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자 수백만 '에브리타임'에 '피해자 책임전가' 게시물 방치
대학생 단체들 "2차가해·혐오표현 방지 체계 요구" 연서명도
'에브리타임 내 n번방 2차 가해 게시물 삭제하라' 온라인 연서명 |
(서울=연합뉴스) 장우리 장보인 기자 = "'n번방' 피해자나 가해자나…솔직히 안 불쌍함", "남들 취업 어렵다고 할 때 쉽게 돈 벌 수 있다고 생각한 것부터 글러 먹은 애들", "애초에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음란물 유포한 범법자야"
대학생들이 자주 사용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이자 온라인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에 'n번방', '박사방' 등 단어를 검색하면 쉽게 발견되는 글이다.
5일 대학가에 따르면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이 수면으로 떠오른 이후 이 커뮤니티에는 이처럼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2차 가해성 게시물이 지속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일부 학생들은 "호기심에 들어간 사람도 있을 텐데 온라인에서 신상이 털리는 게 안타깝다"며 가해자로 분류되는 해당 대화방 참여자를 옹호했다.
피해자가 고액 아르바이트 제의에 속아 범죄 표적이 됐다는 점을 들어 그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이도 있었다. "이런 부정적인 반응은 (텔레그램 성 착취방 접속자가) 26만명이라고 선동하며 남성 혐오를 조장한 '페미'들 탓"이라는 반응도 나왔다.
에브리타임은 전국 400여개 대학의 시간표와 강의 평가, 익명 커뮤니티 기능 등을 제공해 누적 가입자가 수백만명에 달한다. 대학가 온라인 여론 형성에 영향력이 큰 공간인 만큼 성폭력을 방조하고 가해자를 옹호한다고 여겨질 만한 게시물에 대해서는 플랫폼 차원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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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생 박재정(21)씨는 "에브리타임은 글이나 댓글에 일정 수 이상의 '신고'가 들어오면 심의 절차도 없이 무조건 글을 삭제하고 계정을 정지하는 시스템"이라며 "내용의 정당성과는 상관없이 다수 이용자의 의견과 일치하는 글만 남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시립대 4학년 김모(23)씨도 "에브리타임에 텔레그램 성 착취방 접속자들을 모두 처벌해야 한다는 글을 썼다가 바로 게시판 이용을 제한당했다"며 "반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성 게시물은 버젓이 남아 있어 답답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 문제의식을 보이는 대학가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국내 1위 대학생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이 제대로 된 윤리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학생 페미니스트 연대체인 '유니브페미'와 각 대학 소모임·학생회 등이 모인 '마녀행진 기획단'은 에브리타임 측에 2차 가해와 혐오표현이 포함된 게시물에 대응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라고 촉구하는 온라인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이들 단체는 "에브리타임 내 2차 가해와 소수자 혐오성 게시물은 오래전부터 지속해 온 문제"라며 "문제가 있는 글의 삭제를 어렵게 만드는 에브리타임의 시스템은 무엇이 디지털 성범죄를 사회구조적 문제로 만들었는지 고민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에브리타임은 제대로 된 윤리 규정 및 신고·삭제 시스템을 마련하고, 문제가 있는 게시물을 당장 삭제해야 한다"며 "'회사는 피해에 대해 어떠한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라는 이용약관 대신, 디지털 성폭력과 혐오표현에 대한 방지책을 구축하라"고 요구했다.
해당 연서명은 이달 3일 정오 기준 787개 단체·개인의 지지를 얻었다. 이들 단체는 4일 자정까지 추가로 서명을 받은 후 이를 에브리타임 본사에 전달할 예정이다.
기획단 관계자는 "에브리타임 내 익명 게시판은 제대로 된 거름망이 작동하지 않아 혐오를 양산하는 공간으로 이용돼 왔다"며 "n번방 사건 재발을 방지하려면 성폭력을 방조하지 않겠다는 플랫폼의 단호한 책임의식과 그를 위한 노력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iroow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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