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국무부 비밀해제로 당시 대화 공개
글라이스틴 대사 “최규하, 군부 두려워해”
군부 “한국, 베트남처럼 될 수 있다” 엄포도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일 사흘 앞둔 15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 비가 내리는 와중에서 참배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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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유오상 기자] 지난 1980년 5월 ‘5·18 광주 민주화 항쟁’ 당시 주한 미국대사였던 윌리엄 글라이스틴 전 대사가 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됐던 사건 전날 청와대를 찾아가 “사태를 원만히 해결하라”며 우려의 뜻을 전달했지만, 당시 전두환 군부가 이를 무시한 정황이 미국 측의 추가 공개 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15일 미국 국무부가 우리 정부의 요청에 따라 새로 공개한 관련 문건에 따르면 글라이스틴 대사는 5·18 항쟁이 벌어지기 전날인 지난 1980년 5월 17일 청와대를 찾아가 당시 최광수 대통령 비서실장을 면담했다.
글라이스틴 대사와 최 비서실장이 만났다는 사실은 지난 1996년 미국이 일부 문서 내용을 공개하며 함께 밝혀졌지만, 당시 대화 내용과 이를 본국에 보고한 글라이스틴 대사의 전문이 완전히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당시 만남에서 전국의 대학생들이 모이는 상황에서 휴교령 확대와 국회 해산 등의 조치는 강경하다며 사태를 원만히 해결할 것을 조언했지만, 최 비서실장은 미국 측의 우려를 이해한다고 답하면서도 ‘최규하 대통령이 조만간 더 이상의 국가 권력에 대한 저항을 용납할 수 없다는 내용의 선언을 하게 될 것’이라며 ‘조만간 사임 발표를 하게 될 수 있다’고 답했다.
당시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가 강행되고 시위대에 대한 강경 진압과 검거가 이뤄지는 상황 등을 전달받은 글라이스틴 대사는 본국에 보고하는 전문을 통해 ‘최규하 대통령은 제야인사와 대학생의 요구를 들어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군부를 굉장히 두려워하고 있다. 최규하 정부는 군부에 붙잡혀 있는 상태’라고 보고했다.
정권이 이미 전두환 군부에 넘어갔다는 내용의 보고를 한 글라이스틴 대사는 이후 수차례 이희성 당시 계엄사령관을 만나 재차 계엄군의 강경 진압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지만, 이 사령관은 ‘계엄령 확대 조치가 없었더라면 한국은 베트남처럼 됐을 것’이라고 말하는 등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혔다. 당시 글라이스틴 대사는 본국에 대화를 보고하며 ‘당황스럽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이번에 공개된 140페이지 분량의 43개 문건을 바탕으로 당시 상황에 대한 연구를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이미 대다수 내용이 공개된 상태지만, 일부 문서는 기존에 삭제됐던 내용이 모두 공개되며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다고 정부는 판단하고 있다.
osy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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