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 민주화운동 40주년
한국 정부 요청, 美 5.18 비밀문서 첫 일반 공개…전두환 사령관 인물평·최규하 청와대 상황 담겨
정부, 진실규명 위해 미국 정부에 기록물 지속 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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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철영 기자] 5·18 광주 민주화 운동 40주년을 앞두고 1980년 5월 전후의 상황을 보여주는 미국 국무부 문서가 추가 공개됐다. 1996년 3000쪽이 넘는 문서가 공개됐지만 일부 내용이 삭제돼있었는데 미국은 이번에 나머지 부분을 모두 공개한 사본을 지난 11일(현지시간) 한국 정부에 전달했다. 총 43건, 140쪽 분량이다.
외교부 등 관계부처와 전문가들의 1차 검토를 거쳐 15일 공개된 미 국무부 문서에는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신군부가 실권을 잡은 12·12 사태 이후 미국 정부의 도움을 요청한 정황과 광주 시민들의 중재 요청에 미국 정부가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낸 대목이 처음으로 공식 확인됐다.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가 1979년 12월부터 1980년 12월 사이 미 정부에 보낸 전문(telegram)이다.
다만 당시 발포 명령을 내려 수많은 광주 시민들을 죽거나 다치게 한 5월의 상황을 보다 구체적으로 뒷받침하는 내용은 포함되지 않아 진실규명에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12·12사태 직후 전두환 만난 주한 美대사, "全, 군부 장악 위한 미국 정부 도움 요청"
이번 외교문서를 통해 새롭게 확인된 내용 가운데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12·12 사태 이후 글라이스틴 대사를 만나 군부 장악을 위해 미국 정부에 도움을 요청한 사실이 확인됐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전두환 사령관과 추종자들이 주도한 12·12사태 직후 로버트 브루스터 CIA 한국지부장 주선으로 전두환 사령관을 만났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당초 전두환과 만남이 쿠데타를 인정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면서 꺼렸으나 정세가 급변하고 있음을 감지하고 면담에 나섰다. 그는 전두환 사령관의 인상과 나눈 대화를 전문에 담아 본국에 보고했다.
전두환 사령관은 글라이스틴 대사와 만난 자리에서 사심 없이 12·12 사태를 일으켰다고 밝혔다. 그는 "나는 개인적으로 야심이 없다. 이번 일은 쿠데타도, 혁명도 아니다"라면서 "박정희 대통령 암살 사건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규하 대통령의 정치 자유화 프로그램( liberalization program)을 지지하며 한달내로 군부도 재건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미 12·12 사태를 쿠데타로 규정한 글라이스틴 대사는 면담 직후 완전히 다른 평가를 외교문서에 담았다. 그는 전두환 사령관에 대해 12·12 사태를 사전에 계획했다는 점을 숨기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었다고 서술하면서 자기 중심적 야망이 큰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커졌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매우 방어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언급하면서 '매우 길고 상세하며 의심할 여지 없이 자기중심적(self-serving)인 설명을 했다'는 주관적 평가도 넣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특히 미 정부에 전두환 사령관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을 추종하는 군 내부 반대 세력을 매우 경계하고 있다"면서 급진적인 젊은 장교 집단을 의미하는 'young turk officers'가 "반대세력을 저지하기 위해 우리의 도움을 바란다"고 전했다. 이어 "미국이 몇 주 혹은 몇 달 내로 매우 어려운 선택을 해야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측 전달한 5·18 광주 민주화운동 관련 추가 외교 기밀문서(자료=외교부) |
1980년 5월…주한 미국대사관, 광주 시민의 중재요청 거절
최광수 대통령 비서실장, 사실상 군부가 정부 장악 판단…"최규하 대통령, 계엄령에 대해 할 말 없을 것"
계엄령 확대·강화되고 계엄군이 전남도청에 진입을 시도하기 직전 광주 시민들은 미국 정부에 중재를 요청했으나 거절 당했다. 이 사실은 기록물과 연구를 통해 알려져 있지만 이번에 공개된 문서에서 당시 주한 미국대사관과 미국 정부의 당시 상황 인식을 알 수 있는 대목이 나왔다.
1980년 5월 26일 글라이스틴 대사가 본국에 보낸 전문에는, 당시 뉴욕타임즈 한 기자가 광주 학생 지도부터 글라이스틴 대사가 중재에 나서도록 도와달라는 요청을 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글러이스틴 대사는 "대사로서 지금과 같은 혼란스러운(messy) 상황에서 중재역할을 한다면 대사관을 한 쪽 또는 다른 쪽 그리고 양쪽으로부터 끌려다니게(hostage) 할 수 있다"고 적었다. 주한 미국대사관이 광주 시민의 요청을 거절한 배경이 문서로 확인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당시 청와대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내용도 이번에 처음으로 확인됐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1980년 5월17일 계엄령이 확대되기 전 상황을 인지하고 최 실장을 만나 사태를 원만하게 해결해야하는 데 지나치게 강경하게 하고 있다면서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을 했다. 이에 최 실장은 최규하 정부가 사실상 신군부의 눈치를 보고 있고 시민사회의 요구와 재야의 요구, 대학생들의 요구를 받아 개헌 프로그램을 마련하려고 했으나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모든 권력이 이미 전두환 사령관이 이끄는 신군부로 넘어갔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전문을 통해 "대통령이 계엄령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지 최 실장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면서 "정부가 대학생들에게 유화책을 쓰는 것을 군부가 강하게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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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성 계엄사령관 "광주 시위자들을 통제하지 않으면 베트남과 유사한 방식으로 공산화" 주장
아울러 글라이스틴 대사가 당시 이희성 육군 참모총장(계염사령관)을 만난 이후 정세 분석을 보낸 전문도 모두 공개됐다. 1980년 5월18일 글라이스틴 대사는 이희성 사령관과 전두환의 관계, 한국 내 정세가 비극적 상황으로 흘러갈 수 밖에 없는 배경 등을 미 국무부에 전달했다.
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시점을 사전에 공유하지 않았다는 불만으로 시작한 글라이스틴 대사와 이희성 사령관의 만남을 담은 외교 문서에서, 이희성 사령관이 광주 시위자들의 공산주의 사상에 우려를 나타내면서 이를 통제하지 않으면 베트남과 유사한 방식으로 공산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 사령관은 "학생들 사이에 공산 사상과 급진 성향이 급격하게 확산하고 있어 불가피했다"면서 "40명의 군 장성이 모여 의논을 했고 (최규하) 대통령은 이해했다"고 강조했다.
광주 시민에게 발포를 명령한 책임자를 확인할 수 있는 내용 등 핵심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지만 추가 진실규명을 위해 정부는 앞으로 더 많은 관련 기록물 공개를 미국 정부에 요청할 계획이다. 미 국무부의 문서 이외에 국방부 문서가 진실규명에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미국이 이번에 기록물을 공개할 때 한미동맹 정신, 협력과 우호의 정신에 따라서 공개한 것이라고 밝혔다”면서 “그런 면에서 이번 미국의 행보는 의미가 있고, 나아가 진상규명위 정부 단체가 만들어진 만큼 정부는 더 협력을 해서 추가적으로 관련 문서를 공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미국측 전달한 5·18 광주 민주화운동 관련 추가 외교 기밀문서(자료=외교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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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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