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은 1일 저녁 트럼프 대통령과 15분간 통화를 하며 "초청에 기꺼이 응할 것이며 방역과 경제 양면에서 한국이 할 수 있는 역할을 다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에 대해 이틀만에 화답하고 나선 것은 코로나19 사태로 급변하는 세계 정세 속에서 우리가 G7회의에 참여할 경우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글로벌 영향력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G7은 1977년 시작된 미국과 독일·프랑스·영국·이탈리아·캐나다·일본 등 선진 7개국 회의다. 1998년 러시아도 포함시켜 G8이 됐지만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점령으로 참가 자격을 박탈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자유진영 모임인 G7에 한국 등 4개국의 참가를 요청한 것은 자신이 주도하는 글로벌 반중연대 전선을 최대한 넓히려는 의중이 깔려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초청 대상으로 거론한 한국·호주·인도는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전략의 주요 축으로 삼으려는 국가들이라는 점에서 백악관의 '중국 봉쇄' 의도가 다분하다는 해석이 많다.
문 대통령이 이같은 중국 견제 구상에 동참한다는 부담에도 불구하고 G7회의 초청에 응한 것은 K방역 성과를 바탕으로 경제위기 대응 및 전 세계의 코로나 대응을 선도해 한국 위상을 강화하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이 무역, 코로나19 감염, 홍콩 국가보안법 등을 놓고 격돌하는 상황에서 G7회의 참여는 그동안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온 한국 외교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중국 입장에선 한국이 엄정 중립을 지키지 않고 미국 편에 서는 것으로 간주해 경제보복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G7을 G11회의로 확대하길 바라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의 일방주의 정책은 G7 동맹의 균열을 더욱 부추길 것"이라고 발끈하고 있다.
더구나 G7 회의가 미국 뉴욕에서 유엔총회가 열리는 9월쯤 열릴 경우 올해 하반기로 미뤄진 시진핑 주석의 방한 시기와 겹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G7 회의에선 반중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시 주석의 국빈방문은 환영해야 하는 곤혹스런 처지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미중 패권다툼에 샌드위치 신세인 우리로선 지금처럼 양국 눈치만 보면서 아슬아슬한 줄타기 외교를 계속 할 수만도 없다.
미국의 주요 동맹우방국들이 군사력, 자본, 기술, 통화 패권 등에서 우세한 미국과 공동전선을 펴는 마당에 우리만 전략적 모호성을 내세워 중국에 저자세로 일관해선 신냉전의 파고를 헤쳐나가기 어렵다.
우리 정부는 국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사태 초기 감염병 근원지인 중국인 입국금지를 회피하는가 하면, 우리 국민들도 구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굴렀던 위생용 마스크를 중국에 대량 지원해줬다.
또 최근 주한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장비 반입 및 교체 과정에서 사전에 중국에 양해를 구하고 설명까지 했다.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크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위해 중국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한 상황에서 정부가 나름 중국에 대해 최대한의 성의와 노력을 보인 셈이다.
이번 G7 회의에서도 우리 정부는 일방적으로 치달을 수 있는 반중 수위를 조절하는 완충제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이번 G7 참여를 놓고 중국이 한국에 대해 4년 전 사드 사태처럼 무차별적인 경제 보복이나 지나친 간섭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 정부도 피할 수 없는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는 국익과 가치를 전략적 판단의 최우선 기준으로 삼아 결단을 내려야 한다.
최병일 이화여대 교수의 지적처럼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기존 패러다임에 안주하면 심각한 도전과 위협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이제부터라도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핵심 이익과 당면 이익을 구분하고, 우리가 끝까지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냉철하게 곱씹어야 한다.
우리 국민들이 그동안 피와 땀으로 지켜낸 국가안보와 자유, 시장경제, 인권이 가장 중요한 판단의 잣대가 돼야 한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박정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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