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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 (금)

이슈 유가와 세계경제

‘초저유가 시대’ 정유업계 “팔수록 손해”…조선·건설도 빨간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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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 4사는 올해 1분기(1~3월) 3조 원의 합산 적자가 예상되는 최악의 상황이다.”(김효석 대한석유협회 회장)

“현재 경영 상황은 여러모로 다 안 좋다. 최근 10년 동안 최악의 위기다.”(조경목 SK에너지 대표)

22일 산업통상자원부가 서울 종로구 한국무역보험공사 본사에서 주최한 간담회에 참석한 정유업계 고위관계자들은 ‘최악’이라는 단어부터 꺼냈다. 간담회를 주재한 성윤모 산자부 장관 역시 “정유업계가 처한 위기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했다.

정유·조선·건설 등 산업계가 실적 악화 공포에 떨고 있다. 원인은 국제 유가 폭락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석유 제품 소비 수요가 줄어든 데 이어 산유국이 대규모 감산 합의에 실패하면서 원유를 팔수록 손해가 나는 ‘초저유가 시대’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피해가 큰 곳은 정유업계다. 정유 4사는 유가가 배럴당 20~40달러 수준일 때 국내에 원유를 들여와 정제 과정을 거쳐 휘발유·경유·항공유 등의 석유 제품을 만들었다. 하지만 유가 하락이 이어지면서 정제한 석유 제품을 밑지고 팔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증권가는 SK이노베이션이 1분기 1조 원 이상의 적자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도 각각 5000억 원 안팎의 영업손실이 예상된다.

유가 하락은 다른 업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조선업계는 원유 수요 감소 영향으로 글로벌 선사들이 초대형원유운반선(VLCC) 발주량을 줄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석유 시추 장비인 해양플랜트 발주도 이미 씨가 마른 상태다. 건설업계는 ‘수주 텃밭’인 중동 등의 산유국에서 신규 설비 발주를 중단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영향으로 해외 영업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유가 급락까지 앞으로의 전망이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날 현금 확보가 시급한 정유업계의 상황을 고려해 우선 세금 감면 조치 등을 발표했다. 산업부는 석유 제품 재고가 넘쳐 한국석유공사의 비축 시설을 임대할 때 대여료를 낮추고 한국석유관리원의 품질 검사 수수료도 최대 3개월 면제하기로 했다. 국세청은 정유업계에 부과될 예정인 1조3745억 원의 4월분 교통·에너지·환경세 납부 기한을 3개월 늦췄다.

정유업계는 정부 조치에 환영의 뜻을 내비치면서도 유가 하락 장기화가 예상되는 만큼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효석 회장은 “(일시적 세금 유예 등) 단기적 처방만으로는 이번 위기를 극복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근본적인 감세 문제 등을 건의하겠다”고 했다. 정유업계는 원유애 매겨지는 세율 3%의 관세와 리터(L)당 16원씩 내는 석유수입부과금 경감과 중유 등에 적용되는 개별소비세 면제 등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 에너지 기업이 다수 모인 미국에서도 유가 하락에 따른 위기감이 감돌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정부에 지원 대책 마련을 주문하고 있다. 에너지 기업 도산으로 대규모 실업자가 발생하고 금융권으로 위험이 옮겨 붙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현지 시간) 트위터를 통해 “매우 중요한 (에너지 업계) 기업들과 일자리 안전을 위한 자금 확보 계획 입안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에너지 사업은 매우 중요하며 국가 안보 문제가 있다”며 “의회에 추가 자금 지원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로 에너지부가 시추를 하지 않는 원유 회사에 사실상 자금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가 하락에 따른 파장을 진화하기 위해 OPEC플러스(석유수출국기구와 10개 주요 산유국 협의체)는 긴급 화상 회의를 열기도 했다. 이미 하루 평균 970만 배럴 감산에 합의했지만 추가 생산 축소 가능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각국의 업계 지원 방안과 산유국의 감산 움직임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손지우 SK증권 연구원은 “코로나19가 종식돼 석유 소비가 늘지 않는 글로벌 정유·에너지업계의 반등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이건혁 기자 g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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