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5 (월)

이슈 텔레그램 n번방 사건

[법과사회] 범죄예방과 검열 사이…‘n번방 방지법’ 딜레마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n번방 방지법 중 '부가통신사업자' 관련 법안 논란

범죄예방 위한 기술 조치, 사생활 감청으로 번질 우려

[이데일리 장영락 기자] [법과사회]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존재하는 법이 때로는 갈등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법과 사회’에서는 사회적 갈등, 논쟁과 관련된 법을 다룹니다.

이번 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n번방 사태 재발방지’ 입법 가운데 하나인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됐습니다. 해당 법안은 인터넷 관련 기업이 음란물에 대한 기술적 차단 조치를 강제하는 방안 등을 담고 있어 다른 법률과 함께 ‘n번방 방지법’ 패키지를 이룹니다.

그러나 아동성착취물 관련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청소년성보호법 개정안’ 등과 달리 이 법안은 통과될 때 사생활 감청 등의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어 논란입니다.
이데일리

사진=이미지투데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성착취물 유통 범죄, 서비스 제공자에도 ‘책임’

해당 법안 핵심은 온라인을 통한 성착취물 유통이 이뤄질 경우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에게도 책임을 묻는다는 데 있습니다. 이를 위해 부가통신사업자들에게 ‘불법 촬영물이나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의 삭제나 접속차단과 같은 유통방지 조치 의무’를 부과했습니다.

조치를 하지 않을 경우 매출액의 최대 3%를 과징금으로 부과합니다. 이같은 기술 조치의무는 현행법에서는 웹하드 사업자 같은 ‘특수유형 부가통신사업자’에게만 부과됐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그 대상을 일반 ‘부가통신사업자’까지 확대해 카카오톡, 라인과 같은 메신저 사업자들 역시 기술 조치를 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는 얼핏 보면 성착취물 유통 방지를 위한 상식적 장치들로 이해됩니다. 그러나 사업자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특징을 생각하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쉽게 말해 이 법안에 따르면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 서비스에서 성착취물을 주고받는 행위가 이뤄질 경우 서비스를 제공하는 카카오 측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는 미리 이런 일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대화방 내용을 필터링해야 하는데, 이는 거칠게 보면 개인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대화 내역에 대한 감청, 감시를 의미합니다.

이데일리

대학생 페미니즘 연합동아리 ‘모두의 페미니즘‘ 관계자들이 지난달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텔레그램 N번방‘ 사건 관련 사이버성범죄 방지법 즉각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기술 난점에 사생활 감시 우려

사생활 감시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는 법안이 말하는 ‘기술 조치’의 난점 때문입니다. 사전에 성착취물을 100% 탐지해 막는 기술이 현시점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까닭입니다. 아무리 고도화된 자동 알고리즘을 적용해도 현재로서는 사람이 대화방을 직접 들여다보는 방법이 병행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루에도 수도 없이 쌓이는 온라인 메신저 대화방의 양적 규모를 감안하면 논란은 법안의 실효성 문제까지 미칩니다. 극단적으로 가정하면 이 법이 성착취물 유통 범죄를 예방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효과는 없이 법 위반 사례만 늘릴 수 있는 셈입니다.

이번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에 심사를 거쳐 국회 본회의에서 최종 의결돼야 효력을 가집니다. 따라서 논란의 조치들은 차후 추가 논의를 거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국내 거대 인터넷 기업들이 당장 해당 법안에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상황이라 국회도 이를 인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다만 20대 국회가 얼마 남지 않은 현 상황을 감안하면 소위 단계부터 심도있는 논의를 진행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극악의 법안통과율로 헌정 역사에 악명을 남기게 된 20대 국회의 시간들이, 이 시점 더더욱 아깝게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