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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이슈 김학의 '성접대' 의혹

[서초동 결정적장면]법망 피해간 윤중천 성범죄…`언제`가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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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고위층에 '별장 성접대'하고 직접 성폭행도

윤중천, 1심 이어 항소심에서도 성범죄 처벌 불가

1심은 檢 수사 지적…항소심선 "안타깝다" 표명도

성범죄법 변화·檢 안일한 수사에 법망 빠져나가

[이데일리 남궁민관 기자] “기록에 나타난 자료와 항소심에서 증인신문을 통해 피해 여성이 매우 고통스러운 마음의 상처를 갖고 있다는 것에 공감하고 있다. 다만 사실인정과 법리 판단이 공소제기된 범행에 국한될 수 밖에 없어, 결과적으로 이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데 판결이 도움이 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29일 서울 서초동 한 법정 안에 서울고법 형사합의5부 재판장 오석준 부장판사의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호화 별장에서 사회 고위층에게 성 접대를 했다는, 정말 영화 같은 범죄를 저질렀다는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건설업자 윤중천씨의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그에 대한 판결문을 읽으면서다.

앞선 1심에서 윤씨는 각종 사기 등 개인비리로 징역 5년 6월의 중형을 선고받았지만, 성 접대는 물론 본인이 직접 성폭행을 한 혐의와 관련해서는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항소심에서는 성폭행 혐의와 관련 처벌을 받을 수 있는지 여부가 단연 쟁점으로 꼽혔던 터.

다만 항소심 역시 1심의 판단을 달리하지 못했다. 피해 여성에게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면서도 처벌을 내리지 못한 윤씨의 항소심 선고가 이번 주 서초동 결정적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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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 운동가들이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윤중천씨의 성범죄 혐의에 대한 항소심 판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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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례에 걸친 檢 수사…골든 타임은 흘러갔다

이른바 ‘별장 성접대’로 불린 이 사건은 지난 2006년 9월부터 이듬해 11월 13일 사이 강원도 원주 별장에서 벌어졌다. 당시 윤씨는 피해 여성 A씨에게 폭력과 협박을 행사해 사회 고위층에 대한 성 접대를 강요했고, 직접 세 차례에 걸쳐 성폭행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6년 뒤인 2013년 3월 한 언론 보도를 통해 해당 사건의 의혹이 불거졌다. 곧바로 경찰은 수사팀을 꾸려 내사에 착수하면서 법의 심판이 내려지는듯 했다. 하지만 그해 11월 검찰은 성폭행 혐의와 관련 윤씨에 대해 불기소 처분했다. 2014년 피해 여성인 A씨는 윤씨를 다시 한번 고소했지만, 검찰은 마찬가지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대로 묻히는가 했던 사건은 국민들의 끝없는 의문 제기 끝에 다시 수사선상에 오를 수 있었다.

2018년 4월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는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에 해당 사건을 다시 조사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조사단은 지난해 4월 윤씨 등에 대한 강제수사를 본격화했고, 같은 해 6월 4일 윤씨를 구속기소, 결국 그를 법정에 세웠다.

다만 문제는 그 사이 그가 적절한 처벌을 받을 수 있었던 ‘골든타임’은 흘러갔다는 점이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1월 선고공판에서 “검찰은 이미 2013년 수사를 했는데 성접대 및 뇌물공여는 판단하지 않고 고소된 성폭력만 판단한 다음 대부분 불기소 처분하고 5년이 지난 현재에 이르러 성접대 뇌물을 적용해 기소했다”며 “검찰이 2013년 적절히 공소권 행사를 했다면 그 무렵 윤씨가 적정한 혐의로 법정에 섰을 것”이라고 검찰 수사의 문제를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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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자 윤중천씨.(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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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가 중요했던 사건…법망 피해간 성범죄

검찰을 질타한 1심 재판부에 이어 재판장이 피해 여성에 안타까움을 표한 항소심 재판부까지 결국 윤씨에게 성폭행 혐의에 대한 처벌은 물론 실체 관계 파악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은 결국 ‘시간 문제’였다.

특히 범행부터 항소심 선고까지 이어지는 타임라인 속 곳곳에는 다소 안일했던 성범죄 처벌 법안의 변천사가 담겨 있어 씁쓸함을 더하는 모양새다.

윤씨에게 특수강간 또는 강간 혐의를 적용할 경우 법리상 아예 처벌이 불가능하다.

먼저 강간 혐의의 경우 범행이 벌어진 당시 친고죄로 규정돼 있어 처벌이 불가능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당시 친고죄였는데 1년 이내 고소를 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부적법한 공소제기”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성폭력 범죄 중 친고죄의 고소기간을 ‘형사소송법에도 불구하고 범인을 알게 된 날부터 1년으로 한다’고 정하고 있다. 2013년 6월 19일 성폭력 범죄의 친고죄는 전면 폐지됐고, 해당 규정 역시 삭제됐다.

당시에도 친고죄가 아니었던 특수강간의 경우 공소시효가 발목을 잡는다. 2007년 12월 21일 형사소송법이 개정되면서 특수강간의 공소시효는 10년에서 15년으로 늘었지만, 이는 법 개정 이후 발생한 범죄에만 적용토록 했다. 윤씨의 범행이 벌어진 것은 법 개정 직전인 2007년 11월 13일까지로 공소시효는 10년에 불과, 공소제기된 지난해 6월 4일에는 이미 공소시효가 지나버린 것.

강간치상 혐의 적용이 유일한 카드였다. 강간치상의 경우 당시 친고죄도 아닐뿐더러 공소시효도 15년이기 때문이다. 피해 여성 역시 세차례에 걸친 성폭행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는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에 근거했다.

하지만 길고 긴 시간이 흐른 뒤 가까스로 열린 재판에서 성폭행에 따른 피해를 증명해 내기는 쉽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은 범행에 폭행·협박이 수반됐는지, 피해 여성이 심리적 항거불능 상태였는지, 또 현재 겪고 있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그 범행 때문이지에 대해 법정 제출자료만으로는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며 “또 범행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인과관계 역시 증명되지 않아 강간으로 인한 상해는 무죄”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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