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국 감산 합의 난항에 국제유가 향방 ‘안갯속’
국제유가가 전례없는 감염병 확산에 요동치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50% 넘게 곤두박질 쳤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으로 원유 수요가 급격히 줄어든 영향이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20달러대로 주저앉은 것은 2002년 2월 이후 18년 만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바이러스발(發) 석유 시장 충격에 대해 "석유 산업 최악의 위기"라고 평가했다. IEA는 "석유 시장은 그동안 수차례 충격을 겪었지만, 이번 만큼 거센 타격을 받은 적은 없다"며 "그 영향은 석유 공급망을 넘어 에너지 산업 전반에 퍼질 것"라고 경고했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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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감염병이 사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다 사우디와 러시아를 비롯한 산유국간 힘겨루기로 감산 합의가 미뤄지는 등 석유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국제유가 향방은 안갯속에 빠지게 됐다.
◇산유국 ‘석유 전쟁’에 국제유가 폭락과 급등 거듭
이번 ‘역(逆) 오일 쇼크’가 우려되는 이유는 석유 가격이 내리면 수요가 늘어난다는 기존 공식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경기가 좋을 때는 기업이 값싼 석유를 활용해 생산 단가를 낮추는 동시에 생산성을 높일 수 있고, 소비자는 기름값 인하 등의 혜택을 누리게 된다. 문제는 이번 유가 폭락은 수요 감소와 공급 과잉을 동반한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세계 각국에서 외출과 모임, 항공 운항이 위축되고 공장 폐쇄가 잇따르면서 석유 수요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여기에 석유시장 패권을 지키려는 산유국이 미 셰일산업을 무너뜨리기 위해 증산에 나서면서 시장은 극도로 공급 과잉 상태에 빠졌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는 지난달 6일 열린 OPEC+(석유수출국기구와 10개 주요 산유국 연대체) 회의에서 감산 합의가 불발되자 돌연 가격 할인과 증산을 앞세운 ‘석유 전쟁’에 돌입했다. 사우디는 이달부터 산유량을 사상 최대인 하루 1200만 배럴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사우디와 러시아는 지난달 감산 합의에 도달하지 못해 ‘석유 전쟁’에 돌입했다. /CN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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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전문가들은 사우디와 러시아의 증산으로 4월 석유 공급초과분이 하루 2500만 배럴에 달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현재 미국 등에서는 석유 재고가 쌓여 보관할 장소가 부족한 상황이다. "유가 하락은 최고의 절세"라며 큰소리 치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공급 과잉 우려가 커지자 산유국에 감산을 촉구하며 중재에 나섰다. 그는 4일(현지시각) "저유가가 미국 석유산업과 일자리를 위협할 경우 수입원유에 관세를 매기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산유국의 감산 합의 가능성에 국제유가는 연일 급락과 폭등을 거듭하고 있다. 미국이 산유국과 하루 1000만 배럴 내외의 원유 감산을 논의 중이라는 소식에 서부텍사스원유(WTI)는 4일 11.9% 뛴 배럴당 28.34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브렌트유도 13.9% 폭등한 배럴당 34.11달러에 마감했다.
◇"감산 합의해도 공급 과잉"…올해 유가 변동성 지속 전망
한편, 이달 6일로 예정됐던 OPEC+ 감산 회의는 사우디와 러시아간 갈등 속에 9일로 미뤄졌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현재로서는 감산 협의가 난항을 겪고 있어 당분간 국제유가의 변동성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시장 전문가들은 주요 산유국이 감산에 합의하더라도 공급 과잉을 해소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수요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IEA는 "OPEC+가 하루 1000만배럴 감산 합의에 도달해도 올 2분기 세계 석유 재고는 하루 1500만배럴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스탠다드차타드는 "당장 감산에 합의하더라도 5월 중 가용 저장시설이 소진될 것"이라고 했다.
전 세계 석유 관련 산업은 직격탄을 맞게 됐다. IEA는 "현재 약 하루 생산되는 석유 중 약 500만 배럴은 생산비용보다 낮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며 업계 손실이 크다고 설명했다. 정유업계는 올해 설비 투자를 기존 계획 대비 20~30% 감축하고 인력 구조조정에 돌입하는 등 비상경영 조치로 위기에 대응하고 있다.
미 셰일산업에서는 첫 파산 사례도 나왔다. 미 셰일 기업 화이팅 페트롤리엄이 지난 1일 경영 악화를 견디지 못하고 파산보호신청을 했다. 저유가로 붕괴 위기에 처한 미 셰일산업은 물론 석유 수출 의존도가 높은 브루나이, 나이지리아, 앙골라 등도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나이지리아 같은 석유 수출국은 코로나로 인한 공중 보건 비상에 저유가로 인한 수입 감소에 따른 경제 위기까지 이중고를 겪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재은 기자(jaeeunle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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