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3대 국회의원 이후 행정가로 변신…첫 민선 ·광역시장 지내
송철호 민선 7기 시정 위해 정치·행정 원로로 나서 다양한 고견 전하기도
송철호 민선 7기 시정 위해 정치·행정 원로로 나서 다양한 고견 전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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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시 승격 20주년 '성년 울산' 특별전 |
(울산=연합뉴스) 장영은 허광무 기자 = 울산을 광역시로 승격시키고 초대 시장으로 재직했던 심완구 전 시장이 8일 별세했다. 향년 82세.
1938년 울산에서 태어난 심 전 시장은 부산고와 성균관대를 졸업했다.
1972년 신민당 총재 보좌역 등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정치를 시작했고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다.
김영삼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민주화 세력의 한 축으로서 11대 국회의원에 도전했지만 낙선했다.
이어 1985년 12대 총선에서 울산 울주에서 민한당 후보로 출마해 당시 YS계 좌장 최형우 전 의원을 누르고 당선됐다.
국회에서는 노동특위 등에서 현장을 뛰는 성실한 의원으로 활동했고, 1988년 울산 남구에서 민주당 후보로 제13대 국회의원 재선에 성공했다.
13대 의원 시절 마창노련의 노동운동 관련, 야당 진상조사위원으로 창원에서 현지 조사 활동 중 노동자를 구타하는 경찰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총경급 경찰 뺨을 때렸다는 뉴스로 주목받기도 했다.
YS 집권 후 3선에 실패한 그는 한국전력 경영 고문으로 일하다 1995년 울산시 첫 민선 자치단체장 선거에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면서 행정가로 탈바꿈했다.
민선 첫 울산시장인 심 전 시장은 1997년 기초자치단체인 울산시가 경남도에서 분리돼 7월 15일 울산광역시로 승격되면서 첫 울산광역시장이 되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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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자료사진] |
이듬해 시장 재선에도 성공했다.
그는 시장 재임 시절 '작은 거인'이라는 별명으로 특유의 성실성과 추진력 등으로 울산광역시 승격을 이끌고 열악한 울산 도시기반 시설을 확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개최할 수 있는 경기장을 유치하고 신항만 개발사업에도 착수하는 등 굵직한 울산 현안을 해결하는 데 앞장섰다.
현재 100만 울산시민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는 도심 속 최대 생태공원인 울산대공원도 조성했다.
심 전 시장은 시장 재선 후인 1998년 11월 무릎육종암(살코마)을 앓아 미국에서 수술을 받기도 했다.
이후 2001년 폐암으로 전이되면서 미국으로 다시 치료받으러 가기 전까지 공사 중인 월드컵 경기장을 찾는 등 시정에대한 열정은 공직사회에 남다른 기억으로 남아있다.
심 전 시장은 3선 출마 포기를 한 뒤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했다.
그는 당시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처남인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이 구속되는 등 정치적 어려움이 닥쳐오자 "울산시 발전을 위해 여당행을 택했다"고 했다.
심 전 시장은 1998년 토지구획정리사업 인가 결정 등과 관련해 평창종합건설로부터 청탁과 함께 3억원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로 2002년 검찰에 구속기소 되는 운명을 맞기도 했다.
2004년 11월 대법원에서 징역 5년에 추징금 3억원을 확정받았고, 이후 2007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 4주년 특별사면됐다.
심 전 시장은 지난해까지 송철호 현 민선 7기 시장이 이끄는 시정에 고견을 전하는 등 지역 정치와 행정계 원로로 활동해왔다.
yo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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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시 승격 20주년 '성년 울산' 특별전2017년 7월 울산시청에서 광역시 승격 20주년을 맞아 성년 울산 특별기록전이 열리고 있다. 심완구(왼쪽에서 두번째) 전 울산시장과 성주향(맨 왼쪽) 부부상담소장이 해설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http://static.news.zumst.com/images/3/2020/06/08/PYH2017071331260005700_P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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