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 4.16기억교실을 찾은 한 시민이 교실을 둘러보며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
“세월호는 우리에게 사명감으로 남았습니다.”
1997년생인 강채은(23)씨는 6년 전 세월호 참사에서 희생된 경기 안산시 단원고 학생들과 동갑이다.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강씨는 또래 친구들의 허망한 죽음을 뉴스를 통해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고3이었던 세월호 1주기에 친구들과 함께 추모 행사를 기획했지만 학교 측의 반대에 부딪혔다. 그와 친구들은 노란 현수막을 학교에 걸고 전교생을 대상으로 추모글을 받아 유가족에게 전달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부 교사들은 정치적으로 비칠 수 있고 공부에 집중하라며 이들을 만류했다. 다행히 학생들의 활동을 지지해준 한 교사의 도움으로 이들의 편지는 유가족에게 무사히 전달됐다.
강씨는 현재 임용고시를 준비 중이다. 그는 “학생들이 선내에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교육 탓”이라며 “남을 누르고 경쟁하는 방식만을 배우는 학교에서 고민하고 성찰할 기회를 주는 교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특히 참사 희생자 학생들과 또래였던 학생들은 국가와 사회에 대한 깊은 실망과 회의를 갖게 했다. 한편으론 타인과의 협력 필요성, 사회를 바꾸려는 실천 의지 등도 증가했다. 사회 진출을 앞둔 이들은 스스로를 ‘세월호 세대’라 부르며 ‘다른 어른’이 돼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한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등 유가족들이 지난 12일 오후 전남 목포시 목포신항에 인양된 세월호 선체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
대학 내 세월호 관련 단체 단체에서 활동한 김서형(24)씨도 스스로를 세월호 세대라 여긴다. 김씨는 “참사 이후 2~3년은 슬픔이 가시지 않은 때였다”며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고 진실이 밝혀질 수 있을까 하는 막막함이 당시 청소년 세대의 공유된 감정이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세월호 참사가 한국 사회가 가진 문제가 집약돼 발생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세월호는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안전을 위한 평형수는 줄였고 화물의 적재량을 늘렸다. 구조 과정에서도 비정규직 선원과 어린 학생들은 구조되지 못한 채 배 안에 머물렀다. 김씨는 “재난상황에서 취약성은 낮은 곳을 향한다는 말이 드러난 것”이라며 “세월호 안에서도 위계가 나뉘어 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세월호 참사의 진짜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무엇을 위해 싸워왔는지, 변한 게 무엇인지를 계속 기억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세월호 세대의 인식이 앞으로 사회에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될 것으로 내다봤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는 “학생들의 과제 소논문에도 세월호에 대한 기억이 담기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참사에 대한 직관적 기억이 미치는 영향은 상당할 것”이라며 “세월호 세대는 정치적 참여나 다른 세대와 구분되는 의식을 가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종민 기자 jngm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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