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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0 (일)

이슈 주목 받는 아세안

`그랩` vs `고젝`, 아세안 슈퍼앱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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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출근 시간 자카르타 북쪽 기차역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그랩과 고젝 기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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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아시아-57] 2020년 상반기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은 여러모로 뒤숭숭한 모양새다. 대부분 국가들에서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세는 주춤해졌지만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에는 여전히 매일 수백 명씩 신규 확진자가 보고되면서 우려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일용직 노동자와 가사 도우미 등 비공식 경제 부문을 필두로 실업 대란이 현실화한 가운데 대다수 회원국들이 잇따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내려 잡을 만큼 당분간 전망도 밝지 않다. 먹구름이 드리우기는 스타트업계도 예외가 아니다. 아세안을 디지털 사회로 전환시키는 원동력으로 주목받아왔지만, 급변하는 비즈니스 환경에서 너나 할 것 없이 사업 축소 또는 구조조정 등에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전례 없는 위기 상황에서도 남다른 눈길을 끄는 스타트업들이 있다. 바로 아세안 스타트업계를 대표하는 데카콘(Decacorn·기업 가치가 100억달러를 넘는 비상장 스타트업) '그랩(Grab)'과 '고젝(Go-Jek)'이 그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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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바섬 중부에 위치한 족자카르타 국립박물관에 마련된 그랩 승하차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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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나 휴가, 출장 등 목적으로 아세안을 방문한 경험이 있다면 직간접으로 그랩과 고젝을 마주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랩 혹은 고젝의 헬멧과 재킷을 착용하고 손님을 태우거나 주문 음식을 배달하는 오토바이 기사들을 아세안의 거리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랩과 고젝은 아세안의 11개 유니콘(Unicorn·기업 가치가 10억달러를 넘는 비상장 스타트업) 중 2개뿐인 데카콘이다. 나란히 기업 가치 1·2위를 달릴 정도로 아세안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자랑한다. 그랩은 2012년 말레이시아에서 처음 설립된 후 싱가포르로 본사를 옮겼고, 고젝은 2010년 창업 이래 안방인 인도네시아에 주력해 왔다. 그랩과 고젝은 세계 최대 모빌리티 스타트업인 미국 우버가 원조 격인 앱(애플리케이션) 기반 차량 호출 서비스를 출시하며 덩치를 키우기 시작했다. 이후 음식 배달과 택배, 티케팅, 전자 결제, 동영상 콘텐츠 등 다방면으로 비즈니스 영역을 넓히면서 아세안의 모바일 생활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다.

두 슈퍼앱이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켠 2015~2016년 이후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이들을 지켜봐 온 필자로서는 그 발전상에 여러 번 깊은 인상을 받았다. 편리함과 저렴함을 앞세워 기존 대중 교통 체계의 빈틈을 파고든 차량 호출 서비스는 도시 지역 젊은 층의 호응을 이끌어 내며 급속하게 사용자 수를 늘려갔다. 이후 현지 특수성을 반영한 결제 시스템이 도입돼 성장을 가속화한 한편 규모의 경제를 추구할 수 있는 새로운 기능들도 속속 앱에 추가됐다. 일부 시행 착오를 겪으면서도 그랩과 고젝은 몰려드는 대내외 투자를 등에 업고 공격적인 행보를 지속했다. 그 결과 그랩은 2018년 초에 우버의 동남아 사업 부문을 인수하면서 글로벌 스타트업계를 놀라게 했다. 경쟁에서 밀려 문을 닫는 기존 택시업체들이 속출한 인도네시아에서는 고젝 창업자가 교육문화부 장관으로 입각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아세안 사정에 정통한 벤처캐피털업체 관계자들은 "그랩과 고젝은 전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데카콘으로 도약했다"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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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바섬 중부에 위치한 족자카르타 유명 식당에 마련된 고젝 승하차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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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태국 등을 포함한 아세안 8개 나라 500여 개 도시에 진출한 그랩은 동남아 차량 호출 서비스 시장을 60% 이상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아세안 5개국에 발을 들여 놓은 고젝은 역내 최대인 인도네시아 시장 1위 자리를 놓고 그랩과 치열한 각축을 펼치고 있다. 조사기관마다 수치가 다소 엇갈리지만 대체로 오토바이 호출 서비스 부문에서는 고젝이, 차량 호출 서비스 부문에서는 그랩이 앞선 것으로 집계된다. 그랩은 올해 2월 말 미쓰비시 금융그룹 등에서 1조원가량 투자를 유치했다. 이에 질세라 고젝도 이달 초 페이스북과 페이팔에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는 데 성공했다. 사실 지난해 하반기 무렵 고개를 든 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심각성을 더한 아세안 스타트업계 수익성 이슈에서 자유롭지 못하기는 그랩과 고젝 역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쏟아진 일본과 실리콘밸리 거물들의 러브콜(?)은 두 스타트업을 향한 기대감의 수준이 얼마나 높은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랩과 고젝의 슈퍼앱 전쟁이 코로나19 정국을 지나면서 어떻게 전개될지 계속 지켜볼 일이다.

[방정환 YTeams 파트너/'왜 세계는 인도네시아에 주목하는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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