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농가·우유업계 개학 연기 직격탄
한달 200억 급식매출 두달째 0원
재고만 1만t 쌓여 가격 폭락 위기
“낙농 기반 붕괴 우려 정부 대책을”
급식우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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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경주에서 낙농 목장을 운영하는 오용관 경북대구낙농협동조합 조합장은 최근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개학이 연기되고 온라인으로 개학을 하면서 우유 판로가 줄었기 때문이다. 100여 마리의 소를 키우며 매일 2t 정도의 우유를 생산하는 오 조합장은 “1982년 목장을 시작해 외환위기 등 숱한 위기를 겪었지만, 요즘이 가장 힘들다”며 “우유 등 유제품 가격이 폭락해 농장주가 갓 짜낸 우유를 폐기 처분하는 미국이 남의 일 같지 않다”고 했다.
#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의 한 대형마트. 우유 판매대에는 ‘행사상품’ ‘특별기획’이란 문구가 다른 제품 판매대보다 유달리 많이 붙어 있다. 한 업체가 판매하는 우유 900mL 2개 가격은 3980원이었다. 100mL당 220원 남짓인 셈이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우유 소비가 줄어 우유 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우유 할인 행사를 통해 우유 소비를 활성화해 업체들에 도움을 준다는 계획”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개학 연기로 급식용 우유 판매가 끊기면서 낙농가와 우유 업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저출산 등으로 우유 소비가 줄었는데 올해 들어 3차례 개학 연기로 학교 우유 급식마저 완전히 중단됐기 때문이다.
우유업계 등에 따르면 국내 급식 우유 시장은 한 달 200억원, 연간으로 치면 약 1600억원 규모다. 방학 기간인 1~2월과 7~8월을 제외하고 8개월 동안 하루 평균 50만~60만 팩(200mL 기준)이 전국 초등학교에 공급된다.
하지만 코로나19로 학교 개학이 연기되거나 온라인 개학으로 변경되면서 급식 우유 2개월분(3~4월) 매출 대부분이 손실로 이어질 전망이다. 3월과 4월 두 달간 국내 우유업계가 급식 시장에 납품하지 못해 재고로 쌓인 우유는 1만t으로 추정된다. 전체 우유 판매량의 8%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가장 손실이 큰 업체는 학교 급식 우유 물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서울우유협동조합이다. 서울우유의 급식 우유 한 달 매출액은 80억~100억원 규모다. 급식 우유 시장의 25~30%를 담당하는 남양유업도 3~4월 급식중단 여파로 50억원 이상의 손실이 발생할 전망이다.
초·중·고교가 온라인 개학을 하면서 각 학교 급식실이 두달째 텅 비어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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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는 오래 보관하기 어려운 신선식품이다. 우유업계는 남는 원유를 버리는 일을 피하기 위해 ▶멸균 우유 생산 ▶탈지분유 가공 ▶유통점 할인 판매 등의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멸균우유나 탈지분유를 만들 때 추가 공정으로 인한 비용이 발생해 손실을 메우기는 역부족이라고 입을 모은다.
서울우유 관계자는 “멸균우유의 경우 가공 원가가 비싼 데 반해, 소비자 가격이 낮아 수익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 당장은 낙농가에 생산량을 줄여달라고 요청하면서 버티고는 있는데 급식 우유 납품 중단이 더 길어지면 앞으로는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다음달 개학이 예정돼 있긴 하지만, 우유 급식 납품 중단은 그 이후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교육부가 최근 개학 이후에도 온라인 원격수업 대체나 등교 수업과 병행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유업계에선 급식 우유 중단이 전체 우유업계와 낙농 기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급식 우유라는 고정 판매처가 사라지면서 잉여유가 늘어나고, 재고 물량이 마트로 넘어오면 가격 할인 출혈 경쟁이 심화한다는 것이다.
우유 업체들은 잉여유를 버릴 수 없어 멸균우유로 생산해 버티고 있다. 이 제품이 시장에 쏟아지면 가격 폭락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또 신선한 우유가 시장에 나와도 멸균 우유와 경쟁해야 한다. 익명을 요구한 낙농업계 관계자는 “남은 우유 처리를 위해 정부가 원유 수매와 같은 대책 방안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곽재민 기자 jmkw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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