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현재 추진하는 한국판 뉴딜이 “기존의 토목사업 위주의 경기부양성 뉴딜 개념과는 확연히 구별된다”고 선을 그었다. 앞으로의 뉴딜정책이 이전처럼 공허한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복습이 필요하다. 과거 정책들은 뚜렷한 교훈을 남겼다. 경기를 살리기 위해선 단기처방을 쓸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경제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취지가 좋아도 구체적인 목표와 합리적인 재정수요 예측, 후속 조치가 따르지 않으면 소용없다. 개혁 입법과 사회보장 정책이 동반돼야 뉴딜이 완성된다는 점도 놓쳐선 안 된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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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목’으로 덧칠된 뉴딜
“뉴딜적 종합투자계획으로 경기를 활성화시키겠습니다.”
2004년 10월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어려운 경제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내수를 확대하고 성장 잠재력을 근원적으로 확충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강력한 투기 억제책으로 건설시장이 침체를 겪자 건설경기 연착륙에 대한 요구가 높아진 때였다.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회심의 카드로 내놓은 게 ‘한국판 뉴딜’이라 불린 종합투자계획이다. 정부 예산은 물론 연기금 등 민간자본을 동원해 사회간접자본(SOC)과 정보통신(IT) 부문에 쏟아붓겠다는 게 핵심 내용이었다. 학교·노인 복지시설 등 공공시설을 민간이 짓고 정부가 이를 임대해 쓰면서 민간이 투자금을 회수하게 하도록 했다. 총 10조원 규모였다.
삽을 뜨기도 전에 연기금을 동원하는 자금조달 방식을 두고 시끄러웠다. “시장개혁은커녕 재벌에 대한 온갖 특혜성 정책으로 채워져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미국 루스벨트의 뉴딜에 포함돼 있던 개혁 입법과 사회보장 정책이 빠졌기 때문이다. 종합투자계획은 단기간에 주택과 토목공사를 늘려 반짝 효과만 냈다. 거품 낀 건설업계를 조정해야 할 시기에 또다시 건설경기 활성화의 신호를 보냈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는 ‘녹색 뉴딜(녹색성장)’을 내걸었다. 2008년 8월 국가발전패러다임으로 ‘녹색성장’을 발표했고, 이듬해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녹색 뉴딜 사업’을 추진했다. 환경과 경제성장을 모두 잡겠다는 의지였다. 2012년까지 50조원을 투입해 95만6000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정책목표를 내놨다. 핵심 사업은 ‘4대강 살리기’였다. 한승수 국무총리는 4대강 사업 첫 착공식에서 “단순한 건설 공사가 아니라 경제를 살리고 균형발전을 촉진하며 환경을 복원하고 문화를 꽃피우는 한국형 뉴딜 사업”이라 말했다.
녹색 뉴딜 예산 50조원 중 4대강 정비를 포함한 토목사업에 32조원이 배정됐다. 토목공사가 주를 이루다 보니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만 많아졌다. 재생·대안 에너지 개발과 관련 산업 확대는 뒷전이었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은 지난해 <그린 뉴딜 시사점과 한국사회 적용> 보고서에서 “녹색성장 정책은 건설·토목·제품 보급 사업으로 구성되어 있어 관련 산업의 기술을 고도화하거나 산업 생태계를 형성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목표는 지속가능성에 부합했으나 실행 내용과 결과가 목표와 어긋나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형성하기보다 그 반대 결과를 가져왔다”고 평가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이명박 정권 말기인 2012년 11월 “2009~2010년 SOC 분야에 과도한 투자가 이뤄졌다”고 진단했다. 감사원이 4대강 사업의 경제성을 분석한 결과 50년간 총비용은 31조원인 반면 편익은 6조6000억원으로 나타났다. 합리적이고 정교한 설계가 수반되지 않은 결과였다.
이명박 정부는 중산층을 키우겠다는 ‘휴먼 뉴딜’도 추진했다. 사교육비·의료비·주거비를 줄여 중산층 붕괴를 막고, 서민층의 중산층 진입을 돕겠다는 밑그림은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친기업·친부자 정책기조 하에서 정치적 수사 이상의 효과를 내지 못했다. 공약이었던 기초연금 도입은커녕 기초노령연금의 축소방안을 검토했다. 의료비를 줄인다면서 의료민영화를 시도했다. 고교 다양화 정책, 일제고사 부활은 고교 서열화를 부추겼고 사교육비 부담도 그대로였다. 워킹푸어·하우스푸어 같은 각종 신조어가 이 시기에 쏟아져나왔다.
목표와 타깃 명확해야
박근혜 정부의 국정기조였던 ‘창조경제’의 원래 이름은 ‘스마트 뉴딜’이었다. 정보통신기술과 인프라를 산업 전반에 융합해 미래 먹거리와 일자리를 만들어낸다는 전략이다. 대선 캠프 내부에서 명칭에 대한 반대 의견이 나오면서 ‘창조경제’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출범 초부터 ‘창조경제가 도대체 무엇이냐’는 질문이 따라붙었고, 집권 중반기를 넘었을 때도 “여전히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왔다. 실체가 모호한 개념이 국정 전반에 이용됐다. 창조경제 사업 상당수는 기존 사업에 이름만 ‘창조’를 갖다 붙인 것이었다. ‘경제민주화’라는 간판 공약으로 집권했지만 대기업이 경제행위를 독식하는 체제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없었다.
박근혜 정부 집권 3년차인 2015년,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한국판 뉴딜’이라는 민자사업 활성화 방안을 꺼내들었다. 각종 경제정책이 좀처럼 효과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손실 위험을 떠안아 사업자의 수익을 보전해주는 방안을 도입했다. “지도에 없는 길을 가겠다”던 최 부총리 역시 건설·토목이라는 단기부양의 길을 택했다는 쓴소리가 들렸다. 이 정책 역시 변죽만 울리고 끝났다.
새로 전개될 ‘한국판 뉴딜’은 과거의 실패를 되짚어야 한다. 이미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 정책은 이전 정부의 ‘창조경제’와 차별성을 갖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구조개혁 없이 경기대응 차원으로 접근하다 보니 정책이 대기업 위주로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다.
권오인 경실련 경제정책국장은 “현 구조에서 돈을 쏟아부으면 어느 쪽으로 흘러갈 것인가를 제대로 살펴봐야 한다.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과거 정부와 차별성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 국장은 “역대 정부의 뉴딜은 구체적으로 정책이 갖고 있는 목표가 불분명했다. 전 산업 분야에 돈을 풀어 총수요를 늘린다는 건지, 취약한 중소기업에 집중한다는 건지 목표와 타기팅이 분명해야 한다”고 했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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