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2월~1980년 12월 미 국무부 문서…삭제된 내용 모두 포함
한국 정부가 공식 요청해 받은 첫 사례…발포 책임자 확인할 '스모킹 건'은 없어
정부, 추가 문서 공개 노력 지속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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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철영 기자]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앞두고 정부가 미국이 지난 11일 우리측에 건넨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기밀 해제 문서를 일반에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는 정부가 미국 정부에 공식 요청에 전달 받은 첫 기록물로 총 43건 140페이지 분량이다.
1979년 12월부터 1980년 12월까지 주한 미국대사관과 미 국무부가 생산한 이번 기록물에는 1979년 12·12 사태 이후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가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을 만난 이후 인물평을 포함해, 계엄령 직전 최광수 청와대 비서실장을 만나 사태의 원만한 해결을 촉구했다는 내용 등이 담겨있다.
15일 외교부 등에 따르면 이번에 한국에 전달된 주한 미국대사관과 미 국무부가 생산한 기록물은 모두 이날 오후 4시 ‘5·18 광주민주화운동기록관’ 홈페이지에 공개됐다. 미국측은 이번에 과거 삭제했던 내용이 모두 포함된 기록물을 우리측에 전달했다.
기록물에는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을 향해 발포 명령을 내린 책임자를 확인할 수 있는 핵심 내용 등은 포함돼 있지 않지만 급변하는 국내 정세를 둘러싼 주한 미국대사관과 미 국무부의 판단과 행보가 드러나 있다. 외교부는 이번 기록물이 정부가 미국에 공식 요청해 받은 첫 문서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이전까지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해외 기록물은 모두 연구자, 기자 등이 민간 차원에서 확보한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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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공개된 기록물에는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가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면담한 이후 보고 내용이 새로 확인됐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로버트 브루스터 CIA 한국지부장 주선으로 12·12 사태 직후인 12월14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만났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당초 전두환과 만남이 쿠데타를 인정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면서 꺼렸으나 14일 만났고, 만남 결과를 그날 저녁 미 국무부에 보고했다. 1996년 처음으로 문서가 공개됐을 때 관련 내용은 대부분 삭제돼있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미 국무부에 보낸 전문에 전 사령관을 정권 야욕이 있는 인물로 묘사했다. 그는 특히 젊은 장교가 정치적 야심이 있지만 드러내지 않고 있지만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당 내용은 1999년 글라스틴 대사가 회고록에서 밝힌 바 있지만 공식 문서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글라이스틴 대사가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신군부를 변혁을 원하는 젊은 장교(집단)을 의미하는 'young turk'로 표현하며 미국의 도움을 원한다는 부분도 담겼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전 사령관에 대해 "의심의 여지 없이 자기중심적인 설명을 했다"고 보고하는 한편 "(전 사령관이) 쿠데타는 물론 혁명도 아니며 온전히 박정희 대통령 시해와 관련한 수사를 하려고 한다고 주장했다"고 서술했다. 이 자리에서 전 사령관은 "사사로움이 없고 최규하 대통령의 자유화 프로그램( liberalization program)을 지지하며 한달내로 군부도 재건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글라이스틴 대사는 전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몇 달 내에 어떤 매우 어려운 선택(some extremely tricky choices)을 해야하는 상황에 직면할지 모른다고 내다봤다.
이어 당시 최광수 청와대 비서실장을 만나 나눈 대화도 미 국무부 문서로 처음 확인됐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1980년 5월17일 계엄령이 확대되기 전 상황을 인지하고 최 실장을 만나 사태를 원만하게 해결해야하는 데 지나치게 강경하게 하고 있다면서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을 했다. 이에 최 실장은 최규하 정부가 사실상 신군부의 눈치를 보고 있고 시민사회의 요구와 재야의 요구, 대학생들의 요구를 받아 개헌 프로그램을 마련하려고 했으나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모든 권력이 이미 신군부로 넘어갔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아울러 글라이스틴 대사가 당시 이희성 육군 참모총장(계엄사령관)을 만난 이후 정세 분석을 보낸 전문도 모두 공개됐다. 1980년 5월18일 글라이스틴 대사는 이희성 사령관과 전두환의 관계, 한국 내 정세가 비극적 상황으로 흘러갈 수 밖에 없는 배경 등을 미 국무부에 전달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특히 이희성 사령관이 광주 시위자들의 공산주의 사상에 우려를 나타내면서 이를 통제하지 않으면 베트남과 유사한 방식으로 공산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고 서술했다.
시민에게 발포를 명령한 책임자를 확인할 수 있는 내용 등 핵심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지만 추가 진실규명을 위해 정부는 앞으로 관련 기록물 공개를 미국측에 요청할 계획이다. 미 국무부의 문서 이외에 국방부 문서도 진실규명에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미국이 이번에 기록물을 공개할 때 한미동맹 정신, 협력과 우호의 정신에 따라서 공개한 것이라고 밝혔다”면서 “그런 면에서 이번 미국의 행보는 의미가 있고, 나아가 진상규명위 정부 단체가 만들어진 만큼 정부는 더 협력을 해서 추가적으로 관련 문서를 공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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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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