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피랍에 '군부정권 불법 그림자' 떠올려…유엔도 진상규명 촉구
플로이드 사건과 달리 침묵하는 유명인사에 "위선적이다" 비판도
태국 반정부 인사 완찰레암 삿삭식(오른쪽) 납치에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 차량 |
(방콕=연합뉴스) 김남권 특파원 = 미국에서 백인 경찰의 가혹한 폭력에 희생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숨을 거두기 전 내뱉었던 "숨 쉴 수 없다"는 말은 전 세계적으로 인종차별 반대라는 거대한 파도를 일으켰다.
경우는 다르지만 최근 태국 내에서도 이 말이 회자하고 있다.
최근 태국의 한 반정부 활동가가 "숨 쉴 수 없다"는 말을 끝으로 납치돼 행방이 묘연하기 때문이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지난 5일 태국에서 반정부 활동을 해오던 완찰레암 삿삭싯(37)이 도피 중이던 캄보디아에서 납치됐다고 발표했다.
완찰레암은 아파트 앞 인도를 걸어가다가 무장 괴한들에 의해 검은색 차량에 태워진 채 사라졌다.
당시 완찰레암과 통화 중이었던 동료는 통화가 끊어지기 전 그가 "숨을 쉴 수 없다"고 비명을 지르는 걸 들었다고 한다.
태국 반정부 활동가 완찰레암 납치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집회 참석자들. 2020.6.5 |
사흘 뒤에는 방콕 주재 캄보디아 대사관의 벽에 완찰레암의 포스터를 붙인 뒤 '숨 쉴 수 없다'(I Can't Breathe)라고 적으며 권력에 의한 강제적 실종(Enforced Disappearance)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현지 언론은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도 완찰레암 가족의 요청을 받아들여 유엔 강제실종 위원회 명의로 캄보디아 정부에 사건에 대한 긴급 조사를 촉구했다고 전했다.
태국 반정부 활동가가 마지막 남긴 말 "숨 쉴 수 없다"(I can't breathe) |
태국에서는 현 쁘라윳 짠오차 총리가 주도한 2014년 쿠데타 이후 많은 반정부 활동가들이 체포를 피해 이웃한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등으로 도피했다.
그러자 태국은 끈질기게 신병 인도를 요청했다. 인권 단체에 따르면 이처럼 쫓고 쫓기는 과정에서 반정부 인사 중 최소 8명이 행방불명 됐고, 이 중 일부는 사망한 채 발견됐다.
라오스 도피 생활 중 납치된 후 시신으로 발견된 태국 반정부 인사 |
플로이드 사건이 전 세계를 휩쓸 때 태국 내 적지 않은 유명 인사들이 SNS를 통해 미국 공권력의 인권 침해를 비판하는 데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태국인이 다른 나라에서 대낮에 납치된 인권 유린 사건에 대한 이들의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네티즌들은 지적한다.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인 영화배우 쁘라야 룬드버그 |
영화배우 겸 모델로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수 백만명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있는 쁘라야는 로힝야 난민 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UNHCR의 특성을 고려할 때 입장을 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네티즌들의 지적에 SNS를 통해 "매우 정치적인 사안"이라며 피해갔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그러자 네티즌들은 그가 플로이드 사건에는 목소리를 냈다며 '위선적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물론 몇몇 유명인사들은 쁘라야와 달리 '용기'를 냈다.
온라인 매체 카오솟에 따르면 2017년 미스 유니버스 태국 대표였던 마리아 푼럿랍 에렌은 SNS에 "뭐라 말할 만큼 이 사건을 충분히 알지는 못하지만, 태국 국민과 함께 대답을 원한다"고 말했다.
유명 걸그룹 BNK48 멤버인 파이도 "누구도 다른 의견을 가졌다는 이유로 죽을 만한 이는 없다"고 적었다.
파이의 페이스북 글에 대해 한 네티즌은 "인간 생명의 가치를 알아보는 누군가가 자신의 명성을 이용해 그걸 지지하는 모습에 가슴이 벅차오른다"고 평가했다.
그만큼 태국 유명인들이 정부를 비판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는 목소리를 내는 일이 흔하지 않다는 점을 방증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 반정부 활동가가 남긴 '숨 쉴 수 없다'는 외침이 태국 사회에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지켜볼 대목이다.
납치된 완찰레암의 생사 확인을 촉구하는 벽화(왼쪽) 하루도 안지나 지워진 모습. |
sout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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