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현지시간) 벨기에 앤트워프에 있는 레오폴드 2세 동상이 붉은색 페인트로 뒤덮였다. 앤드워프|EPA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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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이 유럽인들에게 ‘인종차별’ 역사를 돌아보게 하고 있다. 전 세계에 인종차별의 씨앗을 뿌린 ‘식민주의’ 원죄에서 유럽 또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플로이드 사망 항의 시위가 확산되면서 문화 저변에 깔려있는 ‘인종주의’를 뿌리뽑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이 보도했다. 아프리카에 식민지를 건설한 왕의 동상은 훼손됐고, 각종 축제에서 노예제를 연상시키는 흑인 캐릭터를 바꾸자는 운동도 일고 있다.
5일 벨기에 곳곳에서 ‘건국의 왕’으로 알려진 레오폴드 2세 동상이 잇따라 훼손된 채 발견됐다. 앤드워프에서는 레오폴드 2세의 흉상이 붉은 페인트로 뒤덮였다. 플로이드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인 “숨을 쉴 수 없다”라는 메시지가 쓰인 천으로 덮인 동상도 발견됐다. 벨기에 두 번째 왕인 레오폴드 2세는 벨기에의 정치·경제·외교적 발전을 이끌었다는 평을 받아왔지만 중부 아프리카에 ‘콩고 자유국’을 세워 원주민을 노예화한 인물이기도 하다. 고무 채취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주민들의 신체를 절단하는 만행도 서슴지 않았는데, 콩고 원주민 1000만명 이상이 학살당했다. 동상 철거 온라인 청원을 제기한 사라 반 흐네흐튼은 “플로이드 사망을 계기로 역사를 바로잡자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면서 “레오폴드 2세는 ‘학살자’일 뿐”라고 미 공영라디오 NPR에 말했다.
각종 축제의 ‘흑인 분장’ 캐릭터도 비판에 휩싸였다. 네덜란드에서는 산타클로스 조수 캐릭터인 ‘즈바르트피트(검은피트)’가 도마에 올랐다. ‘백인’주인을 수발하는 ‘흑인’노예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는 평소 즈바르트피트는 인종차별적 캐릭터가 아니라며 관련 행사들을 지원해왔다. 하지만 플로이드 사망 항의 시위가 확산되자 지난 4일 지원방침을 철회했다. 네덜란드 또한 17~18세기 아프리카에서 원주민을 잡아 미국에 노예로 팔았다. 뤼터 총리는 “플로이드 사망으로 촉발된 항의 물결은 미국에 국한되는 현상이 아니다. 네덜란드, 그리고 전 유럽에 자리잡은 차별에 관한 목소리”라면서 즈바르트피트 캐릭터를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국민에 당부했다.
즈바르트피트(왼쪽) 캐릭터와 ‘동방박사의 날’을 기념하는 블랙페이스 분장 |위키피디아·유튜브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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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서는 ‘동방박사의 날’을 기념하는 ‘블랙페이스’ 전통이 도마에 올랐다. 예수 탄생 뒤 베들레헴으로 찾아간 3명의 동방박사가 흑인이었다며 검은 얼굴 분장을 하는 것인데, 지난해 1월에도 십대 학생 수백명이 블랙페이스 분장을 해 ‘흑인 비하’ 논란에 휩싸였다. 플로이드 사망 항의 시위에 동참한 스페인 페미니스트 단체 ‘아프로페미나스(Afrofeminas)’는 “공립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블랙페이스’분장을 강요한다”면서 “아프리카계 학생들에 심한 모욕감을 주는 전통을 철폐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식민지를 개척한 이들의 이름을 본딴 거리명을 바꿔야한다는 움직임도 거세다. 독일 베를린에서는 최근 ‘모렌슈트라세(무어 거리)’에서 플로이드 사망 항의 시위가 열렸는데, 거리 이름을 바꿔야한다는 주장도 함께 제기됐다. 흑인을 비하하는 용어인 ‘무어’를 본따 이름붙여진 이 거리는 아프리카 식민지를 개척한 프로이센 군주를 기리기 위해 1707년 만들어졌다. 영국에서도 미 버지니아주에서 흑인 노예를 착취해 담배산업을 일으킨 앤드류 뷰캐넌의 이름을 딴 ‘뷰캐넌거리’의 이름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고 WSJ는 전했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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