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무리한 방위비 분담 요구로 4천명 강제 무급휴직 당해
코로나19 상황에서 잠시 일할 일자리도 못 구해 생계 막막
정부가 특별법 만들어 더이상 노동자 볼모 삼는 일 막아야
주한미군 기지는 하나의 도시…한국인 노동자 1만2500명 근무
전투지원·전기·수도·은행·의료 등 맡아…임금 한국 기업 절반 수준
방위비 협상하면서 우리 목소리 들어준 건 이번 정부가 처음
손지오 주한미군한국인노조 사무국장이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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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기지는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그들만의 성채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접근할 수 없는 기지 안에 2만8500명의 미군과 함께 1만2500명의 한국인 노동자들이 근무한다. 1945년 미군이 한국 땅에 들어온 이후 주한미군 기지 곳곳에서 묵묵히 일해 온 한국인 노동자들은 ‘보이지 않는 존재’다. 한국 땅에서 일하는 한국인이지만,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소파) 노무 규정에 따라 주한미군에 고용된 이들의 처지에 관심을 갖는 이들은 드물었다.
이들을 ‘보이는 존재’로 만든 것은 역설적으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정부에 주한미군 운영을 위해 내는 방위비 분담금을 5배 넘게 올리라는 무리한 요구를 하면서 한국인 노동자들의 생계를 볼모로 삼았다. 주한미군은 방위비 협상이 타결되지 않자 노동자들에게 줄 돈이 없다며 지난 1일 한국인 노동자 4천명의 무급휴직을 강행했다. 한·미 동맹 역사상 초유의 사태다. 방위비 협상이 잠정 타결됐다는 소식도 나왔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더 많은 액수를 요구하며 추가 협상을 지시해 다시 미궁에 빠졌다.
동맹의 터무니 없는 청구서에 밀려, 하루 아침에 일터에서 내쫓긴 노동자들은 누구일까. 한국 땅 곳곳에 세워진 주한미군의 성채 안에서, 이들은 어떤 삶을 살아왔고, 무엇을 원하고 있을까.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에서 주한미군 한국인노동조합 손지오 사무국장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 무급휴직을 당한 노동자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
“집에 있거나, 생계 때문에 잠시라도 일할 일자리를 찾고 있는 분도 있다. 그런데 코로나19 상황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가 있겠는가. 많은 분이 노조에 이런저런 문의를 해오는데, 도대체 언제 해결이 되느냐는 질문이 가장 많다. 강제휴직을 당한 4000명은 생계 걱정 때문에 너무 힘들고, 휴직 대상이 아니어서 일하시는 분들은 2~3명 몫을 해야 하니까 힘들다. 주한미군 사령부가 있는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에서도 코로나19 확진자가 계속 나오고 있어 격리 등으로 근무를 못 하게 되는 노동자도 늘고 있다. 주한미군의 전투, 행정 기능뿐 아니라 생활 기능까지 마비될 우려가 크다.”
- 무급휴직을 당한 노동자들에게 우리 정부 예산으로 지원하는 특별법을 제정하겠다는 대책은 어떻게 생각하나?
“무급휴직 첫날 정부가 특별법을 제정해 지원하겠다고 했다. 정부 예산으로 무급휴직을 당한 노동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특별법을 국회와 협조해 제정한다는 내용이다. 이 법은 단순히 생계 자금을 지원하는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향후 방위비 협상에서 미국 정부가 우리 한국인 노동자들을 볼모로 삼아 방위비 증액을 압박하는 일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정부 차원의 제도 개선이라고 생각한다. 협상이 타결돼도 이 법은 반드시 만들어져야 한다.”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들이 강제 무급휴직 첫날인 1일 경기 평택 캠프 험프리스 미군기지 정문 앞에서 무급휴직 상태 정상화를 촉구하는 시위를 열고 있다. 평택/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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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한미군 기지에서 한국인 노동자들이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처우를 받고 있는지 외부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한국군 기지 안에는 군대만 있지만, 주한미군 기지는 하나의 도시와 같다. 그 안에 군대도 있고 그들의 가족과 지역사회도 있다. 한국 노동자들은 주한미군 사회가 운영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업무를 한다. 우선 군대의 행정, 전투와 훈련 관련 지원, 군수물자 이송도 하고, 전시에 함께 동원되는 인원도 있다. 또 다른 기능은 상하수도·전기·통신·도로·가스·건설·의료·복지 관련 업무, 교육, 언론, 마트, 식당, 은행, 통역 등까지 제조업을 제외한 거의 모든 일을 한다. 주한미군 기지에서 일하는 전체 한국인 노동자는 1만2500명인데 이 가운데 방위비 분담금에서 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8600명 정도이고, 나머지는 매점·식당 등의 영업수익으로 임금을 받는 노동자와 은행 등 국방부와 계약을 맺고 일하는 초청계약업체 직원이다. 이번 무급휴직 대상은 방위비 분담금에서 임금을 받는 노동자 8600명 가운데 4000명이다.”
- 한국인 노동자들의 처우는 어떤가. 상대적으로 고임금 직장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한국전쟁 직후에는 한국에 일자리가 부족하고 임금수준도 낮아서 미군기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달러 기준으로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았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 초까지는 미국 최저임금이 한국 최고임금일 수도 있었다. 1990년대 이후 한국 경제가 발전하고 임금이 전반적으로 높아지는 동안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 임금은 상대적으로 점점 낮아졌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전후로는 3년 동안 임금이 동결되기도 했다. 이제 같은 업종에서 같은 기간 근무를 하면,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들이 한국 기업 노동자 임금의 절반 정도를 받는다. 미군기지에서 자동차 정비 업무를 하는 기술직은 탱크나 군용차량까지 정비하는데, 20년 경력이어도 세전 4000만원 정도를 받는다.”
- 미국이 한국 정부에서 받아가는 방위비 분담금은 매년 큰 폭으로 오르는데, 한국인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이 낮은 이유는 무엇인가?
“방위비 분담금의 항목이 임금이 아닌 ‘인건비’로 돼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지난해 방위비 분담금 1조389억원 가운데 주한미군 노동자 인건비는 5600억원이다. 이를 8600명으로 나누면 1인당 약 6500만원이다. 그런데 인건비에는 임금만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비용이 포함된다. 고용주인 주한미군이 부담해야 할 4대 보험, 산재 보상, 출장비, 초과근무수당 등도 다 이 돈에서 나가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실제로 받는 임금은 훨씬 적다.”
- 한국에 주한미군 기지는 몇 곳이나 되나?
“주한미군 기지가 정확하게 몇 개인지 알 수 없다. 한국인 직원들이 일하는 기지는 우리가 알지만 한국인들이 없는 기지도 많을 것이다. 주요 기지는 동두천·서울·평택·오산·대구·칠곡·부산·군산·진해에 있고, 수원·광주·용인·판교·성남 등에도 작은 기지들이 많다.”
세계 최대 규모의 미군기지인 평택 캠프험프리스의 지난 1일 모습 평택/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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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들이 겪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무엇인가?
“가장 큰 위협은 감원과 정리해고다. 주한미군 기지 이전과 재배치가 진행되면서 수백명이 감원과 정리해고를 당하고 있다. 서울 용산기지의 시설이 고스란히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로 이전했다. 미국 사람들은 다 평택 기지로 가고 기능도 똑같이 이전하는데, 한국 직원들한테만 나가라고 한다. 2017~2019년 한국인 노동자 400~500명이 해고됐다. 용산기지 이전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감원이 계속될 것이다.”
- 부당 해고에 대해서는 한국 노동법에 따라 이의를 제기하고 구제받을 수 없나?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소파) 노무 조항 규정을 보면, 해고에 이의를 제기하면 한미합동위원회에서 논의하도록 돼 있는데 미국이 안건 상정에 동의하지 않으면 열리지도 않는다. 2008년 전후로 3년간 임금이 동결돼 노조가 주한미군에 임금 인상을 요구하다가 중앙노동위원회에 분쟁조정을 요청한 적이 있다. 주한미군은 임금 결정권은 자기들에게 있다며 중노위 조정안에 서명을 거부했다. 중노위 조정이 결렬되면 한미합동위원회로 가도록 돼 있는데, 언제까지 열려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 그런데 합동위원회에 회부된 상태에서 파업을 하면 노동조합 설립이 취소될 수 있다. 결국 임금은 주한미군이 일방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단체교섭권이 없고, 단체행동을 하면 노동조합 설립이 취소될 수 있어 단결권도 없다. 이러니까 방위비 분담금이 올라도 미국이 임금을 동결하면 그만이고, 한국 노동법에서 정한 정리해고 요건에 안 맞는 해고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한국 노동법에선 사용자가 강제휴업을 하면 휴업수당을 지급해야 하지만, 주한미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 왜 한국인 노동자들이 한국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돼 있나?
“소파 노무 규정 안에 족쇄가 들어 있다. ‘군사상 필요에 배치되지 아니하는 한’ 노동관계는 대한민국 법령의 규정을 따라야 한다고 돼 있는데, ‘군사적 필요’라는 말 자체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다. 또, 소파 협정은 영문본만 원본이다. 한글본은 편의상 번역해놓은 것이다. 한글 번역으로는 ‘따라야 한다’고 돼 있지만 영어로는 규정을 ‘따르다’(comply)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일치하다’(conform)로 돼 있다. 구속력에 차이가 있다. 비유하자면, 링 위에 한국과 미국의 권투 선수가 올라와 있는데 미국 선수는 손발 모두를 쓸 수 있고 한국 선수들은 손발을 다 묶고 시합을 하라는 경기 규정인 셈이다. 70년 동안 우리의 손발을 묶은 채 링 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우리는 노동 3권을 보장하도록 소파를 개정해 손발을 풀고 경기를 하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몇년에 한번씩 방위비 분담금 협상 때마다 미국이 한국 노동자들을 무급휴직 시키겠다며 볼모로 삼는 것도 고통스럽지만, 365일 항상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이런 소파 노무 조항이다. 반드시 개정해야 한다. 아니면 한국 정부가 우리를 직접 고용하거나, 특별법으로 보호 장치를 마련해 우리가 불공정한 링 위에서 내려오게 해줘야 한다.”
- 한국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미국과의 소파를 개정한 다른 나라 사례가 있나?
“일본과 독일도 처음에는 불평등한 소파를 맺었지만, 계속 개정하면서 상황을 개선했다. 일본은 미군이 감축되면서 많은 일본인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는 문제를 해결하고 미군과 일본인 노동자들의 불평등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임시조치법을 1950년대에 만들었고, 기지 재배치로 인한 해고 등 불이익을 방지하는 특별조치법도 만들었다. 이 외에도 아예 일본인 노동자를 일본 정부가 직접 고용하는 형태로 바꿨다. 독일도 2차 세계대전 패전국으로 처음에는 불평등한 소파를 맺었지만, 독일 정부와 국민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미군이 독일인 노동자들에 대해 독일 노동법을 100% 준수하도록 바꿔냈다. 우리도 이제 그런 개정이 필요하다.”
손지오 주한미군한국인노조 사무국장이 3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면서, 방위비분담금 협상의 볼모가 되어 강제 무급휴직을 당한 주한미군 노동자들의 현실과 소파 노무 조항의 문제점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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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에서 겪는 차별도 있는가.
“한국인 노동자가 1만2500명인데 한국인 직원용 식당은 한 곳도 없다. 많은 노동자가 도시락을 싸 와서 휴게실에서 먹는다. 방위비 협상 때마다 ‘한국인 직원의 복지와 안녕을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이 들어갔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어떻게 복지를 개선할지 의무화하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 정부가 방위비 협상이나 무급휴직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면서 노동자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있나?
“방위비 협상을 하면서 우리 목소리를 들어준 것은 이번 정부가 처음이다. 이전까지는 주한미군을 담당하는 부서만 많았지, 한국인 노동자 문제를 담당하는 부서도 없었다. 이번에는 노동부 장관이 우리를 만나 얘기를 들어줬고, 노동부 직제를 개편하고 전담 인력도 배치했다. 주한미군이 무급휴직을 강행한 첫날, 정부가 특별법 제정 방침 등 대책을 내놓은 것도 우리가 꾸준히 얘기했던 내용이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무급휴직은 너무나 큰 고통이지만, 정부가 제안한 특별법이 국회에서 법으로 만들어진다면, 방위비 협상에서 미국이 한국인 노동자를 볼모로 잡아 한국이 협상에서 불리해지는 일도 다시는 없을 것이다. 오랫동안 우리가 아무리 외쳐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미국이 강제 무급휴직으로 우리를 너무 심하게 때리면서, 우리의 현실을 국민들이 알게 됐다. 정부와 국회가 국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를 고통의 링 위에서 내려오게 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minggu@hani.co.kr
“방위비 어떻게 쓰이는지 정부·언론·시민단체 감시해야”
- 손지오 사무국장은 누구?
손지오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조합 사무국장은 “개인이 아닌,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를 대표해서 이야기한다”는 조건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한국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한국인 노동자들이 언론 인터뷰에 응했다가 불이익받을 것을 우려해, 언론과의 창구 역할은 손 사무국장이 전담하고 있다.
손 사무국장은 2001년 주한미군 기지 안에서 운영되는 은행에 입사해 근무해왔다. “입사 전에는 나도 미군기지 안에서 한국인 노동자들이 일한다는 것을 몰랐다”고 한다. 8년 전 노조 상임부위원장이 되면서, 한국인 노동자들이 일상에서 겪는 문제들의 근원을 알기 위해,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소파) 노무 규정과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분담금 사용 방식 등에 대해 파고들어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정부 당국자들과 언론을 만나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본 방위비분담특별협정, 소파의 문제점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손 사무국장은 우리가 내는 방위비 분담금을 주한미군이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해 한국 정부, 언론, 시민단체 등이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감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매번 방위비 협정이 타결될 때마다 총액이 얼마라는 데는 관심이 크지만, 그 이후 이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를 추적하는 사람이 없다. 주한미군이 직접 고용 인원을 축소하고, 하청업체를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편법도 벌어지고 있다. 방위비가 어떻게 쓰이는지 제대로 감시하고 준비하고, 다음 협상을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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