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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5 (수)

이슈 은행권 DLS·DLF 사태

"운 나쁘면 적발"… 금감원의 DLF 제재, 금융위서도 '깜깜이'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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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내부통제 기준 미비 이유로 우리·하나銀 제재
내부통제 어떻게 해야 실효성 있는지 관련 규정 없어
"실효성 있는지 없는지 금감원 마음이라면 신뢰도 문제"

"피감기관이 (검사결과를) 납득하려면 실효성에 대한 기준을 내려줘야지, 실효성이 있고 없고 하는 것이 금감원 마음이라고 하면 신뢰의 문제가 있을 것이다."
"내부통제 구조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당국에서 조금 더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해줘야 하지 않겠냐."

지난 3월 4일 금융위원회는 정례회의를 열고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의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상품(DLF) 불완전판매 관련 금융감독원의 검사결과 조치안을 의결했다. 하나은행에는 업무 일부정지 6개월 및 과태료 167억8000만원을 부과하고, 우리은행에는 업무 일부정지 6개월 및 과태료 197억1000만원을 부과했다.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함영주 하나금융지주(086790)부회장 등 두 은행 경영진에 대한 제재도 금융위 의결을 통해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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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LF 불완전판매 관련 금융위 정례회의 의사록이 공개됐다. /조선DB



지난해 하반기 국내 금융권을 뒤흔든 DLF 사태와 관련해 금융당국의 최종 결론이 내려진 날이지만 금융위 정례회의 결과를 전하는 보도자료는 단 두 페이지에 그쳤다. 정례회의에 참석한 금융당국 관계자들도 최대한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최근 공개된 의사록을 보면 금융위 정례회의에서 금감원의 검사결과를 놓고 치열한 공방이 있었다. 쟁점은 손 회장과 함 부회장 등 은행 경영진에 대한 중징계의 근거인 내부통제 위반 여부였다. 오전 9시에 시작해 오전 11시 35분까지 두시간 반에 걸쳐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의 변호인, 검사를 진행한 금감원 관계자, 금융위 정례회의 참석자들 간에 이어진 공방을 내부통제 위반을 중심으로 정리했다.

◇"길 걸어가다 갑자기 처벌받은 격"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은 DLF 불완전판매 문제에 대해 대체로 검사 결과를 인정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내부통제기준 마련의무를 위반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강하게 반박했다. 과태료 규모만 보면 불완전판매 등으로 부과되는 과태료가 수백억원인데 비해 내부통제 위반으로 인한 과태료는 5000만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내부통제 위반 문제는 경영진의 진퇴와 직결되기 때문에 두 은행이 더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금감원은 두 은행 경영진에 대한 제재의 근거로 내부통제 위반을 들었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제24조는 "금융회사는 경영을 건전하게 하며 주주와 이해관계자 등을 보호하기 위하여 금융회사의 임직원이 직무를 수행할 때 준수해야 할 기준과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금감원은 두 은행이 DLF 불완전판매를 막기 위한 내부통제기준을 실효성 있게 마련하지 않았고 은행 영업 과정에서 내부통제기준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살피지 않은 책임을 물었다.

하지만 두 은행의 변호인은 이 조항이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하라는 의무를 부과할 뿐이고, 그것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주의감독 의무를 부과하지는 않는다고 반박했다. 하나은행 변호인은 "내부통제기준을 누가 잘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 점검하지 않는 것은 규제대상이 아니라고 판례에 나온다"며 "내부통제기준을 안 지켰다 또는 점검을 잘 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제재를 할 수는 없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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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승(왼쪽)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 /조선DB



우리은행 변호인도 "수범자가 무엇이 금지되는 행위이고 무엇이 허용되는 행위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법의 자의적 집행이라고 헌법재판소도 선언했다"며 "우리은행도 내부통제기준이 있는데, 이 기준이 실효성이 없다고 내부통제기준 마련의무를 위반했다고 하는 것은 법 위반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은행 변호인은 길을 걸어가다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갑자기 처벌받은 격이라는 비유도 들었다. 그는 "국민이 길을 걸어가다가 갑자기 처벌을 받지 않으려면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 법규가 명확해야 한다"며 "기관도 영업을 하기 위해서는 무슨 행위를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 명확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사후적으로 제재를 한다면 불안해서 영업을 할 수가 없게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 담당 국장은 소비자보호와 시장질서 유지를 위한 업무 활동에 대해 금융회사 지배구조 감독규정이 규정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내부통제라는 것은 누군가가 악용해서 소비자에게 피해가 갈 수 있는 부분을 최대한 막을 수 있게 하라는 것인데(두 은행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라며 "엄격하게 실효성 판단기준이 없으니까 과태료를 부과할 수 없다고 하는 건 한 쪽으로 치우친 의견"이라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하나은행에 대해 "현장에서 확인했을 때 불완전판매가 5~10% 나왔다면 내부통제기준을 준수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하나은행의 경우 2개 중에 1개는 법규위반이고, 3개 중에 2개는 내규위반까지 나온 상황이라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내부통제기준 실효성 따질 세칙 없다"

금융위 정례회의에 참석한 위원들은 금감원의 검사결과 조치안을 원안대로 의결하면서도 내부통제기준 마련의무 위반이라는 금감원 논리를 따져물었다. 금융위 정례회의에는 은성수 금융위원장, 손병두 금융위 부위원장, 이성호·최훈 금융위 상임위원, 윤석헌 금감원장, 윤면식 한국은행 부총재, 위성백 예금보험공사 사장, 심영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참여한다.

한 위원은 "결과를 보고 (검사를) 들어가는 식으로 하면 운이 좋은 사람은 실효성이 없는데도 넘어가고 운이 나쁘면 적발되는 것이다. 이걸 누가 납득하겠는가. 피감기관이 납득하려면 실효성의 의미를 (자세하게) 지침 정도는 마련해줘야 한다. 검사결과 실효성이 있다 없다 하는 게 금감원 마음이라고 하면 금감원의 신뢰도에도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위원도 "내부통제는 경영 전반에 걸친 것을 다 관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어느정도 합의된 기준이 꼭 필요하다"며 "단순히 감독하고 지적해주는 것이면 상관없지만 과태료가 나가고 기관에 대한 불이익 조치가 시행되는 건데 그에 대한 판단기준을 마련하는 게 행정상의 원칙"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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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정의연대와 DLF피해자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 1월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DLF 제재 관련 은행장 해임요청 진정서 제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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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도 내부통제기준 마련의무를 어떻게 지켜야 실효성이 있는지에 대해 명시된 규정이 없다고 인정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내부통제기준에 대한 부분이 세칙화돼 있지는 않다"며 다만 금감원 제재심의국에서 만든 제재 기준에 따라 내부통제기준 위반 여부도 따진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답변에 대해서도 금융위 위원들의 비판이 이어졌다. 한 위원은 "세칙화가 안 돼 있으면 수범자들은 무엇을 가지고 (위반 여부를 판단)하라는 얘기냐"고 되물었다. 금감원 내부적으로 기준을 마련해서 가지고 있더라도 그걸 지켜야 할 금융기관에 공개를 하지 않으면 법의 자의적 집행에 불과하다는 비판이다. 다른 위원은 "금감원뿐 아니라 금융위도 실효성에 대한 판단기준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 (찾아야 한다)"고 했다.

금융권에서는 정례회의 의사록을 통해 금감원의 DLF 징계 논리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금감원 징계에 불복해 소송을 진행 중인 손 회장에 유리한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내부통제기준 마련 미비를 근거로 은행 최고경영자를 중징계할 수 있는지 논란이 많았다"며 "금융위 최고의결기구인 금융위 정례회의에서도 같은 지적이 나온 만큼 금감원의 결정이 무리였다는 목소리에 힘이 더 실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종현 기자(iu@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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