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비렌티, 방탄소년단 ‘봄날’ 분석 영상 만들어
은유된 세월호·사회적 영향 설명해 인기 끌어
한국 BTS 행사 초대돼 유족도 만나
“아픔 안고 안전한 세상 위해 싸워”
“보고 싶다”는 가사와 함께 노래가 시작되면, 화면엔 바닷가에 앉아 있는 지민의 뒷모습이 비친다. 그는 주인 없는 운동화를 양손 위에 얹은 채 조용히 바다를 응시한다. 곧이어 나온 회전목마엔 ‘당신은 절대 혼자가 아닙니다’(You Never Walk Alone)라는 문구가 적혀 있고, 사람 한 명 타지 않은 채 노란 리본들만 바람에 휘날린다. 화면은 잠시 어두워지고, 산처럼 쌓인 옷더미 위에 올라앉은 슈가가 나와 랩을 시작한다. “넌 떠났지만 단 하루도 너를 잊은 적이 없었지 난.”
2017년 2월 공개된 방탄소년단의 ‘봄날’ 뮤직비디오는 세월호 참사를 연상케 하는 장면으로 화제가 됐다. 한국의 ‘아미’(방탄소년단 팬클럽)들은 뮤직비디오에 드러난 세월호 추모 메시지를 분석해 영상 만들기에 나섰고, 수많은 국외 아미들이 이를 통해 세월호 참사가 무엇인지 알게 됐다. 이탈리아 로마에 사는 안젤라 풀비렌티(31)도 그 중 한명이다. 그는 그저 참사를 아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직접 이탈리아어와 영어로 된 ‘봄날’ 뮤직비디오 분석 영상을 만들고, 한국에 와서 세월호 유가족들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6주기를 이틀 앞둔 지난 14일 화상통화를 통해 ‘로마의 평범한 직장인 아미’ 풀비렌티와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풀비렌티에게 ‘봄날’ 뮤직비디오를 거쳐 만난 세월호 참사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가 바라본 세월호 참사는 “강자를 보호하기 위해 약자를 희생시킨 비극”이었다. 특히 “가만히 있으라”는 선장의 지시에 따라 많은 학생들이 희생됐다는 사실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정부와 해운업계, 언론의 부패와 태만이 비극을 초래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비단 한국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느꼈어요.”
사람들의 반응은 그의 기대를 훌쩍 넘어섰다. ‘진실을 세상에 알려주어 고맙다’는 댓글부터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이 영상을 봐야 한다’, ‘영상을 보며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는 댓글까지, 영어와 한국어, 이탈리아어로 된 각종 ‘선플’이 그에게 쏟아졌다. 그의 영상은 점점 입소문을 타며 퍼져나갔고, 그는 지난해 여름 한국에서 열린 ‘비티에스(BTS) 인사이트 포럼’ 발표자로 초대 받아 한국을 방문하기에 이르렀다.
기적 같은 일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세월호 유가족들과 직접 얼굴을 맞대고 얘기할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풀비렌티는 한국에 방문해 발표를 준비하던 중 주최 쪽인 문화마케팅그룹 ‘머쉬룸’으로부터 유가족들과 만남을 주선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고, “온몸이 마비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돌아봤다.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겪은 이들에겐 어떤 얘기를 꺼내야 할지, 혹시 문화적 차이로 인해 내가 하는 말이 의도치 않게 상처가 되진 않을지 정말 걱정이 많이 됐어요.”
그렇게 지난해 9월2일 풀비렌티는 유족들을 처음 만나 함께 안산 단원고를 찾았다. 떠난 아이들이 생전에 공부하고 뛰어놀던 장소를 함께 거닐며 유가족들은 그에게 아이들의 사진을 보여주고 그들의 분투에 관한 얘기도 들려줬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풀비렌티는 가족들 중 한명의 손을 잡고 낯선 언어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정말 따뜻하고 강인한 분들이었습니다. 아픔을 안은 채 더 행복하고 안전한 세상을 위해 싸우고 계셨어요.” 유가족들은 그에게 먼저 ‘영상을 보고 싶다’고 말을 건넸고, 영상을 본 뒤엔 ‘진실을 널리 알려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풀비렌티는 이때를 “인생에서 가장 부끄럽고 감동적이었던 순간”으로 회상했다.
“방탄소년단 음악에는 ‘자신과 다른 이들을 사랑하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어요.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많은 아미들이 세월호의 비극을 이해하고 한국 사회에 지지와 연대의 메시지를 보내줄 것이라 믿습니다.”
박윤경 기자 yg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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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된 세월호·사회적 영향 설명해 인기 끌어
한국 BTS 행사 초대돼 유족도 만나
“아픔 안고 안전한 세상 위해 싸워”
지난해 9월 ‘비티에스(BTS) 인사이트 포럼’에 참석한 뒤 주최 쪽, 인권활동가 등과 함께 안산 단원고 4∙16기억교실을 방문한 이탈리아 ‘아미’ 안젤라 풀비렌티. 안젤라 풀비렌티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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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다”는 가사와 함께 노래가 시작되면, 화면엔 바닷가에 앉아 있는 지민의 뒷모습이 비친다. 그는 주인 없는 운동화를 양손 위에 얹은 채 조용히 바다를 응시한다. 곧이어 나온 회전목마엔 ‘당신은 절대 혼자가 아닙니다’(You Never Walk Alone)라는 문구가 적혀 있고, 사람 한 명 타지 않은 채 노란 리본들만 바람에 휘날린다. 화면은 잠시 어두워지고, 산처럼 쌓인 옷더미 위에 올라앉은 슈가가 나와 랩을 시작한다. “넌 떠났지만 단 하루도 너를 잊은 적이 없었지 난.”
2017년 2월 공개된 방탄소년단의 ‘봄날’ 뮤직비디오는 세월호 참사를 연상케 하는 장면으로 화제가 됐다. 한국의 ‘아미’(방탄소년단 팬클럽)들은 뮤직비디오에 드러난 세월호 추모 메시지를 분석해 영상 만들기에 나섰고, 수많은 국외 아미들이 이를 통해 세월호 참사가 무엇인지 알게 됐다. 이탈리아 로마에 사는 안젤라 풀비렌티(31)도 그 중 한명이다. 그는 그저 참사를 아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직접 이탈리아어와 영어로 된 ‘봄날’ 뮤직비디오 분석 영상을 만들고, 한국에 와서 세월호 유가족들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6주기를 이틀 앞둔 지난 14일 화상통화를 통해 ‘로마의 평범한 직장인 아미’ 풀비렌티와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풀비렌티에게 ‘봄날’ 뮤직비디오를 거쳐 만난 세월호 참사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가 바라본 세월호 참사는 “강자를 보호하기 위해 약자를 희생시킨 비극”이었다. 특히 “가만히 있으라”는 선장의 지시에 따라 많은 학생들이 희생됐다는 사실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정부와 해운업계, 언론의 부패와 태만이 비극을 초래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비단 한국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느꼈어요.”
더 많은 아미가 이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 까닭이다. 이에 풀비렌티는 분석 영상을 만들어 전세계에 세월호 참사를 알리는 데 동참하기로 결심했다. 외신 기사와 한국의 탐사보도 영상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읽었고, 영어 번역이 제공되지 않는 기사나 영상은 다시 인터넷에 유사 자료를 검색해가며 이해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이전까지 영상을 만들거나 편집해본 경험이 없어 속도는 더욱 더딜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꼬박 두달 가까운 시간이 지난 2017년 5월1일 그는 ‘당신이 아직 ‘봄날’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들’이라는 제목의 분석 영상을 완성했다. 영상엔 ‘봄날’ 뮤직비디오의 장치들이 어떻게 세월호 참사를 은유하고 있는지, 그리고 참사가 한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관한 설명이 담겼다. 이 영상은 2만3천여회 조회수를 기록했고 400여개의 댓글이 달렸다.
사람들의 반응은 그의 기대를 훌쩍 넘어섰다. ‘진실을 세상에 알려주어 고맙다’는 댓글부터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이 영상을 봐야 한다’, ‘영상을 보며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는 댓글까지, 영어와 한국어, 이탈리아어로 된 각종 ‘선플’이 그에게 쏟아졌다. 그의 영상은 점점 입소문을 타며 퍼져나갔고, 그는 지난해 여름 한국에서 열린 ‘비티에스(BTS) 인사이트 포럼’ 발표자로 초대 받아 한국을 방문하기에 이르렀다.
기적 같은 일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세월호 유가족들과 직접 얼굴을 맞대고 얘기할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풀비렌티는 한국에 방문해 발표를 준비하던 중 주최 쪽인 문화마케팅그룹 ‘머쉬룸’으로부터 유가족들과 만남을 주선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고, “온몸이 마비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돌아봤다.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겪은 이들에겐 어떤 얘기를 꺼내야 할지, 혹시 문화적 차이로 인해 내가 하는 말이 의도치 않게 상처가 되진 않을지 정말 걱정이 많이 됐어요.”
지난해 9월 안산 단원고 4∙16기억교실 등에서 세월호 유족들과 만난 이탈리아 ‘아미’ 안젤라 풀비렌티. 안젤라 풀비렌티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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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안산 단원고 4∙16기억교실 등에서 세월호 유족들과 만난 이탈리아 ‘아미’ 안젤라 풀비렌티. 안젤라 풀비렌티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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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지난해 9월2일 풀비렌티는 유족들을 처음 만나 함께 안산 단원고를 찾았다. 떠난 아이들이 생전에 공부하고 뛰어놀던 장소를 함께 거닐며 유가족들은 그에게 아이들의 사진을 보여주고 그들의 분투에 관한 얘기도 들려줬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풀비렌티는 가족들 중 한명의 손을 잡고 낯선 언어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정말 따뜻하고 강인한 분들이었습니다. 아픔을 안은 채 더 행복하고 안전한 세상을 위해 싸우고 계셨어요.” 유가족들은 그에게 먼저 ‘영상을 보고 싶다’고 말을 건넸고, 영상을 본 뒤엔 ‘진실을 널리 알려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풀비렌티는 이때를 “인생에서 가장 부끄럽고 감동적이었던 순간”으로 회상했다.
그는 “유가족들과 만난 뒤 그들이 바라는 세상을 지지하기 위해 힘을 보태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고 말한다. 풀비렌티와 다른 국외 아미들이 참사를 알리는 카드뉴스를 만들고 전세계 아미들의 자선단체인 ‘원인언아미’와 함께 모금 프로젝트도 논의하는 등 이번 6주기에도 세월호 참사 추모를 위해 적극 나서고 있는 까닭이다.
“방탄소년단 음악에는 ‘자신과 다른 이들을 사랑하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어요.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많은 아미들이 세월호의 비극을 이해하고 한국 사회에 지지와 연대의 메시지를 보내줄 것이라 믿습니다.”
박윤경 기자 yg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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