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지서 의료물자 부족 호소 급증
"병원·관료들 책임 안 지려 의사 탄압"
러시아서 코로나 확산세 가팔라지자
'푸틴 종신집권' 개헌투표 악영향 우려
22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스파소쿠코츠키 병원에서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 병동으로 들어가고 있다. 러시아에서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하고 있어 러시아 당국은 여론 악화를 우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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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급속도로 확산하는 가운데 마스크·방호복 등 의료물자 부족을 호소하는 의료진이 늘어나자 당국의 탄압 수위가 올라가고 있다. 의료체계 붕괴가 임박해지자 러시아 정부가 비판 여론을 차단하기 위해 강경 조치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러시아 현지 언론과 일본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러시아 각지에서 이런 일들이 속출하고 있다.
서남부 볼고그라드주(州)의 칼라치나도누시의 한 공립병원에선 의사들이 인공호흡기 부족을 호소하는 동영상을 제작해 인터넷에 올렸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지역 경찰들이 병원에 들이닥쳤다. 경찰은 의사들이 “가짜뉴스를 유포하고 있다”며 관련자들을 조사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경찰에 신고한 것은 해당 병원이었다. 병원 측이 당국의 압력을 의식해 벌인 일이었던 것이다. 병원 측은 경찰 조사 과정에서 “물자가 부족하지 않다”는 입장까지 냈다고 러시아 경제일간지 베드모스치는 전했다.
22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마스크를 쓴 경찰들이 성 바실리 성당 인근 지역을 순찰하고 있다. 모스크바를 비롯한 러시아의 각 지방정부는 외출금지령을 발령한 상태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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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정부는 병원들이 4만 대 이상의 인공호흡기를 보유하고 있다며 국민을 안심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 중에는 노후화되거나 고장이 나서 작동하지 않는 기기들이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 의사연합에 따르면 각지의 의료진들이 마스크ㆍ방호복 등의 보급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면 경찰들이 외출금지령을 위반했다며 개입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의사연합 관계자는 아사히와 인터뷰에서 “병원의 궁핍한 사정은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에 나쁜 정보이기 때문에 병원과 관료들이 책임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에선 22일 현재 코로나19 확진자가 5만7999명에 이른다. 지난 1일과 비교하면 21배 급증한 것이다. 의료진 감염도 확산되고 있어 의료체계 붕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 인테르팍스 통신에 따르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전염병 전문병원에서만 의료진 131명이 감염됐을 정도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0일(현지시간) 화상으로 정부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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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정부도 이런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말 경제인들과 간담회에서 “2~3개월 내 (코로나 사태가) 종식할지도 (모른다)”고 말했지만, 지난 20일 열린 정부대책본부 화상 회의에선 “상황이 엄중하다”고 태도를 바꿨다.
러시아에선 푸틴의 사실상 종신 집권을 결정하는 헌법 개정 국민 투표가 당초 22일 예정돼 있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투표를 미룬 상황이다. 이 때문에 푸틴 정권이 의료진들의 항의가 여론을 악화시켜 투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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