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부펀드 자금인출→ 시장 불안→ 경제 위축' 전이 가능
JP모건, 상반기 중동 국부펀드 2250억달러 주식 매도 전망
산유국들이 국제유가 추락으로 세계 곳곳에 투자해뒀던 '오일머니(oil money)'를 회수할 경우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감을 자극할 수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이들 산유국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한 재정지출 수요까지 늘어 국부펀드를 통해 보유 자산을 현금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26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11개 산유국이 해외에 투자한 오일머니의 규모는 약 5조~6조달러로 추정된다. 이는 증권투자와 직접투자 등을 모두 합한 규모다. 노르웨이의 해외투자자산이 1조7000억달러로 산유국 중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러시아 9200억달러, 사우디 6400억달러 등이다.
러시아 옴스크에 위치한 ‘가즈프롬네프트’ 정유 공장의 모습./로이터 연합뉴스 |
오일머니란 산유국들이 원유·석유제품을 수출해 벌어들인 외화로, 재정수요를 충당한 뒤 국부펀드를 설립해 해외로 투자·환류되는 자금을 의미한다.
최근 국제유가가 배럴당 10달러대로 급락하면서 오일머니의 위축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추산에 따르면 산유국들이 재정균형을 이룰 수 있는 유가 수준은 대부분 60달러를 웃돌기 때문이다. 사우디 84달러, 아랍에미리트(UAE) 70달러, 이라크 60달러, 쿠웨이트 55달러 등이다. 특히 사우디, 쿠웨이트, 카타르, 이란, 러시아 등은 전체 수출에서 석유판매 수입 비중이 70~80%에 달해 저유가에 취약한 구조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Fitch)는 6개 아랍산유국으로 이뤄진 걸프협력회의(GCC) 국가들의 경우 유가가 10달러 하락하면 정부 재정수입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2.0~4.0%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또 해외 투자은행(IB)인 BNP파리바는 이달 OPEC+(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OPEC 산유국 간 협의체)와 G20 감산 합의로 올해 GCC 6개국의 원유·가스 수출 수입이 전년대비 1694억달러(GDP의 11%) 감소해 재정적자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국제금융센터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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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산유국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긴급 재정지출 수요마저 급증하고 있다. 국부펀드들은 이 때문에 보유 자산 현금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노르웨이는 올해 1분기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국부펀드 GPFG에서 670억크로네를 인출했고, 이달 중 추가로 보유 채권을 매각해 재정 수요를 충당할 예정이다. 이란 하메네이 최고 지도자는 지난 6일 자국 국부펀드에서 10억유로 인출을 승인하기도 했다.
사우디, 쿠웨이트 등 보수적인 성향을 띄는 산유국들은 지난해 성장 둔화기 때부터 자산을 매각하기 시작하면서 지난해 4분기 글로벌 국부펀드가 주식부문에서 회수한 금액은 48억5000만달러에 이른다.
국제금융센터는 코로나19로 인한 저유가 충격이 장기화될 경우 산유국들이 오일머니를 대거 회수해 국제금융시장 불안과 글로벌 경제 위축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유가 하락→ 산유국 경상·재정수입 감소→ 국내 자금수요 증가→국부펀드 자금인출→ 국제금융시장 불안→ 실물경제 위축'의 경로로 불안이 전이될 수 있다는 것이다.
JP모건은 올해 상반기 중동계 국부펀드가 2250억달러(275조원) 규모의 주식을 매도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그간 산유국은 오일머니로 안전자산인 미국, 일본, 독일 등 선진국 국채도 대거 사들였던 만큼 투자금 회수 과정에서 보유채권을 매각하면 채권시장도 불안해질 가능성이 있다. 미국 국채의 외국인 보유액(6조7000억달러) 중 산유국 비중은 13% 수준에 달한다. IMF는 "현 유가 수준이 장기화되면 산유국이 축적한 부(oil wealth)가 소진되면서 해외에 투자된 국제 자금의 청산이 가속화되고 시차를 두고 순채무국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김희진 국제금융센터 책임연구원은 "산유국은 감산합의로 원유 수출이 감소하고 수출단가도 하락하는 이중고에 직면한 데 이어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자금 수요, 외채 상환 부담은 증가하고 있다"며 "산유국이 국가재정 지원을 위해 국내로 오일머니를 회수함으로써 글로벌 유동성 공급자로서 역할을 축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조은임 기자(goodnim@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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