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철 통일부 장관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28일 국회에서 열린 외통위 전체회의에 출석, 의원들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윤동주 기자 doso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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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의 달인'이라 불리는 김연철 통일부 장관. 하지만 김 장관은 취임 이래 1년간 대북 협상 테이블에 나선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지난해 2월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로 끝나고 한반도가 다시 냉각기에 들어설 때 그는 장관직에 올랐다. 이후 남측을 향해 '소대가리', '저능아'와 같은 막말을 뱉어내면서 "남측과 마주앉을 생각은 없다"고 누차 못을 박은 것은 북한이었다. 당최 실력 발휘를 할 겨를이 없었던, 때를 잘못 만난 달인이었던 셈이다.
그런 그가 아쉬움과 초조함을 느끼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2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김 장관은 그 어느때보다 예민한 모습이었다.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변이상설을 두고 의원들과 질의가 쏟아졌다.
이정현 무소속 의원이 정부의 대북 정보동향을 믿을 수 없다고 줄곧 비판의 날을 세웠다. 그러자 김 장관은 "제가 한 말씀만 드리겠다. 정부는 가짜뉴스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는다"고 맞받아쳤다. 그는 또 "정부는 정보를 정치화하지 않는다. 북한과 관련해서 과장하거나 축소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에 특이동향이 없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이는 국회와 언론 등이 북한 문제를 과장·축소, 정치화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었다. 의원들의 반발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 이 의원은 "국회의원 누구가 (이 문제를) 정치화하느냐, 도대체 남북 문제를 정치화하는 쪽이 누구냐"고 따져물었다. 정양석 미래통합당 의원은 "장관이 관련 내용을 상세히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이 이해가 되지만, 모호한 표현들을 되풀이하면서 답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위원장 신변이상설이) 화두가 됐을 때, 여야할 것 없이 외통위 의원들은 공개가 어렵다면 비공개 간담회라도 하자고 했는데 정작 오시지 않은 것은 장관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야당 의원의 질의에 그렇게 면박을 주고, '더 이상 묻지도 마라'하는 식의 자세는 정말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유기준 통합당 의원도 "답변할 때 지나치게 흥분하지 마시라"며 김 장관을 진정시켜고 질의에 나서야 했다.
김 장관 입장에서는 과거 정부에서 청와대 고위 관료와 장관을 지낸 의원들이 자신의 진정성과 선의를 몰라주고 마냥 몰아세우는게 야속할만도 했을 것이다. 북한 이슈의 정치화를 우려했다면 오히려 김 장관의 정무적 판단이 발휘됐어야 할 시점이었다. 국회에서 야당 의원들을 향해 정치공세 운운한 발언은 논란만 부추길 뿐이다.
지난해 3월 인사청문회에서 김 장관은 천안함 폭침을 '우발적 사건'이었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이 드러나면서 야당의 공세를 받았다. 이에 김 장관은 북한의 어뢰공격으로 인한 폭침이라는 정부 입장을 따르고 있다면서 "학자의 생각은 진화한다"고 말했다. 드라마틱한 변화였다. 장관과 학자 사이의 간극이 있다면 당연히 장관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발언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학자 출신인 김 장관이 지지부진한 대북정책과 관련한 진화된 아젠다를 이끌어주길 기대하는 이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한반도의 빙하를 깨뜨릴 힘을 지닌 '공룡여당'이 탄생한 후, 김 장관의 일성은 주목을 받았다. 취임 이래 누차 강조해오던 대북정책과 관련한 '창의적 해법'이, 이번에야말로 나올 때였다. 그러나 김 장관이 어느 언론사와 한 인터뷰에서 힘주어 말한 것은 2018년 시도했다가 중단한 '4.27판문점선언 국회 비준'이었다. 북한의 반응을 이끌어내는데 있어, 남북 정상 간 합의의 국회 비준이 얼마나 큰 변수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난 27일 북한은 4.27판문점선언과 관련해 단 한 줄의 언급도 하지 않았다. 김 장관에 대한 기대감이 여전한 만큼 실망감도 존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제재의 틀을 깰 수 없는 한계를 극복하면서 해법을 찾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틀을 벗어나는 실질적 협력방안을 강조한 것도 그 연장선이다. 달리보면 김 장관에 대한 새로운 주문이다. 국제공조의 틀을 깨지 않으면서도 북한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해법을 찾는 일이 시급하다.
국민이 4·15 총선에서 180석 거대여당을 만들어주면서 정부는 남북관계 반전의 키를 쥐었다. 지난해 북한이 남한을 향해 '가을뻐꾸기 같은 소리를 한다'며 조롱했지만 민심을 등에 업은 '공룡여당'이 더이상 가을뻐꾸기일 수는 없다. 한 국책연구기관 전문가는 "남한의 정치지형도 변화를 그 누구보다 주시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이 북한"이라며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 드라이브에 기대감을 나타났다.
김 장관의 대북정책이 앞으로 낡은 프레임을 벗어날지가 그래서 주목을 받는다. 총선을 거치면서 여당은 공룡으로 진화해 힘을 얻었고 기존의 대북정책 기조가 더 강화될 것이다. 하지만 여당의 후광에 힘입은 김 장관이 창조적인 대북정책 아젠다를 마련하지 못할 경우 여전히 가을뻐꾸기라는 평가가 나올수 밖에 없다.
※가을뻐꾸기 : 뻐꾸기는 봄새로 유명하다. 뻐꾸기가 가을에 운다면 말도 안되는 소리나 헛소문인 셈이다. 지난해 11월 북한이 금강산 시설 철거를 일방 통보하고 이에 남측이 '창의적 해법'을 찾자며 '실무회담 제안'을 했을 때, 북한이 '가을뻐꾸기 같은 소리 하지말라"고 일갈하면서 유명해진 표현이다.
김동표 기자 letme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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