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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 (금)

이슈 세월호 인양 그 후는

아직 끝맺지 못한, 세월호가 남긴 5가지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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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의 기억은 희미해졌다가 선명해지기를 반복했다. 누군가는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며 피로감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세월호가 남긴 숙제는 6년이 지난 지금도 풀리지 않았고, 여전히 그날의 시간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있다.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더 이야기하고, 알고, 고쳐야 한다. 끝맺지 않은 세월호 관련 5가지 과제를 정리했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4·16연대가 총선 후보자들에게 제시한 5대 정책과제를 토대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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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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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세월호 7시간’ 기록

세월호 참사 당일 청와대의 대응을 알 수 있는 ‘세월호 7시간’ 기록물은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에 봉인돼 있다. 2017년 황교안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현 미래통합당 대표)이 참사 당일 청와대에서 생산된 문건을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대통령기록물법 제17조는 국가안전보장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거나 사생활 관련 기록일 경우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한다.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거나 관할 고등법원장이 영장을 발부하지 않는 한 최장 30년까지 공개되지 않는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송기호 변호사는 2017년 5월 대통령기록관에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비서실·대통령경호실·국가안보실이 생산한 문서 목록을 요구했다. 대통령기록관은 이 문건이 18대 대통령지정기록물이라서 공개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송 변호사는 대통령기록관장을 상대로 다음달 소송을 냈다. 송 변호사는 “목록 자체는 국가안전보장에 중대한 위험을 끼칠 우려가 없어서 지정기록물의 지정 요건을 갖추지 못했고, 해당 기록물을 생산할 당시 재임한 대통령이 아닌 권한대행이 봉인한 것도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1심은 송 변호사의 손을 들어줬다. 세월호 관련 문건 목록은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볼 수 없다고 봤다. 하지만 2심에서 뒤집혔다. 대통령지정기록물상 예외 사유에 해당하지 않아 공개 청구를 거부한 것이 위법하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 대법원이 사건을 심리 중이다.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는 지난해 대법원에 “이 사건의 정보공개를 통해 국민이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보다 원활히 파악할 수 있고, 행정기관 역시 공개된 정보를 기초로 참사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의견을 냈다.

송 변호사는 “국가기록원이 어떤 기록물이 있는지에 대한 기본적 목록조차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며 “세월호 7시간의 진실이 온전하게 드러나 왜 국가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는지 규명돼야만 우리 사회가 전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것이 묻히는 상황에선 세월호의 진실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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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초원 교사 아버지 김성욱씨와 전국기간제교사노조 등이 4월 9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간제 교사를 차별하는 경기도 교육청에 대해 대법원은 제대로 된 판결을 내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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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까지 이어지는 진상조사

진상규명도 현재진행형이다. 2017년 제정된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세월호 참사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조사하는 사참위가 활동하고 있다. 2015년 박근혜 정부 때 꾸려진 1기 세월호 특조위는 당시 정부·여당의 방해로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났다. 2018년 8월 활동을 마감한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는 참사 원인으로 선체 내부에 문제가 있었다는 ‘내인설’과 함께 외부 충격에 의한 외력설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으며 ‘열린’ 결론을 내렸다. 진상규명의 공은 2018년 3월 출범한 사참위가 넘겨받았다. 사참위는 ‘2기 특조위’로 불린다. 기본 조사기간 1년을 마친 뒤 1년을 연장해 오는 12월 10일까지 조사를 마쳐야 한다.

사참위는 새로운 의혹을 제기하며 검찰의 세월호 참사 재수사를 이끌었다. 지난해 10월 참사 당일 맥박이 뛰는 임경빈 군을 이송하는 데 5시간 가까이 지체했다고 발표했다. 임 군을 태울 수 있었던 헬기는 해양경찰 간부들을 태웠다. 앞서 해경·해군이 세월호에 탑재된 CC(폐쇄회로)TV 영상저장장치를 조작했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세월호 단체들은 조사기간을 늘리고 인력을 보강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으로 대면·현장 조사를 계획대로 수행하기 어려워서다. 대통령기록물 비공개, 관련 기관의 비협조도 한계로 꼽힌다. 다만 사회적 참사 특별법이 최장 2년의 조사기간을 규정한 만큼 기간 연장은 법 개정이 필요한 민감한 문제다. 사참위 관계자는 “대면조사가 미뤄지는 등 제약이 있긴 하지만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사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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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가 3월 2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6주기 추모의 달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세월호 참사 전면 재수사와 책임자 처벌 등을 촉구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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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구제받지 못한 또 다른 피해자들

“저희가 간 게, 양심적으로 간 게 죄입니다. 어떤 재난에도 국민을 부르지 마십시오. 정부가 알아서 하셔야 됩니다.” 2015년 9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고 김관홍 잠수사는 말했다. 민간잠수사 25명은 세월호 참사 직후 현장으로 달려갔다. 하루에도 수차례 물에 들어가며 3개월간 시신 292구를 수습했다. 무리한 잠수 때문에 목과 허리에 디스크가 왔다. 일부는 뼈가 썩어들어가는 골괴사 진단을 받았다. 극심한 트라우마에도 시달렸다. 2016년 수난구호법이 개정돼 일부 치료비를 받을 수 있었다. 정작 비용이 많이 드는 주요 질병은 보상 기준에서 빠졌다. 몸이 망가져 잠수일을 접은 이들이 여럿이다.

생활고와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김 잠수사는 2016년 6월 심장 쇼크로 숨을 거뒀다. 사흘 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김관홍법’(세월호 피해지원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세월호 승선자와 그 가족으로 한정한 피해자 범위를 민간잠수사, 자원봉사자, 소방공무원, 참사 당시 단원고 재학생·교직원까지 넓혔다. 피해자가 완치될 때까지 육체·심리치료 비용을 지원하도록 했다. 법안은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의 반대에 막혀 법제사법위원회에 묶여 있다.

세월호 민간잠수사였던 황병주 잠수사는 “여야를 떠나 피해자 구제를 위해 한목소리를 내야 할 정치권이 당리당략만 생각하는 것 같아 답답하다”며 “선례를 남겨야 앞으로 또 그런 일이 생겼을 때 국민이 현장으로 달려오지 않겠나. 또 억울한 사람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법이 통과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후유증으로 이틀에 한 번 신장투석을 받고 있다.

참사 후 3년 3개월 만에 순직을 인정받은 기간제 교사들도 여전히 차별받고 있다. 고 김초원·이지혜 교사에겐 사망보험금이 지급되지 않았다. 기간제 교사여서다. 경기도교육청은 정규교원에게만 수학여행 등 외부 교육활동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에 대비해 상해보험·생명보험 가입을 지원하는 맞춤형 복지제도를 운용했다. 논란이 일자 기간제 교사에게도 복지제도를 일부 적용하도록 바뀌었다. 두 사람에게 소급되진 않았다.

김 교사의 유족은 2017년 4월 경기도교육감을 상대로 2500만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1·2심 모두 패소했다. 기간제 교사가 국가공무원인지에 대한 대법원 판단이 없다는 이유였다. 유족은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원에 제출한 탄원 서명의 말미는 이렇다. “이 소송은 고 김초원 선생님, 한 명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기간제 교사의 지위와 차별에 관한 소송입니다. 소송금액은 적지만 그 의미는 너무나 큰 소송입니다. 인권의 최후 보루인 대법원이 이 소송의 의미를 살피고 교육 당국의 막무가내식 차별 행위에 제동을 걸어주길 간절히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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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팽목항에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쓰인 노란 리본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서성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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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피해자가 ‘이재민’에 머무르는 법

국민의 안전권과 피해자의 권리에 대한 구체적 내용을 담은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미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과 ‘재난구호법’이 있다. 주로 재난 시 행정당국의 업무 분담을 다룬다. 피해자에 대한 개념은 재해구호법상 ‘이재민’ 규정뿐이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재난이 발생했을 때 국가 역할의 큰 틀을 포괄하는 기본법으로서는 부실하다는 점이 드러났다. 재난 때마다 일일이 특별법을 만들어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다.

시민단체 생명안전시민넷은 21대 국회에서 ‘생명안전기본법’ 입법을 추진할 계획이다. ‘안전권’을 모든 사람의 권리로 법률에 반영하고 재난 및 중대 안전사고 발생 시 국가책임을 명시한다. 피해자 범위를 희생자의 유가족과 생존자, 재해구호법상의 이재민뿐 아니라 구조·수습·지원 활동으로 사망하거나 다친 사람 등으로 넓힌다. 중대안전사고가 발생하면 독립적인 조사기구를 설치하고, 각종 정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안전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도록 한다. 피해자 지원체계, 재난정보의 공개와 시민 참여 보장, 공동체 회복 등의 조항도 다룬다.

박순철 시민넷 활동가는 “안전에 대한 패러다임과 정책이 바뀌어야 하는 시기인데 현행법은 홍수 같은 자연재해를 가정한 구호 수준에 머물러 있어 변화된 재난에 대응하기 어렵다”며 “국가의 책무와 국민의 권리보장에 대한 내용을 갖추고 안전규제가 함부로 완화되지 않도록 점검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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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 방파제에는 ‘세월호 기억의 벽’이 조성돼 있다. /서성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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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한 불법사찰·혐오범죄 처벌

‘2차 가해’는 피해자들을 또 한 번 울렸다. 옛 국군기무사령부(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는 ‘세월호 대응팀’을 만들어 조직적으로 관여했다. 군사 보안업무를 챙겨야 할 조직이 세월호 유가족의 생년월일과 학력, 인터넷 물품 구매 내역, 정당 당원 여부, 정치 성향 등 각종 개인정보를 수집한 것으로 조사됐다. 야간 음주실태와 무리한 요구사항 등 유가족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 형성에 이용할 수 있는 동향도 파악했다.

하지만 이들의 민간인 사찰행위를 처벌하기 위한 법률적 근거는 충분하지 않다. 세월호 유가족 사찰을 지시한 혐의를 받는 기무사 관계자들에게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가 적용됐다. 실제 사찰행위로 피해를 입은 사람은 유가족인데 피해자가 지시를 받은 부대원이 돼버렸다. 민간인의 민감정보를 수집한 행위가 있었는데도 기무사나 국가정보원은 개인정보보호법상 ‘개인정보처리자’에 해당하지 않아 처벌이 어렵다.

이정일 민변 세월호 태스크포스(TF) 변호사는 “군 관련 법률이나 국정원법에 민간인 정보 수집행위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규정을 두거나, 개인정보보호법상 민감정보 처리를 처벌하는 대상에도 이들 기관을 포함시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멈출 줄 모르는 세월호 희생자와 피해자를 향한 혐오발언을 두고도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생명안전기본법 등에 희생자·피해자에 대한 조롱, 모욕,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행위의 처벌 조항을 담는 방안이 거론된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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