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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온유의 느·낌·표] 서울 아파트 지도

아시아경제 임온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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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온유의 느·낌·표] 서울 아파트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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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온유 기자] '봉천동.' 현재 방영 중인 KBS 일일드라마 '꽃길만 걸어요'의 남자 주인공이다. 다섯 살 어린 나이로 여동생과 함께 고아가 됐지만 멋지게 시련을 극복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한 변호사다. 그의 이름 뒤에는 서글픈 사연이 숨어있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 버려졌다 해서 봉천동으로 이름을 지었다는 것이다.


새 책 '서울 아파트 지도'를 보며 새로 알게 된 것은 달동네로 유명한 봉천동이 2008년부터 서류상에 없는 동네가 됐다는 사실이다. 관악구는 과거 남현동, 봉천동, 신림동 등 3개동으로 이뤄졌었는데 달동네의 낙후된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 행정동명을 없애거나 바꿨다고 한다. 과거 봉천동이었던 지역은 이름뿐 아니라 실상도 바뀌었다. 두산1단지, 관악동부센트레빌 등 500가구 이상 아파트 단지가 8개나 들어선 아파트촌으로 변모한 것이다.


건설부동산부 초년 기자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서울 곳곳의 아파트가 지닌 뉘앙스를 파악하는 일이었다. 서초구 반포동의 아크로리버파크, 강남구 대치동의 은마아파트와 압구정 현대아파트, 용산구 한남동의 한남더힐, 마포구 아현동의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서울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아파트 단지가 있다. 집값은 단순히 입지와 건축 연한만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서울 토박이가 아닌 기자로서는 집값이 내리거나 오를 때 기사에 예로 들어야 할 대장 아파트가 무엇인지조차 알기 어려워 답답했다.


'서울 아파트 지도'는 서울을 25개구로 나눴다. 그 가운데 실수요와 투자수요 모두 만족시킬 만한 알짜배기 구축 아파트 272곳을 선별ㆍ소개한다. 책장을 넘기니 '이 책을 좀더 일찍 만났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유명한 아파트들이 어떤 상징성을 갖고 있는지 친절히 설명돼 있기 때문이다. 많은 아파트가 다뤄지다 보니 서울 부동산을 줄줄 꽤는 이들에게는 깊이가 부족한 책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막 부동산을 공부해보려는 '부린이(부동산+어린이)'들에게는 꽤 유용한 책이 될 듯하다. 봉천동에 얽힌 일화처럼 어른들로부터 전해 듣지 않는다면 알기 어려운 이야기들도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대한민국 부동산의 바로미터로 불리는 강남구편을 가장 흥미롭게 읽었다. 이에 따르면 1960년대만 해도 강남은 허허벌판이었다. 당시 정부는 강북 인구를 분산하고자 강남 개발에 나섰다. 하지만 사람들은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자 명문 학교와 기업, 관공서를 강남으로 이전하는 정부 정책이 펼쳐졌다. 그 결과 뜻하지 않게 지금은 강남에 모든 게 밀집되는 결과가 빚어졌지만 말이다. 강남3구로 묶이는 서초구와 송파구가 원래 강남구에 속했다는 것도 '서울 아파트 지도'를 통해 처음 알게 됐다.


강남구에는 500가구 이상 아파트 단지가 79개나 있다. 이 가운데 압구정동이 18개로 가장 많다. 이어 대치동이 12개, 개포동이 10개 순이다. 압구정은 미성아파트ㆍ현대아파트ㆍ한양아파트로 크게 나뉜다. 현대아파트의 경우 무려 14차까지 있다. 그 중 9ㆍ11ㆍ12차를 묶어 신현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신현대는 이른바 '슬세권(슬리퍼를 신고 백화점에 가는 권역)' 아파트다. 압구정 아파트 대다수가 지은 지 40년도 넘어 재건축을 추진 중이다. 앞으로 이들 아파트의 위상은 더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서울 열린데이터광장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서울의 주택 비율은 단독주택이 30.1%, 아파트가 42%, 다세대주택이 17.3%다. 전국 주택에서 아파트 비율이 48.6%임을 감안하면 서울 내 아파트가 생각보다 적은 셈이다. 최근 재건축이나 재개발이 활발하지 않다. 따라서 서울에서 아파트 공급 물량이 크게 늘기는 힘들 것 같다. 서울에서 집 사는 것이 불가능할 듯한 생각마저 든다. 이 책에는 9억원 이하 유망 아파트 30곳을 선별해 담은 별책 부록도 포함돼 있으니 서울 아파트 매입을 노리는 부린이들에게 좋은 안내서가 될 법하다.


(서울 아파트 지도/이재범 지음/리더스북/1만8000원)



임온유 기자 i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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