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다음 달 7일 선출되는 새 원내대표 자리를 이렇게 표현했다. 슈퍼 집권여당이 된 민주당의 21대 국회 첫 원내대표인 만큼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요직이지만 자칫 일을 그르칠 경우 정치적 데미지를 피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다.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인 전해철(왼쪽부터), 김태년, 정성호 의원은 지난 27일 민주당 초선 당선인 워크숍 현장을 찾아 지지를 호소했다.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 의원은 당초 원내대표 경선 출마를 고민했지만 “책임감·부담감이 너무 막중해 나보다 더 뛰어난 분이 맡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뜻을 접었다고 한다. 실제 민주당의 차기 원내대표는 당장 21대 국회 원(院) 구성 협상과 문재인 정부 핵심 과제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이라는 막중한 과제를 안게 된다. 이번 원내대표 경선엔 김태년(21대 국회 포함 4선)·전해철(3선)·정성호(4선) 의원(이상 기호순) 등 3명이 출마해 경쟁을 벌이고 있다.
━
원내대표가 뭐길래
원내대표는 당 사무총장·정책위의장과 함께 당 3역으로 불린다. 타 원내교섭정당과의 협상, 법안 처리 등 원내 업무에 있어선 누구보다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실세 중의 실세다. 원내대표가 핵심 요직으로 자리잡은 건 2003년 당시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처음으로 원내대표라는 직함을 사용하면서다. 그 전까진 ‘원내총무’로 불리며 당 대표의 의중을 반영해 여야 협상의 실무를 담당하는 정도로 역할이 제한됐다.
지난해 말 이인영(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공직선거법 개정과 관련 의원총회를 열어 동료 의원을 설득하는 모습. [뉴스1]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원내대표의 가장 큰 힘은 ‘협상권’이다. 매주 원내대책회의를 주재해 독립적인 위치에서 당 운영과 현안 대응 등에 대한 결정을 내린다. 타 정당과의 협상 국면에선 사실상 당을 대표해 이견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같은 권한 덕분에 당 내부에선 자신의 리더십을 드러낼 수 있고 외부적으론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으며 중량감 있는 거물급 정치인으로 거듭날 기회가 주어진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해 말 미래통합당을 제외한 이른바 '4+1 협의체'를 통해 공직선거법 개정 등 패스트트랙(신속처리법안) 국면을 주도하며 당 안팎에 리더십을 각인시킨 사례가 대표적이다.
원내대표 경선은 당에 소속된 현역 의원만 투표권을 갖는다. 당 내부에서 벌어지는 ‘그들만의 리그’인 셈이다. 하지만 당을 대표하는 실세로 거듭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후보자 등록부터 선거운동, 경선에 이르기까지 전국 단위 선거만큼 치열한 경쟁이 펼쳐진다.
선수(選數)를 분류해 맞춤형 구애 작전을 펼치는 것은 물론 지도부의 마음을 얻기 위한 러브콜도 쏟아낸다. 이번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한 김태년 의원은 지난 29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낙연 당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장을 향해 “가장 영향력 있는 유권자다. 나를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
공항마중·마카롱에 "죽을지 모른다" 호소도
2009년 원내대표에 도전한 박지원 의원이 경선을 사흘 앞두고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한 모습. 박 의원은 당시 원내대표 자리를 가리키며 "앞으로 저 자리가 내 자리"라는 농담을 하며 자신감을 내비췄다. [중앙포토]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박지원 민생당 의원이 2009년 해외 출장 후 귀국하는 의원들을 공항에서 마중하는 선거 운동 끝에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승리한 사례는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박 의원은 경선을 이틀 앞둔 시점에 당시 문희상 국회부의장과 원혜영 원내대표 등 11명의 입국 현장을 찾는 ‘공항 유세’로 호평을 받았다. 경쟁자였던 김부겸 의원도 박 의원의 공항 유세 소식에 화들짝 놀라 뒤늦게 벤치마킹했을 정도였다.
2013년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로 선출된 전병헌 의원. [중앙포토]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2013년 민주당의 전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로 선출된 전병헌 전 의원은 동료 의원들의 사진과 공약을 엽서로 제작해 돌리는 전략을 썼다. 의원 개개인을 향해 관심과 성의를 드러내는 동시에 원내대표로 선출될 경우 공약 실현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약속도 남겼다. 당시 경쟁자였던 최재성 의원은 동료 의원들의 집을 일일이 방문해 지지를 호소하는 강행군을 펼쳤으나 경선에서 패배했다.
이종걸 더불어시민당 의원은 2015년 세 번째 도전 끝에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자리를 꿰찼다. 당시 이 의원은 후보자 토론회에서 “이번에 떨어지면 자살해 죽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을 강조하며 동료 의원들의 마음을 샀다.
지난해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에 나섰던 노웅래 의원은 ‘여심 공략’을 앞세웠다. 3월 14일 화이트데이에 여성 의원 21명에게 마카롱과 장미꽃을 선물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여성 의원의 경우 계파보다 인간적 정리(情理)를 중요시한다는 점을 노린 선거운동이었다.
당시 경쟁자였던 이인영 의원은 “낯가림이 있는 것 같다”는 일부의 평을 불식시키기 위해 면대면 접촉을 기본으로 한 선거운동을 펼쳤다. 지역에 머무는 의원을 만나기 위해 대여섯 시간 거리를 달려가는 한편 아침엔 죽배달에 나서는 스킨십 행보를 보이며 경선에서 승리했다.
2014년 10월 당시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세월호 유가족들의 특별법 합의안 수용을 설득하기 위해 경기 안산 세월호유가족 대책위 사무실을 방문한 현장.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원내대표 자리에 올랐으나 정치적 내상을 입고 중도 하차한 경우도 있다. 2014년 원내교섭단체 사상 첫 여성 원내대표로 선출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대표적이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의 박 원내대표는 세월호특별법과 관련한 1·2차 협상 모두 여당인 새누리당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고, 그 과정에서 세월호 가족들과의 소통 부재와 독단적 리더십 논란까지 불거졌다. 여야 갈등 끝에 세월호 특별법 협상은 최종 타결됐지만 친노·86 그룹을 중심으로 당시 박 원내대표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며 리더십이 흔들렸다. 결국 당시 박 원내대표는 취임 147일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