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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 (금)

이슈 세월호 인양 그 후는

[세월호6주기]그립고 그리워서…몸도 마음도 서서히 무너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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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들의 슬픔

4·16 피해자 건강 및 생활실태조사 연구 결과

경향신문

세월호 참사 6주기를 나흘 앞둔 지난 12일 오후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목포 신항에 세워져 있는 세월호 선체를 바라보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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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숙씨(48)는 2014년 이후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새벽에 잠깐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한다. 억지로 잠들기 위해 술을 마실 때도 있다. “(수면유도제 같은) 약보다는 술이 낫겠다 싶어서”다. 세월호 참사로 아들 임경빈군(당시 단원고 2학년)이 하늘로 떠나기 전에는 회식 때 소주 한두 잔 하던 것이 다였다.

보험영업을 하던 그는 참사 이후 세월호 진상규명에 뛰어들었다. 직업을 놓은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휴업 상태다. 올해 고등학교 1학년이 된 딸은 불평 없이 엄마의 활동을 응원했지만, 노란 점퍼를 챙겨입고 집을 나서는 그에게 “오늘도 나가?”라고 묻기도 한다. 지난해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는 참사 당일 해경이 임군을 발견하고도 이송을 5시간 지체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검찰 세월호참사특별수사단(특수단)이 발족했다. 5개월여 수사가 이어졌지만 특별한 답은 없다. 세월호 참사 6주기, 전씨의 잠들지 못하는 밤은 오늘도 계속된다.

유족·생존자들 “괜찮은 척하기 힘들어”

“음식 보면 떠난 아이 생각나”

세월호 참사 이후 음주·흡연 크게 늘고

수면시간·식사량은 줄어


13일 경향신문이 입수한 세월호 참사 트라우마 치유센터 안산온마음센터의 ‘4·16 피해자 건강 및 생활실태조사 연구’ 결과를 보면, 유가족 등 피해자 상당수가 2014년 이후 음주·흡연이 늘고 수면시간·식사량은 줄었다. 응답자의 37.7%는 대인관계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공감되지 않는 위로의 말이 듣기 싫어서’ ‘다른 사람들이 자녀 이야기할 때 힘들어서’라고 했다.

지난해 12월과 올해 2월 세월호 참사로 숨진 단원고 학생의 아버지 두 명이 세상을 떠났다. 이들의 죽음을 ‘세월호’와만 연결 지을 수는 없지만, 세월호를 떼어놓고 설명할 수도 없다.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은 여전히 많다. 온마음센터가 상담 관리하는 유가족 779명 중 자살 시도 등의 경험이 있어 집중관리가 필요한 인원은 올해 4월 기준 23명, 총 관리인원의 3%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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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마음센터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의 유가족과 생존자·생존자 가족 등 239명을 대상으로 2017년 7~12월 ‘피해자 건강 및 생활실태조사’를 했다. 이 조사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보고서는 이달 중 공개할 예정이다. 참사 전후의 음주 상태를 분석한 결과, 술을 전혀 안 마신다고 한 이들은 참사 전 36.4%에서 이후 28.0%로 줄었다. 참사 이후 음주에 변화가 있다고 응답한 139명을 대상으로 이유를 묻자 ‘희생자에 관한 생각으로 힘들어서’라는 답이 32.0%로 가장 높았다. 이어 ‘기타’(22.5%), ‘잠이 오지 않아서’(18.3%), ‘마음 아픈데 괜찮은 척하기 힘들어서’(14.2%) 순이었다. 흡연량도 증가했다. 비흡연자는 참사 전 75.3%에서 참사 이후 68.6%로 줄었다. 흡연자들은 참사 전 하루 평균 15.8개비를 피우다 참사 이후 18.1개비로 늘었다. 응답자의 69.9%가 수면시간이 감소했다고 했다. 식사량이 감소했다고 응답한 비율도 56.1%로 절반을 넘겼다. 이유로는 ‘입맛이 없고 소화가 안돼서’(37.7%)라거나 ‘음식을 보면 아이 생각이 나서’(21.4%)라고 답한 이들이 많았다.

사회적 관계가 축소되는 경우도 있었다. 조사대상자 중 현재 직업이 있다는 응답자는 46.4%였고, 나머지는 직업이 없었다. 직장을 그만두거나 사업을 정리한 시기는 2014년이 51.5%로 가장 많았다. 참사 이후 직장으로 복귀하지 않았거나, 복귀 후 휴직이나 사직한 130명을 대상으로 그 이유를 물어본 결과 ‘일에 집중할 수가 없어서’(27.5%), ‘유가족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서’(16.9%) 등의 답변이 나왔다. 친척, 이웃 등과 대인관계를 하지 않는다는 응답자도 37.7%였다. 대인관계를 끊은 이유로는 ‘세월호 참사를 잊으라는 말 등 공감되지 않는 위로의 말이 듣기 싫어서’가 25.5%로 가장 많았다. 이어 ‘다른 사람들이 자녀 이야기할 때 힘들어서’(18.0%), ‘마음 아픈데 괜찮은 척하기 싫어서’(17.3%) 등이었다.

76% 우울증 73% 불면증

28% “세상 믿기 어려워”20% “항상 불행”

고 권오천군 친형

“진상규명 전까진 견딜 수밖에 없어

4년 뒤엔 우는 사람 없었으면”


응답자의 상당수가 우울증(76.2%), 불면증(73.2%), 만성두통(82.2%)을 앓고 있다고 답했다. 이 중 의사의 진단을 받아 치료까지 이어진 경우는 절반을 넘지 못했다. 심리적 어려움이 있지만 치료를 받지 않는 이들은 ‘치료를 받을 만큼 심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서’(19.3%), ‘치료를 받을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진상규명 등이 우선이라고 생각해서’(18.8%) 병원을 찾지 않았다.

응답자들은 사회에 대한 불신도 높았다. 이들에게 세월호 참사 이후 달라진 가치관을 묻자, ‘이 세상은 믿기 어렵고 위험한 곳이다’라고 답한 이들이 28.7%로 가장 많았다. ‘나는 한때는 만족하며 살았으나 지금은 항상 불행하다’(20.7%), ‘누구도 믿어서는 안된다’(20.1%)고 답한 이들도 많았다.

온마음센터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과 생존자, 생존자 가족, 2차 피해자 등 약 900명을 상담 관리한다. 피해자들의 정서적 위험도를 고려해 집중관리(5), 유지관리(4), 일시관리(3), 파악(2), 미파악(1)의 5단계로 구분한다. 올해 4월 기준, 유가족 779명 중 자살 시도 경험 등이 있어 센터의 집중관리가 필요한 인원은 23명(3%)으로 파악된다. 자살 시도 등은 하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관리가 필요한 유지관리 인원은 232명(30%). 일시관리 282명(36%), 파악 200명(26%), 미파악 42명(5%) 순이다. 올해 3월 기준 집중관리와 유지관리 인원은 22명, 227명에서 이달 각각 1명, 5명이 더 늘었다. 온마음센터 관계자는 “고위험군은 매년 3~5월 많아졌다가 이후 줄어드는 형태가 반복된다”며 “참사 당일을 앞두고 유가족 등의 스트레스가 급증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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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교실, 아련한 흔적들 세월호 참사 6주기를 사흘 앞둔 13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 교육지원청 내에 있는 ‘단원고 4·16 기억교실’ 책상 위에 꽃과 학생들의 소지품이 놓여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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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는 집중관리에 속한 이들의 상태가 우려되긴 하지만, 그나마 연락이 된다는 면에서는 다행일 수 있다고 했다. 세월호 유가족 중에는 외부와의 연락을 끊고 트라우마 치료를 받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일부 유가족들은 자신을 ‘치료받는 나약한 존재’로 남겨두길 원하지 않으며, 치료보다 진상규명이 먼저라고도 한다. 한 유가족은 “센터에서는 서운해할지 모르지만, 왜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차라리 그 인원들이 진상규명을 위해 활동하는 게 낫지 않나”라고 말했다.

센터의 상담 현황과 설문 등을 기반으로 했을 때, 여성보다는 남성, 즉 ‘아버지’의 사회적 이탈이 심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지금까지 세상을 떠난 유가족 두 명도 모두 남성이다. 한 세월호 유가족은 “남자들은 그간 사회생활을 하며 가족을 돌보지 않다가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고 나서야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은 경우가 많다”며 “만약 배·보상금으로 사업을 하다 실패하면 그 죄책감까지 짊어지게 돼, 다시 한번 가장으로서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남성들은 여성에 비해 온마음센터 이용 빈도가 낮았다. 여성 응답자의 82.2%가 온마음센터를 이용한 경험이 있는 것과 달리, 남성은 53.5%만 센터를 이용했다. 서울대 인류학과 이현정 교수의 논문 ‘자녀를 잃은 부모의 젠더에 따른 상실감 차이에 관한 연구: 세월호 유가족의 경우(2018)’를 보면 “아버지의 경우에는 돈벌이에 집착했던 삶이나 자녀와 가깝지 못했던 태도에 대한 후회가 주를 이뤘으며, 참사 이후 직장과 사회생활에서 멀어져버린 자신의 삶을 실패로 규정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세월호 피해자들은 트라우마 치료를 위해 보다 전문적인 트라우마 치유센터 건립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세월호 침몰 과정조차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진상규명 없이 유가족의 아픔을 어루만지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유가족이 사참위와 검찰 특수단의 수사를 두고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여도 모자란 시간에 진척 상황이 지지부진한 것 같다”고 불만을 표하면서도 기대를 접지 않는 이유다. 사참위는 올해 12월 2년간의 조사 활동을 종료한다. 이후 3개월의 백서 작성 기간을 거쳐 내년 2월 말 해체한다. 검찰 특수단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올해 안에 활동이 끝날 것으로 보인다.

고 권오천군(당시 단원고 2학년)의 형 권오현씨(33)는 세월호 참사 이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다. 권씨는 “여전히 사람은 무섭고, 제3자는 언제나 경계의 대상”이라고 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 이전에는 여수 엑스포 전시책임자까지 하며 공연·이벤트 분야에서 활발히 일했다.

권씨는 “트라우마 극복 노력을 포기했다”며 “트라우마의 근본 원인(진상규명)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그저 견뎌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권씨는 견디기 위한 방법을 찾는 중이다. 지난해 추모곡 ‘매 순간’을 발표했다. 그는 “가사를 잘 쓰고 노래를 잘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기억 속에 세월호가 오래 남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노래를 냈다. 4년 뒤면 10주기다. 그때는 우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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