도한 비용을 받지 않을 것이고 특허를 무기화하지도 않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러나 케빈 리우 화웨이 서유럽 홍보담당 사장은 최근 트위터를 통해 "전 세계 5G 기술 특허의 80%는 6개 회사가 나눠갖고 있고, 화웨이는 그 중 선두주자"라며 "화웨이 제재로 결국 미국 기업들은 우리에게 특허사용료를 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가 화웨이 제재로 미국 반도체 업계가 70억달러에 달하는 사업 손실을 입을 것이라는 보고서를 16일 내놓을 만큼 화웨이 제재가 미국 기업에 미칠 비용증가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SA는 전세계 5G 표준을 정립하는 3GPP(국제민간표준화기구)의 핵심 회원인 화웨이가 장비를 제공할 수 없으면 5G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는 이동통신사들이 구축 계획에 차질을 입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미국 반도체 업계의 리더십도 위협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에 공세를 이어왔던 미국이 표준 제정에 자국 기업들을 참여시키고, 이번 주중 하와이에서 미·중 관리들이 만난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양국 갈등이 완화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기술굴기를 꺾겠다는 미국의 의지가 분명해 보이고, 기업들의 대응이 유예 기간 중 이뤄지고 있어 화웨이에 반도체 공급을 막는 제재는 예정대로 시행될 가능성이 크지 않겠냐고 전망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화웨이가 9월 제재 본격화에 앞서 반도체 물량을 최대한 확보하고 있다는 점, 화웨이에 반도체를 위탁생산해주는 대만 TSMC가 회사 측으로부터 신규 주문을 받지 않고있다는 점 등에 미루어볼 때 제재가 없던 일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장우정 기자(wo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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