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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미국 흑인 사망

돈도 집도 법도…흑인 편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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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플로이드 사건’ 시위 확산…배경엔 수십년 교묘한 차별

[경향신문]



경향신문

시위대가 쓴 트럼프 향한 욕설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나와 ‘대통령의 교회’로 불리는 세인트 존스 교회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길목에 위치한 라파예트 공원의 담벼락에는 인종차별 항의 시위대가 써놓은 낙서가 가득하다. 워싱턴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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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경찰 데릭 쇼빈의 가혹행위로 인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망에 항의하는 시위가 1일(현지시간) 미국 전역에서 일주일째 이어지고 있다. 평화적으로 시작한 시위는 방화, 약탈 등으로 격화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대를 “인간 쓰레기” “폭도”라고 폄하했지만 시위 확산 이면에는 미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미국 내에선 수십년간 교묘하게 진화해온 미국의 ‘제도적 인종차별’이 플로이드 사건을 계기로 폭발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브루킹스연구소는 지난달 28일 홈페이지에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플로이드의 사망은 단순히 치안의 실패뿐 아니라 부와 주택소유 간 격차를 줄이려는 경제정책의 실패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시위에 나선 흑인들은 입을 모아 “더 큰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소득은 백인의 절반도 안 되고
거주지는 공간적 분리 ‘게토화’
한때는 같은 죄도 더 엄한 처벌
시위 나선 사람들 “큰 변화를”

무엇보다 백인과 흑인의 광범위한 소득불평등은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플로이드가 숨진 미니애폴리스에서 흑인가구 중위소득은 3만8200달러로 백인가구 8만5000달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심지어 코로나19 감염과 사망률도 인종별로 달랐다. ‘법률 및 생물학 저널’에 최근 게재된 논문에 따르면 시카고에서는 흑인 비율이 29%로 나타났으나 코로나19에 따른 흑인 사망자는 인종이 확인되는 범위에서만 따져도 70%나 됐다고 미 인터넷 매체 복스가 1일 전했다. 미시간주 한 카운티에서는 전체 인구 중 흑인 비율이 12%였으나 코로나19 감염자 중 흑인 비율은 46%에 달했다.

흑인 등 소수인종들의 거주지는 백인 중산층과 공간적으로도 분리돼 ‘게토화’됐다. 소수인종과 가난한 사람들은 미국에서 상대적으로 오염된 환경에 살거나 일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2004년 환경운동연합이 발간한 ‘미국의 환경정의운동’ 보고서를 보면 휴스턴, 댈러스, 로스앤젤레스(LA) 등에서 흑인 인구가 많은 지역에 유해폐기물 매립장이 들어섰다.

사법제도도 차별적이었다.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시작한 ‘마약과의 전쟁’은 흑인에게 불리했다. 값이 비싸 백인들이 더 많이 이용하는 ‘분말 코카인’은 500g까지 소지해도 되지만, 값이 싸 흑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크랙 코카인’은 5g만 소지해도 5년형을 선고하는 식이었다. 이러한 형량 불균형은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10년 ‘공정형량법’이 제정되면서 완화됐다.

흑인은 불심검문도 더 자주 받는다. 뉴욕시 브루클린 검찰청에 따르면 지난 3월17일부터 지난달 4일까지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 위반으로 체포된 인원 40명 중 87.5%인 35명은 흑인이었다. 주택대출 등에서도 교묘한 차별이 이뤄졌다. 대부업체들이 저소득층과 소수인종 거주지역의 주택담보대출엔 상대적으로 고금리를 적용하고 있다. 현재 뉴욕에서 흑인의 32%만이 집을 갖고 있는데, 이는 백인의 절반도 안 되는 수치다.

상황들을 종합하면 이번 시위는 일과성이 아니다. 백인 경찰의 로드니 킹 폭행사건으로 촉발된 1992년 LA 폭동, 2012년 플로리다주 샌퍼드에서 백인 자경단원 조지 짐머만이 17세 흑인 소년을 사살한 사건 등 인종차별에 대한 항의 시위는 반복돼왔다.

■시위 140여개 도시로 확산…LA 한인타운엔 장갑차 배치되기도

이번 시위에 등장한 “숨을 쉴 수가 없다(I can’t breathe)”는 구호도 처음이 아니었다. 2014년 12월 흑인 노점상 에릭 가너가 뉴욕에서 경찰에 목 졸려 숨지기 전에 남긴 말도 똑같았다.

결국 켜켜이 쌓인 불평등과 인종차별의 제도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이 같은 비극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사설에서 “미국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인 생명권조차 지켜주지 못하는 나라”라고 비판했다.

플로이드가 사망한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지난달 26일 처음 시작된 시위는 이날 전국 140곳 이상의 도시로 확산했다. 뉴욕 브루클린에서는 시위대 수천명이 행진했다. 애틀랜타 CNN 본사 앞에서도 시위대가 “정의 없이는 평화도 없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벌어진 시위 도중 경찰이 약탈 용의자의 목을 무릎으로 눌러 진압하는 순간이 담긴 영상이 온라인으로 확산되면서 ‘과잉진압’ 논란도 번졌다. 필라델피아에서도 수백명이 고속도로에서 경찰과 대치했으며, 일리노이주 시카고 교외의 시위 현장에선 참가자 60명이 연행되고 행인 2명이 총에 맞아 숨졌다. LA 한인타운에서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장갑차가 들어오기도 했다. 이날까지 적어도 5600명이 체포되고, 최소 5명이 사망했다고 AP통신이 밝혔다.

세계 각지 주민들이 미국 시위대에 동조하며 인종차별을 규탄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이날 전했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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