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5 (월)

이슈 텔레그램 n번방 사건

'텔레그램 n번방' 디지털성범죄 키운 또 다른 공범, 안일한 공직사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사회복무요원 개인정보 접근 원칙적 금지

일부 복무기관 시스템 사용권한 공유

개인정보 확보한 조주빈, 범죄에 악용

아시아경제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 등 수십 명의 여성을 협박, 촬영을 강요해 만든 음란물을 유포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씨가 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기 위해 나오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시아경제 이관주 기자] 미성년자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하는 등 사회적 공분을 산 '텔레그램 n번방' 사태를 키운 또 다른 '공범'으로 안일한 공직사회가 지목되고 있다.


일명 '박사방'을 운영한 조주빈(24·구속)은 사회복무요원을 통해 불법으로 개인정보를 제공받아 협박·사기 등 각종 범행에 악용했다. 사회복무요원에 대한 철저한 관리가 있었다면 추가 피해자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지방경찰청 디지털성범죄 특별수사단은 이달 11일 서울 송파구청과 경기 수원시 영통구청에서 근무한 전·현직 공무원 2명을 직무유기 혐의 피의자로 불러 조사했다. 이들은 사회복무요원을 관리·감독하는 위치에 있으면서 직무를 소홀히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송파구 한 주민센터에서 근무한 최모(26·구속)씨는 주민등록등·초본 발급 보조 업무를 하면서 200여명의 개인정보를 불법 조회하고, 이 가운데 17명의 개인정보를 조주빈에게 제공한 혐의로 앞서 3일 구속됐다. 영통구청에서 금누한 강모(24·구속)씨 또한 구청 전산망에 접속해 피해 여성과 가족의 개인정보를 조회한 뒤 조주빈에게 넘겨 보복을 부탁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아시아경제

조주빈과 함께 텔레그램 '박사방'의 공동 운영자로 알려진 '부따' 강훈이 17일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기 위해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회복무요원으로부터 개인정보를 제공받은 조주빈은 이를 각종 범죄에 활용했다. 대표적으로 조주빈은 손석희 JTBC 사장을 협박하는데 사회복무요원을 통해 확보한 손 사장의 차량번호 등을 이용했다.


사회복무요원이 개인정보를 단독으로 취급하는 것은 이 사건 이전에도 원칙적으로 금지된 사항이었다. 그러나 일부 복무기관의 업무담당자들은 개인정보를 취급하는 시스템 접속·사용권한을 사회복무요원과 공유했다. 표면적으로는 효율적인 업무를 위해서라지만, 그 이면에는 개인정보에 대한 일선 공무원의 안일한 인식이 있다. 사소하거나 어렵지 않은 업무를 사회복무요원에게 맡겼던 일부 공직사회의 습성이 디지털성범죄를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한 셈이다.


공직사회의 안일한 업무 처리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서울 송파구 한 주민센터는 '박사방' 관련 피해자일 수도 있는 200여명의 인적 사항 일부를 홈페이지에 올려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물론 처음 의도는 본인의 개인정보라 판단되면 주민센터에 연락해 정보 유출 여부를 확인하라는 취지였지만, 피해자 이름 두글자와 출생연도·소재지·성별까지 공개되는 등 과도한 정보 노출로 2차 피해를 유발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경찰은 송파구청 소속 공무원 2명이 허용된 권한을 초과해 개인 식별이 가능한 개인정보를 유출한 혐의가 있다고 보고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조사 중이다.


아시아경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에게 개인정보를 유출한 혐의를 받는 공익요원 최모씨가 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공무원들의 안일한 의식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단적으로 경찰에서조차 사회복무요원에게 '개인정보 조회·처리시스템' 접근 권한을 부여해 단독으로 개인정보 취급 업무를 수행하게 했던 사례가 확인됐다. 문제가 불거지자 결국 경찰은 사회복무요원의 개인정보 관련 시스템 이용권한 부여를 금지하고, 경찰관이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려줘 업무를 대행시키는 일도 엄격히 금지한다는 지침을 내렸다.


사회복무요원을 관리하는 병무청은 이달 초 사회복무요원의 정보화시스템 접속 및 이용을 전면 금지하고, 전 복무기관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인다고 밝혔다. 개인정보보호 주관부처인 행정안전부와 함께 관계법령 및 지침 위반 여부를 조사하고, 재발방지 종합 대책을 마련한다고도 덧붙였다.


하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비판은 면키 어려워 보인다. 경찰청에 따르면 이달 16일 기준 텔레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이용 디지털성범죄 검거인원은 306명으로, 이 중 43명은 구속됐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자만 166명에 달한다.



이관주 기자 leekj5@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